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군사 법정에 선다. 사건번호 2023고43, 피고인 박정훈. 혐의는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이다. 군검찰은 박정훈 대령이 “‘장관이 귀국할 때까지 이첩을 보류하라’, ‘당장 인계를 멈춰라’는 (해병대 사령관의) 정당한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허위사실로 상관인 국방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공소장에 적었다. 12월7일 첫 공판 기일이 열린다.
〈시사IN〉은 박정훈 대령의 법률대리인을 통해 군검찰이 중앙지역군사법원에 제출한 130개 증거목록을 확인했다. 박정훈 대령 측 김정민 변호사는 군검찰의 수사기록과 증거목록을 비교하며 “군검찰이 자신의 주장과 반하는 증거는 내놓지 않았다. 기록을 다 내면 대통령 개입 흔적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시사IN〉은 군검찰이 확보했지만, 증거로 제출하지 않은 자료를 중심으로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재구성했다.
군검찰은 임기훈 전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과 국가안보실에 파견된 김 아무개 해병 대령 등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진술서를 증거로 내지 않았다. 7월31일 박정훈 대령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결과 언론 브리핑(사건 개요·수사 결과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을 경찰로 이첩하는 내용 포함)과 국회 설명을 갑자기 취소하라는 명령을 받고 부대로 복귀했다. 박정훈 대령은 이날 임기훈 당시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사이 전화가 오갔다고 주장했다.
박 대령이 군검찰에 제출한 진술서와 녹취 파일 등에 따르면, 복귀 이후 김계환 사령관은 청와대 군사 보좌관(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과 통화했다며 “오전 11시 대통령실에서 VIP(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1사단 수사 결과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VIP가 격노했다”라고 말했다. 임기훈 전 비서관이 대통령실 수사 외압의 통로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임 전 비서관은 8월3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7월31일 해병대 사령관과 통화한 적이 없다”라고 부인했다.
대통령실은 이전부터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 싶어 했다. 여기서 안보실 파견 김 아무개 대령이 등장한다. 박정훈 대령은 수사 외압 직후인 8월11일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진행 경과(수사 진행 경과)’라는 문건을 작성했다. 이 문건에 따르면, 7월30일 박정훈 대령은 권인태 해병대사령부 정책실장이 “대통령실 안보실에서 수사 결과 보고서를 보내라고 한다”라고 요청하자 “수사 중인 사항이어서 안 된다”라고 답했다. 같은 날 저녁 김계환 사령관이 “안보실 김 아무개 대령에게 언론 브리핑 자료를 보내라”고 다시 지시했고, 자료를 김 대령에게 보냈다.
7월30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까지 결재했던 사건의 경찰 이첩이 다음 날인 7월31일 갑자기 보류되고, 언론 브리핑도 취소됐다. 이 초유의 사태 뒤에 대통령실의 외압이 있다고 느낀 건 박정훈 대령만이 아니었다. 최 아무개 해병대수사단 제1광역수사대장(중령)은 ‘채 상병 사건에서 혐의자를 제외하라는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지시가 수사 외압으로 느껴졌고, 비슷한 우려를 경북경찰청에도 전달했다’라는 취지의 사실확인서를 9월23일 작성했다.
“7월31일 국회 국방위 대면 설명이 취소되고 16시경 해병대수사단에 복귀한 이후 중앙수사대장 박 아무개 중령으로부터 국방위 대면 설명 및 언론 브리핑이 취소된 사유에 대해 ‘대통령이 이런 일에 사단장이 포함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하겠냐, 군의 사기는 어떻게 되겠냐라며 임성근 사단장을 관계자(혐의자)에서 제외하라고 했다’라고 들었다.”
사령관의 ‘비화폰’도 증거에서 빠졌다
박정훈 대령 측은 김계환 사령관의 비화폰(도청 방지 휴대전화)이 대통령실의 수사 외압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라고 주장한다. 앞서 박정훈 대령이 작성한 ‘수사 진행 경과’ 문건에 따르면, 김계환 사령관은 박 대령에게 7월31일 오후~8월1일 사이 “비화폰도 포렌식할 수 있느냐”라고 물었다. 이 때문에 박 대령은 김계환 사령관이 비화폰으로 국방부와 연락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하지만 김계환 사령관의 비화폰 캡처 화면 11장도 증거에서 빠졌다.
군검찰은 이첩 당일 경북경찰청에서 회수해간 해병대수사단의 채 상병 사건 관련 기록도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다. 8월2일 오전 10시30분경 해병대수사단은 경북경찰청에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기록을 이첩했다. 이후 오후 1시50분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전화를 걸어와 회수 의사를 밝혔고, 당일 저녁 7시20분경 국방부 검찰단이 결국 기록 일체를 되찾아 갔다.
회수 과정이 적법했느냐를 두고 비판이 일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회수한 수사기록이 박정훈 대령의 ‘항명 증거자료’라고 했다. 국방부 국방정책실에서 작성한 ‘해병대 순직사고 조사 관련 논란에 대한 진실’ 문건에서도 가져온 수사기록을 ‘항명 증거자료’라고 규정했다. “물론 기록 원본은 해병대수사단에서 보유하고 있지만, 이첩 보류 지시를 위반한 항명 사건에 대한 증거자료는 경북경찰청에 보낸 서류이기 때문에 인수했다.”
군검찰은 항명 사건의 증거라며 가져간 기록을 정작 증거로는 내놓지 않았다. 김정민 변호사는 “애초 항명 사건의 증거 가치가 전혀 없는 자료다. 항명은 (수사기록을) 이첩했다는 사실 자체로 입증할 수 있는데 뭐하러 그 이첩 기록을 가져오냐. 적법한 절차도 거치지 않고 허겁지겁 수사기록을 회수해왔다는 걸 자인한 거다”라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관련해 〈시사IN〉에 “재판에 넘어가고 난 다음부터는 진행 중인 사안을 개별적으로 확인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이첩 당일인 8월2일 박정훈 대령은 해병대 수사단장 보직 해임을 통보받았다. 그날 저녁 김계환 사령관은 박 대령의 부하인 중앙수사대장 박 중령에게 전화해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우리는 진실되게 했기 때문에 잘못된 게 없다.” 두 달 후인 10월24일 국회 국방위 해군본부 국정감사에서 김계환 사령관의 말은 바뀌었다. “박 대령이 독단적인 행동을 할 거라고 아무도 생각 못했다. 일탈행위를 빨리 인정했다면 이 정도까지 문제가 커지지 않았을 거다.”
해병대수사단은 수사 외압을 느낀 순간부터 경찰에 수사기록을 이첩하는 순간까지 절박했다. 8월2일 수사기록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당사자인 제1광수대장 최 중령은 포항에서 경북경찰청이 있는 안동으로 출발하던 오전 8시46분 경찰에 설명할 내용을 휴대전화에 메모했다. 그중 일부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도 외압 있을 것, 투명한 사건처리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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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고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가 박정훈 대령에게 한 말 [편집국장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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