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너븐숭이 4·3기념관 내부에 걸린 북촌리 집단학살 사건의 희생자 명단. ⓒ시사IN 이명익
제주 너븐숭이 4·3기념관 내부에 걸린 북촌리 집단학살 사건의 희생자 명단. ⓒ시사IN 이명익

얼마 전 제주 올레길을 걷다가 너븐숭이 4·3기념관에 들렀다. 전시물을 둘러보다가 한 곳에서 시선이 오래 멈추었다. ‘아이고 사건’에 대한 안내판이었다. 1954년 1월23일 제주 조천읍 북촌국민학교 교정에서 한 한국전쟁 전사자의 고별식을 치르던 중 “오늘은 5년 전 마을이 소각된 날이며 여기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지 5주년 되는 날이니 당시 희생된 영혼을 위해 묵념을 올리자”라는 한 주민의 제안에 따라 마을 사람들이 묵념을 하다가 집단으로 설움이 복받쳐 ‘아이고 아이고’ 대성통곡을 하게 된 사건이었다.

5년 전 억울한 죽음이란 바로 1949년 1월17일 북촌국민학교 안팎에서 벌어진 집단 대규모 민간인 학살을 뜻했다. 북촌리 마을의 남녀노소 400여 명이 한날한시 군인들에게 총살당했다. 4·3 당시 단일 사건으로 가장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이후 숨죽이며 살던 유족들이 5년 만에 처음으로 ‘함께’ 울어본 게 바로 ‘아이고 사건’이었다. 당시 이 일이 보고되자 경찰은 관련자들을 불러들였다. 기념관에는 당시 ‘아이고 사건’을 조사한 경찰 문건과 ‘다시는 이런 집단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마을 주민들의 시말서, 각서 등 복사본이 전시돼 있었다. 집단 애도가 죄가 되던 시절이었다.

제주 4·3너븐숭이 기념관 바깥에 조성된 조형물. 총살당해 쓰러진 희생자들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시사IN 이명익
제주 4·3너븐숭이 기념관 바깥에 조성된 조형물. 총살당해 쓰러진 희생자들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시사IN 이명익

엄혹한 시절은 지나갔다고 여겨지는 50년 후, 북촌리의 비극은 뒤늦게나마 기념관과 조형물로 기록되고 복원되어 있었다. 기념관 앞 너븐숭이 애기무덤을 바라보며 ‘함께 기억하고 애도하는 행위’에 대해 생각했다. 오랜 시간 그럴 기회 없이 살아온 희생자 가족들의 한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가도 ‘뒤늦게라도 이런 공간과 계기가 생겨서, 나 같은 객이 지나가다 함께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가슴 한구석이 다시 뻐근해졌다. 아직 제대로 함께 슬퍼하지도 함께 애도하지도 못한, 추모하자는 이야기를 하려면 세간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현시대의 비극들이 지금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서였다.

비극을 기억할 물리적 공간을 내주는 데에, 함께 과거를 돌아보고 같은 일을 반복하지 말자는 마음을 모으는 데에 한국 사회는 너무 인색하고 매몰차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이 지나치게 오남용되어서, 어떨 때는 비극에 가담하거나 방조한 가해자들이 자신의 죄를 덮는 데에 마구 가져다 쓰는 형국이다. 사람이 떼죽음을 당해도, 다리가 부서지고 건물이 무너져도 그 자리에 기억하고 반성하기 위한 기념관 한 동, 추모비 한 개 세우기가 어렵다.

비극은 늘 일어났고 앞으로도 다 막지는 못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지난 일은 말끔히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삶만이 미래지향적인 방향은 아닐 것이다. 진짜 비극은 비극의 기억도 희극의 기억도 모두 날아가고 흩어져버리는 것이 아닐까? 함께 충분히 애도하고 충분히 기억하는 일, 방법은 어쩌면 간단하다. 후일 지나가던 객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무언가를 남겨놓는 일이 그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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