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0일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KBS본부가 연 박민 KBS 사장 고발 기자회견.ⓒ연합뉴스
11월20일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KBS본부가 연 박민 KBS 사장 고발 기자회견.ⓒ연합뉴스

11월20일 언론노조 KBS본부의 박민 사장 고발 기자회견을 취재하러 가는 길이었다. KBS 본관과 신관을 잇는 구름다리에서 한참을 헤맸다. 정신없던 와중에도 곳곳에 붙은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다. ‘민노총 OUT’ ‘공영방송 정치세력화 반대한다!’ (언론노조 KBS본부와는 다른) KBS 노동조합의 것이었다. 바로 옆으로 ‘KBS 〈더 라이브〉 프리랜서 제작진 일동’이 쓴 성명도 있었다. 매일 밤 자정까지 헌신했던 프리랜서 제작진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혼란스러운 KBS 내부를 잠시나마 짐작해보게 하는 순간이다.

지난 몇 달간 언론계 이슈를 다뤘다. ‘언론 장악’이라는 표현을 쓸 때마다 신중을 기했다. 그 시절을 겪어보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장악’이라고 이름 붙이면 어쩐지 모든 사안이 납작해지는 것 같아서다. 적과 나, 피아 구분만 뚜렷해진다.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돼온 공영방송의 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그때마다 조직의 갈등도 걷잡을 수 없이 깊어졌다. 결국, 구조의 문제다. 지난 정부에서는 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이 끝내 처리되지 못했나. 그때 결단을 내리지 못했던 것이 지금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는 한 언론학자의 말을 오래 곱씹게 된다.

그 부메랑은 이제 민영화의 탈을 썼다. 공영방송이 많으냐 적으냐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주제다. 토론이 가능한 영역이다. 하지만 토론을 찾아보기 힘든 한 해였다. TV 수신료부터 YTN 지분 매각, KBS 프로그램 폐지까지 구성원들의 반발이 컸지만 돌아온 논리는 ‘공영방송의 정상화’ 혹은 ‘좌편향’이라는 딱지뿐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확인 원칙을 충실히 지키지 않은 보도가 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KBS의 사과문은, 당사자 반론도 진상조사도 거치지 않았다. 논란이 되는 사안에 관해서는 무의식 중에라도 보도를 피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KBS 기자들은 우려한다. 자기 검열은 언론 장악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닌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도착한 기자회견장에는 취재진이 많았다. 질문도 활발히 이어졌다. 전대식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은 기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만들었던 공영방송을 할 수 있는 근로조건이 무너지는 싸움입니다. 기자님들이 보도도 하시겠지만, 사적인 자리에서 왜 언론노조가, KBS가, TBS가 싸우는지 동료 선후배들과 토론하고 논의하고, 혹여나 언론노조가 잘못하면 문제 제기를 해주십시오.” 언론에 대해 계속 말한다는 것은 냉소를 극복하는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결국, 계속 기록할 수밖에 없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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