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자살, 왜 산재가 아닐까?
  • 전혜원 기자
  • 호수 639
  • 승인 2019.12.17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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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업무상 얻은 우울증으로 자살하면 산재 인정을 받지만, 연예인은 개인사업자여서 산재 적용 대상이 아니다. 악플 등 사회적 요인에 의한 연예인 자살도 ‘업무상 재해’ 아닐까.
ⓒ연합뉴스구하라와 설리(위) 같은 연예인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어서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설리(본명 최진리)는 생전에 끊임없이 고통을 호소했다. 2014년엔 악성 댓글과 루머로 심신이 지쳤다며 연예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2018년 웹 예능 〈진리상점〉에서 공황장애와 대인기피증을 앓았다고 고백했다. 최근 JTBC2 〈악플의 밤〉에서는 “인간 최진리의 속은 어두운데 연예인 설리로서 밖에서는 밝은 척해야 할 때가 많다”라고 말했다. 고 구하라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앞으로 악플에 조치하겠다며 “우울증 쉽지 않은 거예요”라고 적었다. “연예인 거저 얻어먹고 사는 사람들 아닙니다. 그 누구보다 사생활 하나하나 다 조심해야 하고 그 누구보다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통을 앓고 있어요. 얘기해도 알아줄 수 없는 고통이에요.”

이들의 죽음은 개인의 허약함에 기인한 사건일까? 안주연 마인드맨션 원장(정신건강의학 전문의)은 “목숨을 끊는 행위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울증 역시 생물학적·심리적·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고인들이 SNS 등을 통해 힘들다고 토로한 것을 보면 사회적 요인이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사회적 요인으로는 ‘연예인(특히 여성)에게 요구되는 높은 도덕적 기준’ ‘시시콜콜한 일상까지 기사화되어 품평 대상이 되는 관행’ ‘악플 만연’ 등을 들 수 있다.

연예인은 소속사 또는 방송국과 전속계약을 맺고 노래와 춤, 연기 등의 ‘노동’을 제공해 생활을 유지하는 직군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일을 해서 먹고산다는 측면에서 이들도 노동자다. 노동조합도 있다. 2018년 대법원은 방송연기자가 노조법상 노동자라고 인정했다.

주우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사무국장은 설리와 구하라의 죽음을 직업병 내지 산재로 본다. “연예인이란 직업 자체가 대중에게 노출되어 있다 보니 겪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미래 예측이 어렵고 (소속사·방송사나 대중에게) 선택받아야만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안정한 직업이기도 하다. 자살 예방 홍보, 상담, 치료 지원 등 방지 대책을 (소속사뿐 아니라) 국가에서도 마련해야 한다.” ‘대중에게 노출되는 직업을 선택했으니 그런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고 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직업이든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또한 어떤 직업이든 위험이 있다. 본인의 선택 여부와 상관없이, 해당 직업에 있는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나 산재보험 같은 사회적 제도가 존재한다. 우리 직업에서도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데이터 역시 충분히 축적되었다고 본다.”

ⓒ연합뉴스구하라(위)와 설리 같은 연예인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어서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연예인을 ‘노동자’로 봐야 하는 이유

설리와 구하라는 각종 기사의 댓글과 SNS상에서 입에 담기 어려운 인격 모독적 악플에 노출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 소속사인 연예기획사가 적극 대응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대중이 곧 고객이기 때문이다. ‘갑질 고객’에 취약한 백화점 직원이나 콜센터 상담원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노동자들은 고객이 잘못한 경우에도 도리어 사과를 강요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객을 잃을 수 있다는 이유로 사업주가 자신의 노동자를 충실히 보호하지 않는 것이다.

‘갑질 고객’에 대해서는 한국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지난해 10월18일부터 시행된 산안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으로 불리는 이 법은, 고객의 폭언이나 폭행, 그 밖에 적정 범위를 벗어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로 인한 건강장해로부터 백화점 직원이나 콜센터 상담원 같은 ‘고객 응대 노동자’가 보호받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사업주는 고객이 폭언 등을 하지 않도록 요청하는 문구를 게시하고, 대처방법을 포함한 업무 매뉴얼을 마련하며, 건강장해 예방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고객의 폭언 등으로 건강장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사업주는 업무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거나 전환하는 등의 조치까지 취해야 한다.

하지만 연예인은 현재로서는 산안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현행 산안법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게만 적용되는데, 연예인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산안법 개정안이 보호 대상을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넓히기는 하지만, 연예인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 2011년 생활고에 시달리던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의 사망을 계기로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되어 사회보험법 사각지대에 있던 예술인 직군 일부가 법의 보호를 받게 되었지만, 이 역시 연예인이 주 논의 대상은 아니었다.

노동자의 경우 우울증이나 과로로 인한 자살도 산재로 인정받는 추세다. 서울아산병원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에 대해,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지난 3월 “간호사 교육의 구조적인 문제로 직장 내에서의 적절한 교육체계 개편이나 지원 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과중한 업무를 수행”했다며 산재로 인정했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숨진 에스티유니타스 웹디자이너 장민순씨 역시 지난 10월 산재 판정을 받았다. 감정노동으로 인한 사망도 산재로 인정받은 사례가 있다. 2014년 입주민의 비인격적 대우에 시달리다 분신한 압구정동 한 아파트 경비원의 분신자살이 산재로 인정되었다.

설리와 구하라의 죽음 이후 포털사이트 다음이 연예 기사 댓글난을 없앴다. 그 외에 달라진 것은 크게 없다. 여전히 기사는 쏟아지고, 악플은 달리고, 연예인은 보호장치 없이 노출된다. 만약 두 사람의 죽음을 산재라고 재정의한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그 사람이 심지가 약해서 목숨을 끊은 게 아니라, 어떤 구조적 조건에서 일하다 업무상 위험에 노출되었는지, 어떤 요인이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쳤는지, 누가 책임지고 이들을 보호하며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조선소에서 사람이 계속 죽는데 ‘위험한 거 다 알고 간 거 아니냐’고 말하지 않잖나. 연예인의 반복되는 죽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지금도 ‘욕먹을 거 알고 연예인 된 거 아니냐’고 말한다.”

어린 나이부터 활동을 시작하는 아역 배우나 아이돌 연습생, 아이돌 등이 놓인 취약한 조건도 이번 사건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설리는 열한 살이던 2005년 드라마 〈서동요〉에서 아역 배우로 연예 활동을 시작했고, 4년의 연습생 생활을 거쳐 중학교 3학년 때인 2009년 걸그룹 f(x)로 데뷔했다. 구하라도 17세 때인 2008년 데뷔했다. 이 과정에서 적절한 신체·정신적 건강 보호를 받지 못했을 수 있다.

김두나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2014년 시행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이 청소년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학습권, 인격권, 수면권, 휴식권, 자유선택권 관련 내용을 계약에 포함하도록 하고 있지만 선언적인 문구에 그쳐 실효성이 없다. 외국에서는 연령대에 따라 용역 제공 시간과 휴식시간이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고,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선 주 노동담당 장관이 자격을 부여한 전담 교사가 아역 연기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돌보게 한다”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아이돌 연습생이나 아이돌은 장소나 시간, 활동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는 등 사용자의 지시에 따라 일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의 노동자성이 법정에서 제대로 다퉈진 적은 없다. 김 변호사는 “이들이 사용-종속관계에 있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지 법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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