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5개월 만에 돌아온 〈개그콘서트〉의 첫 코너 '2023 봉숭아학당'. ⓒ〈개그콘서트〉 유튜브 화면 갈무리
3년 5개월 만에 돌아온 〈개그콘서트〉의 첫 코너 '2023 봉숭아학당'. ⓒ〈개그콘서트〉 유튜브 화면 갈무리

‘개콘’이 돌아왔다. 11월12일 밤 10시40분 KBS2에서 방영된 〈개그콘서트〉 1051회는 3년 5개월 만의 무대였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심각했던 2020년 6월, 더 이상 공개 무대에서 방청석과 호흡을 맞출 수 없게 된 제작진은 방송을 중단해야 했다. 이 결정에는 〈개그콘서트〉가 유튜브나 OTT 플랫폼에 올라오는 콘텐츠에 비해 별다른 재미가 없다는 시청자들의 냉정한 평가도 한몫했다.

11월1일 관객들의 첫 방청이 이루어지기 전 열린 제작간담회에서 김상미 CP(책임 프로듀서)는 “주말 밤에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게 지금까지 없다”라며 “‘온 가족이 함께 봐도 어색한 순간이 없고, 내용이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다’ ‘같이 편안하게 볼 수 있고 함께 웃을 수 있다’ 이걸 목표로 삼고 있다”라고 밝혔다. 김 CP는 “저희가 글로벌 OTT에 비해 제작비는 부족하지만, 열정이나 노력만은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날 첫 방청객은 500명을 뽑는 데 다섯 배가 넘는 2614명이 몰렸다. 지난 5월부터 새로 모집한 신인 코미디언이 대거 무대에 오른 데다 유튜브에서 자리를 잡아 인지도를 쌓은 ‘레이디 액션(구독자 61만)’ ‘하이픽션(36만)’ ‘폭씨네(14.4만)’ ‘웃겨듀오(구독자 8.6만)’ 등이 등장해 객석 반응을 이끌었다. 첫 회 시청률은 전국 4.7%(조사업체 닐슨코리아)를 기록했다. 3년 5개월 전 마지막 방송 회차 시청률이 3.0%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순조로운 출발이다. 하지만 11월19일 두 번째 방송 시청률은 3.2%로 눈에 띄게 낮아졌다. 〈개그콘서트〉의 고질적 문제가 여전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시청자들의 부정적 반응은 크게 두 갈래였다. 하나는 ‘억지 웃음’이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과도한 분장이나 몸동작을 통해 일차원적 웃음을 이끌어내려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무대를 마치 휴대전화 화면처럼 구현해 요즘 유행하는 유튜브 쇼츠 영상 여러 개를 재현한다는 콘셉트인 ‘숏폼플레이’ 코너에서는 한 남성 개그맨이 여성 속옷을 입고 나온 채 짧은 춤을 추고 들어가는 장면이 담겼다. 별다른 맥락 없이 단지 노출과 우스꽝스러운 춤으로 웃기려는 모습에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한 30대 남성 시청자는 “아이들도 안 웃더라. 쇼츠 영상을 무대로 끌어오려는 시도 자체는 좋은데 너무 옛날식으로 웃기려고 한다”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문제로 혐오와 차별 논란이 있다. 억지 웃음과는 차원이 다르다. 프로그램 폐지 당시에도 인종차별이나 외모 비하, 여성혐오 등의 소재에 대해 많은 비판이 일었기 때문에 ‘2023 개콘’은 다를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대로였다. 베트남 출신 며느리와 시어머니 간 갈등을 다룬 ‘니퉁의 인간극장’이 대표적이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우리 아들 돈 빨아먹었지? 뭐 받았어?” “내가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너 만나고 이렇게 바뀐 거야. 집안에 여자가 잘 들어와야 되는데. 재수 없어” 따위의 말을 하는 장면 등이 특히 문제가 됐다. 베트남 출신 며느리를 연기하는 코미디언의 발음은 어눌하다.

이런 비판과 우려에 대해 〈개그콘서트〉 제작진은 좀 더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외국인 비하 논란에 대해 〈개그콘서트〉 연출을 맡은 이재현 PD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시어머니의 막말에도 니퉁(외국인 며느리)이 할 말 다 하며 오히려 시어머니의 말문이 막히게 하지 않나. 니퉁이 아니라 가부장적인 시어머니를 희화화시키려고 했는데 전달이 잘 안 된 것 같다. 시청자의 의견을 더 반영하겠다”라고 말했다. 억지로 웃음을 유발하려는 개그에 대해서는 “20~40대만 KBS의 시청자가 아니기에 수위 높은 넷플릭스 코미디 프로그램을 못 보는 어린이들도 볼 수 있는 그런 개그가 필요하기는 하다. 다만 앞으로 분량을 적절하게 조절해나갈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외국인 비하 논란을 빚은 코너 '니퉁의 인간극장'. ⓒ〈개그콘서트〉 유튜브 화면 갈무리
외국인 비하 논란을 빚은 코너 '니퉁의 인간극장'. ⓒ〈개그콘서트〉 유튜브 화면 갈무리

유튜브 시대에 공영방송 코미디란

제작하는 입장에서 어려움도 있다. 11월19일 방영된 두 번째 방송에서 ‘2023 봉숭아 학당’ 코너에 출연한 신윤승 개그맨은 “세상이 변했는데 공영방송 TV 요새 누가 봐. 하지 말라는 게 너무 많잖아. 공중파보다 인터넷 방송이 훨씬 재밌지. 제약이 없잖아. (새우깡 한 봉지를 보여주며) 방송에서 이거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새우과자라 그래요. 그런다고 누가 이걸 몰라? 새우깡이라고 말을 못하냐고. 이상해. 방금 ‘깡’이 (묵음 처리 돼서) 안 들리지 않았어? 이것도 여기 있는 사람들은 보고 있는데 안방에 있는 사람들은 (상표가 모자이크 처리돼서) 못 보고 있을 것 같지 않아?”라고 중얼거리다 방송 스태프에게 끌려 나가는 연기를 선보였다.

관객들의 기시감도 새롭게 떠오른 문제다. 예전에는 관객들이 한 코너에 익숙해질 때까지 두세 달은 걸렸지만, 코너마다 짧은 유튜브 영상이 만들어지면서 사람들이 해당 영상을 몇 번만 돌려봐도 코너가 금방 눈에 익고 지루해지기 때문이다. 같은 코너지만 기시감을 뛰어넘는, 새로운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가 남는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KBS가 코미디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시청자가 원하기 때문이다. 이재현 PD는 “시청자 설문조사를 보면 늘 코미디 프로그램 부활이 가장 큰 민원 중 하나였다. (종영 이후로) 예능국도 개그맨들에게 미안해서 말을 못 꺼내고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시청자분들이 먼저 이야기를 해주셨다”라고 말했다. 그는 시청자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당부도 잊지 않았다. “개그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있다. 이렇게 다시 모인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인데, 토양이 좀 더 단단하게 굳을 수 있게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좋은 콘텐츠로 보답해드리고 싶다.”

1999년 막을 올린 〈개그콘서트〉는 한때 혁신의 아이콘으로 통했다. 이전까지는 관중 없이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내용을 방송했다면, 〈개그콘서트〉는 국내 최초로 객석 앞에서 쇼를 진행하고 이를 녹화해 방영하는 ‘공개 코미디’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유경한 전북대학교 교수(커뮤니케이션학과)는 2023년의 미디어 환경이나 시청자들의 코미디 수용 방식이 〈개그콘서트〉와 같은 오픈 스튜디오 형식의 콩트쇼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설명한다. “제한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웃기려면 자극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시청자들이 이제 더 이상 진한 분장을 한 코미디에 웃지 않는다. 짜인 시나리오대로 연기하는 방식의 코미디를 넘어 한 번 더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한 때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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