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하남시의 한 행정복지센터. ⓒ시사IN 조남진
경기 하남시의 한 행정복지센터. ⓒ시사IN 조남진

추석 연휴를 약 2주 앞둔 9월15일 금요일, 경기도 하남시 ○○○동 행정복지센터(주민센터) 공무원 이 아무개씨(43)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근무 중이던 이날 오후 2시13분께 주민센터를 나섰고, 2시31분께 아내(40)에게 전화를 걸어 “다 때려치고(그만두고) 싶다”라고 말했다. 오후 4시20분께 주민센터 인근 아파트에서 추락 사고가 났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씨가 투신한 것이다. 그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했다. 유서는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고, 경찰이 휴대전화 포렌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3학년 두 딸을 둔 주민센터 공무원은 왜 근무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2006년 입사해 18년 차인 그의 마지막 직책은 행정민원팀장(6급)이다. 주민등록등본을 떼어주는 등의 창구 민원이 아니라, 시 조례 등으로 만들어진 각종 단체를 관리하는 민원 업무를 맡고 있었다(이런 단체를 ‘유관단체’라 부른다). 이씨는 주민자치회, 체육회, 새마을부녀회 등 ○○○동의 유관단체 7개를 담당했다.

이 유관단체 중 한 곳의 회장으로 올 상반기에 지역 인사 A씨가 취임했다. 해당 단체는 지난해 처음 동 축제를 연 데 이어 올해도 축제를 열기로 지난해 총회에서 결정했다. 이를 위한 하남시 예산이 이미 확정되어 있었다. 유족에 따르면, 이 유관단체 회장 A씨는 지난해에 하루 동안 진행했던 축제를 올해 3일간으로 확대할 것을 주민센터에 요구해왔다. 지난해 행사에 대한 주민 반응이 좋았다는 이유에서다.

“흔한 민원이 아니라 애초에 성립이 안 되는 민원이다.” 30년 차 하남시 공무원인 한병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하남시지부장의 말이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시 차원에서 진상조사가 진행 중이라 조심스럽지만, 만약 그런 민원이 제기된 게 사실이라면 ‘월권’이다. 주민 반응이 좋아서 행사를 더 확대하길 원했다면, 지난해 본예산을 세울 때나 추가경정예산 편성 때 예산을 미리 확보했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이미 계획을 수립해 확정된 예산을 임의대로 바꿔서 쌈짓돈처럼 꺼내 쓸 수는 없다. 모든 예산 변경에는 의회 승인도 필요하다.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다.”

그럼에도 이씨는 이 요구에 어떻게든 부응하려 했다. 그의 아내에 따르면, 이씨는 올해 7~8월경부터 동 축제 일정 변경 이야기를 아내에게 꺼냈다. 늦어도 추워지기 전인 10월에는 축제를 열어야 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사항인 행사 기간조차 결정되지 않자 이씨는 초조해했다. 9월24일 예정된 별개의 지역 행사와 관련해 또 다른 유관단체와 의견을 조율하는 업무도 버거워했다고 알려진다. 9월 들어서는 “휴직하고 싶다” “출근하기 싫다”라는 말을 일주일에 두세 번은 했다.

경기 하남시의 한 행정복지센터에 각종 행사 현수막이 걸려 있다. ⓒ시사IN 조남진
경기 하남시의 한 행정복지센터에 각종 행사 현수막이 걸려 있다. ⓒ시사IN 조남진

그는 하남시청 문화 관련 부서에 연락해 ‘동 축제에서 무료로 공연해줄 수 있는 예술 단체가 있는지’ 알아봤다고 한다. 최대한 추가 예산을 아껴보려는 시도였다. 나중에는 ‘가능하다면 내 사비를 털어서라도 해결했으면 좋겠다’고까지 아내에게 말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 상급자에게 보고하기 위한 한 페이지짜리 문서를 주말에 출근해 작성하기도 했다.

그가 숨지기 하루 전인 9월14일, 유관단체 관리 업무를 함께 담당하던 동료 직원이 다른 부서로 인사발령이 났다. 이씨의 아내는 “동장도 7월10일 처음 부임한 상황이어서 사실상 남편이 단체 관리를 혼자서 했는데, 많이 의지하던 동료까지 인사발령이 나자 충격이 컸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다음 날인 9월15일 오후 3시, 문제의 동 축제와 관련한 회의가 잡혀 있었다. 이씨는 그날 아침에 아내에게 “출근하기 싫다”라고 말했다. 직원들에게도 유관단체 회장 A씨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특별한 조치는 없었고, 결국 그는 3시 전 주민센터를 나선 뒤 숨졌다. 이씨 사망 직후 해당 축제는 3일간이 아니라 1일간 개최하기로 결정되었다.

고인의 아버지 이서우씨(78)는 “진작 이렇게 결정할 수 있었는데도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꼬리를 내린 거다. 그동안 이 유관단체의 요구가 얼마나 무리했는지 단적으로 드러난다. 평생 부모 속을 썩인 적이 없는 아이를 죽음으로 내몬 원인 제공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라고 말했다. 유족은 해당 유관단체 회장 A씨를 형법상 공무집행방해, 강요 등 혐의로 하남경찰서에 고발했다. 공무상 재해도 신청하려 한다. 이씨의 아내는 “설령 처벌이 어렵더라도 A씨가 최소한 공식적으로 사과해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시사IN〉은 A씨에게 전화와 문자로 수차례 입장을 물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경찰 수사와 별개로, 하남시청은 부시장을 단장으로 노동조합 2명, 시청 2명, 변호사, 노무사 등 총 7명이 참여하는 진상조사 TF를 꾸려 9월25일부터 활동에 들어갔다. 휴일을 제외하고 10월13일까지 2주간 조사한 뒤 보고서를 작성하고 10월23일 심의를 마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부시장 위 결재 라인이 없고, 전 과정에 노조 추천 인사 2명이 입회하며, 실제 조사는 외부인인 변호사와 노무사가 진행하는 독립적인 조사다.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 대책을 내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지난 9월15일 숨진 공무원 이 아무개씨를 추모하는 현수막이 경기 하남시청 앞에 걸려 있다. ⓒ시사IN 조남진
지난 9월15일 숨진 공무원 이 아무개씨를 추모하는 현수막이 경기 하남시청 앞에 걸려 있다. ⓒ시사IN 조남진

“애초에 성립이 안 되는 민원이다”

공무원이 민원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일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8월21일 울산 울주군의 20대 공무원이 목숨을 끊었다. 평소 민원이 많은 농어촌 민박 업무를 담당한 직원이었다. 지난 4월4일 경기도 구리시의 한 주민센터 9급 공무원이 같은 지역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숨졌다. 사망 당일 주민센터를 방문한 민원인을 상대한 뒤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알려졌다. 지난해 3월5일에는 임용 2년 차인 서울 강동구청 공무원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는 불법 주정차 과태료 이의신청 관련 민원 업무를 맡고 있었다.

○○○동은 하남시의 14개 동 중에서 인구가 많은 편에 속하는 ‘기피 동’이다. 그만큼 민원도 많다. 하남시 공무원이기도 한 이씨의 아내는 “유관단체 민원은 창구 민원과는 또 다른 어려움이 존재한다. 지방정부에서 조례 등을 통해 만들고 관리하며 행정적으로 함께 가야 하는 단체인 만큼, 단체장의 민원은 동 발전을 위한 민원으로 포장되어 각 부서에 떨어진다. 이런 분들은 시장과 독대하는 자리도 많으므로 아무리 무리한 민원이라도 원칙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이번 일을 계기로 유관단체 민원도 고질적 민원 중 하나로 인식되어, 유관단체 분들이 공무원들의 고충도 이해하고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교내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이후 교사들의 죽음이 이어졌다. 이번 사건은 교육공무원인 교사뿐 아니라 일반 공무원 또한 상상 이상의 민원으로 고통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권동희 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고객 응대 노동자에 대한 사업주의 보호조치를 규정하고 있지만, 공무원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어서 이를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국가공무원법에 관련 내용을 넣든 산안법의 적용 범위를 넓히든, 공무원도 동등하게 보호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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