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일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하던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2차 공판이 서울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진행됐다. 박정훈 대령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이첩 보류·중단 지시’를 어겼다며 항명 및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박정훈 대령은 ‘지난해 7월31일 윤석열 대통령이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뒤부터 수사 외압이 시작됐다’고 맞서고 있다. 이날 재판에서는 김계환 사령관에 대한 증인 신문이 이뤄졌다.
국방부·국가안보실 관계자들은 지난해 7월31일부터 해병대 수사단이 ‘채 상병 순직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하고 당일 회수당한 지난해 8월2일 사이 김계환 사령관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김계환 사령관이 ‘한 번’이라고 말했던 것과 달리, 지난해 8월2일 김계환 사령관과 임종득 당시 국가안보실 2차장 사이 ‘두 차례’ 통화가 오간 사실도 처음으로 드러났다.
박정훈 대령 측 변호인단은 김계환 사령관에게 박진희 당시 이종섭 국방부 장관 군사보좌관과 임종득 전 2차장 등 ‘수사 외압’ 의혹 관계자들과 나눈 연락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 김계환 사령관은 이종섭 전 장관이 입장을 번복하지 않았다면 지난해 8월2일에 (예정대로 조사 결과가) 이첩되는 걸 막을 이유가 없지 않았느냐는 박 대령 측 변호인단의 질문에 “장관 지시가 없었다면 정상적으로 이첩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종섭 전 장관은 지난해 7월30일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적시해 경찰에 넘긴다는 내용이 포함된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 보고서’에 결재했다. 하지만 이튿날인 지난해 7월31일 정오께 돌연 ‘이첩 보류’를 지시한 바 있다. 왜 그랬을까? 박정훈 대령은 이후 조사 결과를 축소하고 왜곡하라는 외압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장관 결재 번복 당일, 해병대 사령관-장관 보좌관 6차례 통화
박정훈 대령 측 변호인은 이날 재판에서 이종섭 전 장관이 결재를 번복한 당일인 7월31일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과 김계환 사령관이 여섯 차례 통화(오전 10시50분, 오전 11시57분, 오전 11시59분, 오후 12시5분, 오후 1시32분, 오후 3시49분)한 기록을 제시하며 “통화한 사실이 맞느냐”라고 물었다. 김계환 사령관은 “답변을 거부하겠다”라고 했다가 “기억은 안 나지만 저렇게 (통화) 기록이 있으면 통화했던 건 사실”이라고 말을 바꿨다.
지난해 8월1일 김계환 사령관과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이 이첩 보류에 대해 나눈 텔레그램 메시지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박진희 전 보좌관은 지난해 8월1일 김계환 사령관에게 ‘조만간 이첩은 어려워 보인다(오전 10시17분)’, ‘수사단장은 (유재은) 법무관리관 개입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오전 10시27분)’, ‘확실한 혐의자는 수사 의뢰, 지휘 책임 관련 인원은 징계로 하는 것도 검토해달라(오후 12시6분)’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김계환 사령관은 이날 재판에서 “지난해 7월31일 이종섭 전 장관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이날 오후 4시께 해병대 사령부 중회의실에서 박정훈 대령에게 (당시 국외 출장 중이던) 이 전 장관이 귀국 때까지 사건 이첩 보류를 명령했다”라고 주장했다.
앞의 주장과 달리, 김계환 사령관은 지난해 8월1일 오전 10시39분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에게 “쉽지 않은 부분”이라며 ‘상급 제대 의견에 대한 관련자 변경 시 직권남용 권리방해에 해당’, ‘유족 여론 악화 가능성’, ‘야당이 쟁점화해 불신 조장’ 등의 이유로 이첩을 늦추기 어렵다는 취지로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
박 대령 측 변호인이 이를 근거로 ‘(이첩 보류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주체가 사령관 아니냐’라고 묻자 김계환 사령관은 “수사단장(박정훈 대령)의 판단이다. (박정훈 대령이 설명했던) 그 글자를 하나도 안 바꾸고 그대로 전달한 것”이라고 답했다. 변호인이 재차 “수사단장 말이 맞지 않거나 잘못된 해석이라면 국방부에 저렇게 보내진 않았을 거 아니냐. 문자를 보낼 당시 사령관의 생각은 무엇이냐”라고 되묻자 “수사단장이 말해서 그냥 전달한 것”이라고 같은 답을 되풀이했다.
해병대 사령관, 임종득 전 2차장과 ‘두 차례’ 통화 사실 새로 드러나
박 대령 측 변호인단은 계속해서 김계환 사령관에게 ‘명확하게 이첩 보류를 지시했는지’ 추궁했다. 박정훈 대령은 “7월31일 (이종섭 전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 이후) 사령관은 계속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며 고민하다가, 국방부에서 말하는 대로 했을 때 예견되는 문제점을 정리해 보고해 달라고 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지난해 8월28일 작성한 진술서).
김계환 사령관은 ‘이첩 보류 지시 시점’에 대해 첫 번째 군검찰 조사에서 “8월1일 군사보좌관에게 ‘조만간 이첩은 어려워 보여서요’라는 문자를 받고 이첩 시기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8월2일 1회 진술조서)”라고 했다가 다음 군검찰 조사에서는 말을 바꿨다. “7월31일 장관에게 이첩을 보류하라는 지시도 받았다…7월31일 오후 4시 회의 때 이첩 시기에 관한 언급이 있었다(8월9일 2회 진술조서).”
박 대령 측 변호인이 (이첩 보류 지시 시점에 대한) “진술이 상반되는 이유가 무엇이냐”라고 묻자, 김계환 사령관은 “당황해서 1차 진술(8월2일)에서는 생각났던 부분만 진술했고, 2차 진술(8월9일)에서는 생각을 되살려서 보완했다. 상반됐다는 표현은 인정할 수 없다”라고 반박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김계환 사령관이 지난해 8월2일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현재 제22대 총선 경북 영주·영양·봉화·울진 지역구 국민의힘 예비후보 등록)과 ‘두 차례’ 통화를 나눈 사실도 처음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8월25일 김계환 사령관은 국회에서 “임종득 전 2차장과 한 번 통화했다”라고 말했다. 군검찰 조사에서도 “8월2일 오후 4시께 다급하게 전화가 와서, 임종득 전 2차장이 어떻게 된 상황인지 물었다(8월29일 4회 진술조서)”라고 한 차례의 통화만 언급했다.
박정훈 대령 변호인 측이 제시한 ‘김계환 사령관 통화기록’에 따르면, 김계환 사령관과 임종득 전 차장은 지난해 8월2일 오후 12시50분과 오후 3시56분 두 차례 통화했다. 두 사람이 첫 번째로 통화를 나눈 시각인 지난해 8월2일 오후 12시50분은 해병대 수사단이 예정대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자료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직후다. 두 번째 통화(지난해 8월2일 오후 3시56분)는 국방부 검찰단이 기록을 회수하기 위해 경북경찰청으로 출발한 이후 이뤄졌다.
박 대령 측 변호인이 “이첩 사실에 대해 국가안보실이 관심을 두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라고 묻자 김 사령관은 “그걸 내가 변호사에게 말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김 사령관은 박 대령이 자신에게서 들었다고 주장하는 ‘VIP(대통령) 격노설’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박정훈, “어떤 방향이 진정한 명예인가는 국민이 판단할 것”
김계환 사령관은 8월2일 밤 9시48분께 박 아무개 해병대 수사단 중앙수사단장과의 통화에서 “우리는 진실되게 했기 때문에 잘못된 것 없다…지네(자기네)가 하다가 안 되면 나중에 내 지시 사항을 위반한 걸로 갈 수밖에 없을 거야, 해당이 안 되면”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선 “(해병대) 수사단원들의 동요를 방지하기 위한 차원”이었다고 말했다.
김계환 사령관은 ‘피고인(박정훈 대령)의 처벌을 원하나’라는 재판부의 질문에 “이첩 보류 관련 지시를 어긴 건 명확하다. 군인이 명확한 지시 사항을 어긴 것은 어찌 됐든 처벌을 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김 사령관은 다만 ‘박정훈 대령이 이첩 보류 지시를 못 따르겠다고 노골적으로 반항한 사실이 있느냐’는 변호인의 질문에는 “그런 사실이 없다. (못 따르겠다고) 명시적으로 발언한 바는 없다”라고 말했다.
박정훈 대령은 김 사령관이 퇴정한 뒤, 재판장에게 발언권을 얻은 다음 이렇게 말했다. “오늘 참담한 이런 현장에 얼마나 고충이 심하실까 가슴이 너무 아프다…해병대의 명예는 진정한 정의와 자유를 위하는 방향으로 향할 때 빛나고 참다운 명예라고 생각한다. 정의와 자유는 개인을 위한 방향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한 방향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명예인가 하는 것은 국민께서 판단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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