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자, 영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현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했다. ⓒ대통령실 제공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자, 영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현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했다. ⓒ대통령실 제공

‘남북 간 합의를 한국이 먼저 깬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향신문〉 11월23일자 기사에 등장하는 문구다. 이 기사에 대해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강도를 옹호하는 전형적인 스톡홀름 신드롬에 입각한 편향된 기사”라고 했다. 이 기사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정권도 말로는 남북 합의를 추구했다. 역대 정부는 북한이 수시로 정전협정을 위반해도 우리가 먼저 정전협정을 파기하겠다고 하지는 않았다. 정전협정을 위반한 북한을 비판하고 정전협정 준수를 촉구했다.

사실에 입각한 기사를 스톡홀름 신드롬이라고 반발하는 것은 엉뚱하다 못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냉전 이데올로기와 유사한 발상이다. 〈한겨레〉도 11월23일자 기사에서 ‘남북 당국 간 첫 문서 합의인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남북합의서의 효력을 공식 정지시킨 정부는 윤석열 정부가 처음이다’라고 보도했다.

안보 사안에 대한 엉뚱한 행동은 위기를 불러온다. 지난 11월21일 북한이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발사하자, 정부는 이튿날 곧바로 9·19 군사합의 제1조 3항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북한의 정찰위성과 9·19 군사합의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데도, 9·19 군사합의 효력을 멈추게 한 것이다. 정부의 엉뚱한 조치는 나비효과처럼 군사적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북한 국방성은 “9·19 북남군사분야 합의서에 구속되지 않을 것”이라며 사실상 전면 중지를 선언했다. 9·19 군사합의는 저수지 물을 가둬둔 둑과 같은 역할을 한다. 둑이 무너지면 홍수가 나듯, 9·19 군사합의 파기는 군사적 긴장을 삽시간에 고조시킨다. 북한은 9·19 군사합의로 비무장지대에서 철거한 GP를 복구 중이다. 비무장지대가 다시 ‘중무장 지대’로 변하고 있다. 군사적 긴장 고조를 가둬둔 9·19 군사합의라는 둑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있다.

11월22일 허태근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이 9·19 군사합의 일부 효력 정지와 관련한 국방부 조치사항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1월22일 허태근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이 9·19 군사합의 일부 효력 정지와 관련한 국방부 조치사항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9·19 군사합의 제1조 3항의 효력 정지 조치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분풀이하는 격으로 뚱딴지같은 대응이다. 문재인 정권 때 체결된 9·19 군사합의를 파기하고 싶던 윤석열 정부가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핑계로 삼은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정교하게 분석하고 정확하게 대응하는 게 안보 태세를 튼튼히 하는 지름길이다.

9·19 군사합의 제1조 3항은 군사분계선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내용이다. 수도권 인근인 서부지역 비행금지구역은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 20㎞이다. 비행금지구역은 남북 공중 충돌을 막기 위한 완충지대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북한은 핵무기 말고도 장사정포로 전 수도권을 사정거리에 넣고 있다. 우리 군은 장사정포를 상시 감시하고 타격 조짐이 보이면 바로 대항할 수 있게 준비해놓았는데, (9·19) 합의 때문에 그걸 못했다”라고 설명했다. 이 말을 풀이하면, 9·19 군사합의로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했기에 수도권을 위협하는 북한의 장사정포를 감시 정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와 비행금지구역은 직접적 관련이 없다. 북한 정찰위성은 500㎞ 상공인 우주공간에서 비행한다. 북한은 우주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주권국가의 권리라고 주장하지만, 국제사회는 미사일 기술을 이용했기 때문에 유엔 결의안 위반이라고 규탄한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비난하는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유엔 결의안은 분명 북한의 위성 발사를 제약하고 있다.

하지만 9·19 군사합의 내용 가운데 북한 위성 발사를 제약하는 조항은 없다. 9·19 군사합의에 담긴 비행금지구역은 군사분계선 남북 20㎞이고, 상공에 효력을 미치는 수직 금지 범위는 담기지 않았다. 초고도 비행을 한다는 미국의 U2 정찰기 최대 상승 고도가 25㎞이므로, 아무리 높이 잡아도 지상에서 공중으로 30㎞ 이내가 암묵적인 수직 비행 금지 공간일 것이다. 대기권 밖인 500㎞ 궤도를 비행하는 정찰위성과 비행금지구역을 연계해, 9·19 군사합의의 효력을 정지한 것은 아무리 살펴봐도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

11월21일 북한이 군 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발사했다. ⓒ조선중앙TV
11월21일 북한이 군 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발사했다. ⓒ조선중앙TV

북한이 위성 사진 공개 못하는 이유

정찰위성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카메라 성능이 관건이다. 군사적으로 효용성이 있는 해상도를 가진 영상이나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합성개구레이더(SAR), 전자광학센서(EO), 적외선센서(IR)라는 3종 세트가 필요하다. SAR은 주야간이나 기상 상태와 관계없이 영상정보를 수집하는 레이더 체계다. 전자광학센서는 해상도 높은 고용량 영상정보를 획득하고, 적외선센서는 빛이 없는 상태에서도 온도 변화를 감지하는 기능이다. EO·IR 위성은 SAR 위성보다 선명한 이미지를 확보할 수 있지만, 날씨에 영향을 받는다. 정부는 앞으로 EO·IR 위성을 SAR 위성과 혼합해 운용할 계획이다.

이런 고성능 카메라가 북한의 군사정찰위성에 장착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찰위성은 가로세로 1m 미만 물체를 하나의 점으로 표시하는 해상도를 가지고 있어야 최소한의 정찰 기능을 할 수 있다. 북한이 지난 5월 발사에 실패한 위성에는 일제 상용 디지털카메라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픽셀당 공간해상도가 5m 정도이므로 군사적 효용성은 매우 낮다. 구글어스로 확인한 좌표를 재확인하는 수준이라면 정찰위성으로서 기능을 충분히 수행한다고 볼 수 없다. 북한이 촬영했다는 미국 시설에 대해, 미국이 인터넷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시큰둥하게 반응한 이유이다.

북한은 하루가 멀다 하고 만리경 1호 위성이 한국과 미국의 주요 시설을 촬영했다고 보도한다. 하지만 사진을 공개할 수 없을 것이다. 통상적으로 정찰위성의 성능을 결정짓는 카메라의 해상도와 지상 전송능력을 감추기 위해서다. 그동안 북한이 민감한 자신들의 군사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공개해온 점을 고려한다면 다른 속사정도 있어 보인다.

북한은 해상도 낮은 카메라를 장착해 군사정찰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것이 1차 목적이었다. 군사정찰위성 발사는 올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김 위원장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 이후 정면 돌파와 자력갱생을 들고나왔다. 2021년 열린 노동당 8차 당대회에서 ‘국방과학발전 및 무기체계개발 5개년 계획’을 제시했다. 정면 돌파와 자력갱생 노선의 핵심이 국방 5개년 계획이다. 이 계획의 3년째가 되는 올해, 군사정찰위성 발사가 핵심과제였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고체연료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 엔진 실험에 성공했고, 지난 7월 고체연료 ICBM인 화성 18호 고각 발사에 성공했다. 연료 주입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고체연료 ICBM은 기습 발사가 가능하다. 북한은 여전히 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획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고체연료 ICBM 고각 발사 성공은 북한의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 군사정찰위성 발사가 ICBM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북한의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문이 생기는 대목이다.

11월2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 평양종합관제소를 방문해 궤도에 진입한 만리경 1호 보고를 받았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11월2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 평양종합관제소를 방문해 궤도에 진입한 만리경 1호 보고를 받았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군사정찰위성 발사 준비로 동분서주했다. 지난 4월부터 두 차례에 걸쳐 위성 발사 사업을 현지 지도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두 차례 모두 정찰위성이 궤도에 제대로 진입하지 못했다.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실패한 북한이 세 번째 발사까지 연거푸 실패한다면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김정은 위원장이 추구해온 정면 돌파·자력갱생 노선에 차질이 발생한다. 김정은 위원장의 리더십에도 치명적인 손상이 발생할 터였다.

이번 세 번째 군사정찰위성 발사 목표는 해상도 높은 사진 촬영이 아니다. 즉, 정교한 정찰 능력 확보가 아니다. 일단 정찰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게 시급했다. 마침내 지난 11월21일 500㎞ 저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궤도진입에 성공한 북한이, 한국과 미국의 주요 시설을 촬영했다면서 정작 사진을 공개하지 못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북한은 여기서 멈출 조짐이 아니다. 12월 말 열릴 노동당 8기 9차 전원회의 때 2024년 정찰위성 발사 계획을 심의하고 결정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내년에 발사할 위성에는 고성능 촬영 장비가 탑재될 수 있다. 지난 9월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최대 성과가 바로 이것이다.

미국은 북한과 러시아 군사협력에 대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포탄 지원에만 초점을 맞췄다. 한국 정보 당국과 국방부는, 북한과 러시아의 ‘정찰위성 성능 고도화를 위한 거래’를 분석하는 데는 소홀했다. 북한이 정찰위성의 ‘시력’을 높이면 그다음 단계는 ICBM 대기권 재진입 기술 테스트로 이어질 수 있다.

북한이 정찰위성을 발사한 이후 예정된 한국의 정찰위성 발사는 날씨 때문에 연기되었다. 11월30일 한국 정찰위성은 캘리포니아 반덴버그 미국 공군기지에서 발사할 예정이었다. 다른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서 조만간 발사에 성공할 것이다. 2025년까지 고해상도 중대형 군사위성 5기를 발사하는 ‘425 사업’의 일환으로, 첫 정찰위성이다. 425는 ‘사(SAR)’ 위성과 ‘이오·아이알(EO·IR)’ 위성의 영어 발음에서 따온 명칭이다. 먼저 EO·IR 위성을 발사한 후 내년 상반기에 SAR 위성 4기를 발사할 예정이다.

11월27일 국방부는 북한이 동부전선 최전방 소초(GP)에서 감시소를 복원하는 정황을 지상 촬영 장비와 열상감시장비(TOD) 등으로 포착했다고 밝혔다. ⓒ국방부 제공
11월27일 국방부는 북한이 동부전선 최전방 소초(GP)에서 감시소를 복원하는 정황을 지상 촬영 장비와 열상감시장비(TOD) 등으로 포착했다고 밝혔다. ⓒ국방부 제공

우리 군사 정찰 능력은 북한을 압도

남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경쟁하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는 이런 새로운 남북 군비경쟁 시대를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우리는 이미 425 사업에 따라 위성 5기 발사 계획을 실행하기 때문에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에 충분한 대응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지원을 받더라도 우리의 기술 수준을 따라올 정도로 위성 촬영 능력이 급상승하지는 못할 것이다. 425 사업을 계획대로 추진하면 우리 군사 정찰 능력이 북한을 압도할 것이란 의미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에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는 엉뚱한 대응이다. 대응도 적절하지 않을뿐더러 치러야 할 대가가 크다. 군사적 긴장 고조는 한국의 자산가치가 하락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뿐 아니라 접경지역 주민들의 불안도 초래한다.

9·19 군사합의는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을 목적으로 한다.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은 한국의 역대 정부가 분단 상태에서 적대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취한 수단이었다. 군축과 평화협정 체결이 길고 어려운 과정을 거치므로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을 통해 충돌을 방지하고 상황을 관리하자는 것이다. 국제적으로도 보편화된 평화 관리 방법이다.

9·19 군사합의는 지상에만 DMZ라는 완충구역을 설정한 정전협정을 공중과 해상으로 확대했다. 정전협정을 한층 더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안전핀을 마련한 것이다.

“9·19 합의로 우리가 감시 정찰 활동을 못하게 되었다”라는 주장은 9·19 군사합의를 부정하는 정부의 핵심 논리이다.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군사분계선에서 남북으로 20㎞ 비행제한구역을 설치하더라도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에 대한 감시 정찰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11월 23일 9·19 군사합의 일부 조항 효력 정지 이후 서울공항 인근에서 이륙한 한국군 정찰기가 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월 23일 9·19 군사합의 일부 조항 효력 정지 이후 서울공항 인근에서 이륙한 한국군 정찰기가 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은 지난 몇 년 동안 방사포 능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북한이 이미 실전 배치한 것으로 알려진 600㎜ 대구경 방사포는 세계 최대 구경이다. 단거리 미사일과 방사포를 섞어 도발할 경우 방어하기가 어렵지만 대비책도 있다. 북한 방사포 공격에 대응하는 ‘전구합동화력운용체계(JFOS-K)’를 전력화했다. 지상·해상·공중에서 동시에 타격하는 체계이다. 이 시스템은 공중조기경보통제기(피스아이), 무인정찰기(UAV), 대포병레이더(TPQ), 전자전장비, 이지스 구축함 등으로 북한 방사포와 미사일 기기를 실시간으로 감시한다.

공중조기경보통제기인 E-737 피스아이는 탐지거리가 370㎞에 이른다고 알려졌다. 특정 지역에 집중할 경우 500㎞에 이르는 거리도 감시할 수 있다. 한반도 전역의 공중과 해상표적 1000여 개를 동시에 추적할 수 있다. 레이더의 투사 빈도와 범위를 조절하면 군사분계선 20㎞ 밖에서 북한의 전방 지대를 포함한 전 지역 감시가 가능하다.

최대 100㎞ 떨어진 지역을 정찰할 능력을 갖춘 국산 중고도 무인정찰기(MUAV)도 보유할 계획이다. 서울 도심에서 북한 전방 지역을 포함해 황해도 남부 지역까지 감시할 수 있다. 미국산 글로벌호크 고고도무인정찰기(HUAV)도 4기를 보유하고 있다. 휴전선 일대에서 북한군 통신을 감청하는 시설도 가동 중이다. 북한에 대한 통신감청 수단인 백두정찰기는 프랑스 다소사의 ‘팰콘2000S’ 정찰기로 개량했다.

이렇게 비무장지대 일대에서 북한에 대한 감시 정찰 능력은 부족하지 않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북한의 의도 분석과 이에 따른 대응 전략이다.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대해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로 대응하는 것이 이를 정확하게 입증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의 군사정찰 위성 발사에 대해 북한이 ICBM 성능 향상을 의도한 것이라며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승인했다. 통수권자조차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힘만 쓰는 평화’에는 정교한 분석과 빼어난 전략이 있을 수 없다. 긴장 고조와 코리아 리스크의 증가만 뒤따를 뿐이다.

기자명 김창수 (전 코리아연구원 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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