지난해 8월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백악관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서명하고 있다. ⓒEPA
지난해 8월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백악관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서명하고 있다. ⓒEPA

10월7일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여러 국가에서 ‘조국 경제학(Homeland Economics)’이 등장하고 있다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자유시장에 기초한 세계화가 후퇴하고 정부의 역할이 강해지는 세계경제 질서의 전환을 우려하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국제적으로는 무역의 규제, 국내적으로는 산업정책의 부활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주도하는 것은 역시 미국이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규제, 전략산업 발전을 위한 공공투자 확대 등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1989년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을 말하며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선언한 이후 지난 30년 동안은 시장과 세계화의 시대였다. 여러 국가는 자유로운 시장과 개방이 효율성을 극대화한다는 믿음에 기초하여 정부의 경제 개입을 축소하고 무역과 자본흐름을 자유화했다. 이 시기의 경제질서는 신자유주의 혹은 ‘워싱턴 컨센서스’로 대표되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시장과 국가의 역할에 관한 패러다임 전환이 나타나고 있다. 팬데믹과 전쟁은 글로벌 공급망 구축이 상품 부족 같은 위험을 낳을 수 있다는 교훈을 주었다. 따라서 각국에서 효율성보다 회복, 경제통합보다 안보를 중시하는 흐름이 강화되었다. 핵심 산업의 공급망을 우방국들 사이에서 확립하려는 노력도 전개되고 있다.

예일 대학 퍼넬러피 골드버그 교수에 따르면, 팬데믹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이 커졌고,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가안보를 중시하는 흐름이 강화되었다. 특히 미국에서는 ‘디커플링’과 ‘프렌드쇼어링’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미국은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첨단산업 분야에서 대중국 압박을 가속화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백악관은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했고 며칠 후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규제를 도입했다. 정치적으로도 세계화의 진전이 평화와 민주주의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가 약화되었고, 급속한 기후변화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거대한 도전에 대응하여 시장이 해결책이 아니라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합의가 강화되었다. 결국 이제 신자유주의 질서가 종말을 고하면서 시장의 퇴조와 국가의 귀환이라는 새로운 질서가 확립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미국 바이든 정부가 주도한다. 미국 정부는 팬데믹에 대응하여 대규모 재정 확장을 시행했고, 공공투자를 통해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경제를 추진하며 첨단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지향을 밝혔다. 바이든 정부는 특히 과거와 달리 금융자본이나 초국적 자본이 아니라 노동자와 중산층 그리고 산업자본에 대한 지원을 강조한다. 정부의 경제적 역할 강화와 공공투자 확대는 유럽과 일본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새로운 자본주의’를 추진 중인 일본 정부는 최근 성장전략으로 ‘디지털 전환과 그린 전환을 위한 공공투자’를 제시했다.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며 반도체 기업을 일본에 유치하기도 했다. 유럽도 ‘그린딜’ 산업 계획을 통해 신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한 대규모 공공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신자유주의 비판

이런 변화는 정부가 총수요 관리를 넘어 산업과 공급 측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현대적 공급 측 경제학’이란 흐름과 관련이 깊다. 1980년대 레이건 정부의 감세와 규제완화의 논리를 제공한 공급 측 경제학은 보수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진보적 정부도 생산성 상승을 촉진하고 공급 측을 관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바이든 정부의 국제경제 어젠다’ 연설로 주목을 받았다. ⓒEPA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바이든 정부의 국제경제 어젠다’ 연설로 주목을 받았다. ⓒEPA

지난 4월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이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바이든 정부의 국제경제 어젠다’라는 제목으로 시행한 연설은 학자들과 정책결정자들의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이 연설은 새로운 산업정책과 중국에 대한 무역규제로 대표되는 미국 정부의 정책 지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설리번에 따르면, 과거 미국은 규제완화와 무역자유화로 공공투자 및 산업기반을 약화시켰다. 전략적 상품의 생산과 일자리도 해외로 이전되었다. 국제무역의 이득은 널리 공유되지 않았으며 감세 같은 낙수효과 경제정책은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그 결과 지금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으로 세계평화와 안보의 불안, 가속화되는 기후위기, 불평등 심화와 민주주의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바이든 정부는 생산과 혁신을 위한 산업기반, 기후위기와 지정학적 충격에 대응하는 회복성, 그리고 중산층과 노동자의 기회를 확대하는 포용성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 첫 단계는 미국 내에 공공투자를 통해 반도체와 청정에너지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이미 2021년 공공투자 확대를 내용으로 하는 ‘인프라투자 및 일자리 법(IIJA)’을 제정했다. 또한 보조금과 세금 감면을 통해 반도체산업과 청정에너지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산업정책을 도입했다. 지난해에는 반도체산업 보조금과 첨단산업 지원을 포함한 280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와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이 제정되었다. 또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에 공공투자 3690억 달러를 추진할 계획을 제시했다. 향후 10년 동안 공공과 민간을 포함하여 총액 3조5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바이든 정부의 국제경제 의제가 추구하는 두 번째 단계는 신재생에너지 산업과 반도체산업 등에서 우방국들과 협력해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다변화된 공급망을 건설하고 새로운 국제경제 파트너십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최첨단 반도체 기술의 대중국 수출을 제한했고 안보 관련 산업에서 외국인 투자에 대한 선별을 강화했다.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추격을 막고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자 하는 미국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또한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해 중국의 지배력이 큰 전기차 배터리나 태양광 패널 원료 분야에서 보조금을 통해 미국 내 생산을 촉진하여 공급망 다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결국 바이든 정부가 지향하는 바는 중산층을 복원하고 에너지 전환을 촉진하며 핵심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공공투자와 무역규제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경제에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설리번은 시장이 자본을 언제나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경제성장은 모두 좋은 것이라는 과거의 가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이제 ‘새로운 워싱턴 컨센서스’라 불리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삼성전자 제공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삼성전자 제공

바이든 정부의 새로운 워싱턴 컨센서스에서 주목할 만한 정책 변화는 산업정책이다. 산업정책이란 정부가 공공투자, 세금 감면, 금융지원 등 여러 수단을 통해 적극적으로 특정 산업이나 기업을 육성하는 정책이다. 정부의 시장 개입은 시장 실패와 민간 부문의 조정 실패 등으로 정당화될 수 있지만 현실에선 성공 사례가 많지 않았다. 정부는 시장에서 승자를 골라낼 능력이 부족하며 지대 추구나 부패 같은 비효율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업정책은 오랫동안 경제학과 정책에서 금기시되어 왔다. 동아시아의 성공적인 경험은 예외적 사례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이제 미국 정부는 산업정책을 정책 의제로 제시했고 다른 선진국들도 미국을 따른다. 설리번이 지적하듯 1980년대 이후 자유시장과 세계화의 발전이 가져다준 결과가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성장은 촉진되지 않은 반면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들고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급속한 지구온난화는,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바이든 정부는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불평등을 개선하며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산업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반도체와 신재생에너지 등 전략산업에서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고 미국 내 생산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도 산업정책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22년 이후 전자산업 중심으로 기업의 신규 공장 건설투자가 크게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8월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반도체와 과학법’이 통과된 이후 올해 4월까지 약 2000억 달러의 신규 투자가 발표되었다. 미국 경제분석국(BEA) 자료에 따르면, 공장 건설투자가 2022년 6510억 달러에서 2023년 1분기엔 7230억 달러(연율 기준)로 증가했다.

경제학계에서도 산업정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최근 한 연구는 각국의 정책 관련 텍스트를 머신러닝 기법으로 분석했는데, 산업정책이 2010년대 특히 2018년 이후 선진국들에서 활발하게 도입되고 있다고 보고한다. 산업정책의 경제적 효과를 입증하는 연구들도 나온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네이선 레인은 실증분석을 통해 한국의 중화학공업화 정책이 산업 발전을 촉진했다고 보고하여 각광받았다. 공공 연구개발 투자의 긍정적 역할도 주목받고 있다. 최근 실증연구들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시기의 미국 정부나 항공우주국(NASA)의 공공 연구개발이 혁신 및 관련 제조업의 생산성 상승과 고용 증가를 촉진했다.

하버드 대학의 로드릭 교수에 따르면, 이런 새로운 연구들은 정부의 산업정책이 특정 산업과 경제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산업정책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수행할 것인지에 관한 연구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과거 한국의 경험이 보여주듯 정부가 자율성을 가지면서도 민간기업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정부와 민간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 산업정책의 성공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10월29일 미시간주에 위치한 GM 공장 앞에서 전미자동차노조(UAW) 조합원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REUTERS
10월29일 미시간주에 위치한 GM 공장 앞에서 전미자동차노조(UAW) 조합원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REUTERS

그러나 바이든 정부의 산업정책과 일자리 창출 효과의 실효성에 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코노미스트〉는 ‘차이나 쇼크’보다 기술 변화가 제조업 일자리 감소에 더 큰 영향을 미쳤으며, 현재 미국 산업정책도 상대적으로 고소득 노동자에게 도움이 되어 역진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비판한다. 이미 과거 미국과 유럽의 경험을 분석한 여러 연구들은 정부의 산업정책이 성공적이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시장이 발전되지 않은 개발도상국 중에서 정부의 역량이 강한 경우엔 산업정책이 유치(幼稚)산업 발전에 효과적일 수 있지만, 선진국은 다르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무엇보다 세계화의 발전을 가로막는 선진국의 정부 개입이 가난한 국가들의 발전과 노동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 역설한다.

미국 진보세력은 바이든 정부 산업정책 지지

반면 미국의 진보세력은 전반적으로 바이든 정부의 공공투자와 산업정책을 지지한다. 앞서 지적했듯 최근 발전되고 있는 경제학 연구들은 산업정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산업정책을 뒷받침하고 있다. 경제평론가 노아 스미스는 미국의 산업 정책에는 일자리뿐 아니라 기후변화 대응이나 지정학 등 여러 목표가 존재하며, 수출 확대가 생산성과 노동수요, 임금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린뉴딜을 주장해온 좌파 경제학자들도 바이든 정부의 산업정책에 대해 호의적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논쟁이 진행 중이다. 급진적인 학자들은 미국이나 유럽의 산업정책이 자본에 대한 규율이나 공적 계획은 없이 세금 감면 등 지원에만 기초하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협상력도 강화하지 못한다며 친자본적이라고 비판한다. 민간기업이 에너지 전환을 주도하고 국가가 민간투자의 위험만 줄이는 방식은 한계가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존제이 칼리지의 조시 메이슨 교수는 투자의 주체와 정부 개입의 타기팅 등에서 다양한 종류의 산업정책이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특히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산업에 대한 금융기관의 투자를 유도하는 유럽에 비해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표적으로 생산적 활동에 자금을 지원하는 미국의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역사학자 애덤 투즈가 지적하듯 앞으로는 기업을 규율하는 정부의 자율성과 계급관계의 변화, 공공부문의 역할과 산업정책의 범위 등에 관한 논의가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산업정책의 부활은 긴축재정을 실시하고 연구개발에서 공공투자를 축소하며 민간 주도 성장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도 시사점을 던져준다. 한국에서는 미국의 정책 변화가 국내 산업의 발전에 미칠 영향이나 미·중 갈등 앞에서 대외정책의 방향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그러나 국가가 귀환하고 산업정책이 부활하는 경제질서의 변화는 정부의 경제적 역할에 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새로운 산업정책과 현대적 공급 측 경제학을 둘러싼 깊은 고민과 논쟁이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기자명 이강국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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