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교사의 49재인 9월4일 학교에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시사IN 신선영
서이초 교사의 49재인 9월4일 학교에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시사IN 신선영

〈나는 SOLO〉(ENA·SBS플러스 공동제작)는 ‘극사실주의 데이팅 프로그램’이라고 자칭한다. 이 프로그램이 16개 시즌을 반복하며 매주 최고 시청률 기록을 갈아치운 요인은 연애 감정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아니다. ‘이상한’ 출연자들이 나와 서로 싸우는 것이다. 말 한마디에 발끈해 소리를 지르고, 폭력에 가까운 구애를 반복하는 이들이 있다. 이른바 ‘막장 드라마’처럼, 욕하려고 본다는 사람이 많다.

막장 드라마 악역 배우들은 종종 길거리에서 욕설을 들었다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나는 SOLO〉 일반인 출연자들은 다르다. 매주 방송 후 개인 SNS 계정에 달린 욕 댓글에 대해 해명한다. ‘그냥 방송으로 봐달라’는 호소도,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이들의 엄포도 잘 통하지 않는다. 온 나라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위험을 무릅쓴 대가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이다. SNS에 광고를 받거나 쇼핑몰을 운영하는 출연자가 적지 않다.

어째서 시청자들은 ‘무개념 연예인’이나 드라마 속 ‘나쁜 X’보다 생면부지의 일반인이 더 흥미롭다고 여기게 됐을까. 취약해서다. 인간은 실수를 저지른다. 프로그램은 훈련되지 않은 사람들을 모아, 그 취약점을 극대화하는 환경을 조성한다. 연애 감정과 음주는 판단력을 더 흐리게 한다. 호의적 편집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선한 출연자의 심성을 프로그램이 왜곡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들은 욕하는 걸 좋아한다. 이 프로그램은 마음 놓고 욕하기 좋은 판을 깔아준다.

교사에게 '갑질'을 해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알려진 학부모의 소식을 접했다. 주민들은 그들이 운영하는 가게 외벽에 메모지를 붙였다. “목숨으로 갚아라” “네 자식도 당해라” “대대손손 천벌 받아라”고 썼다. 아마 가해자로 지목된 학부모 일부(혹은 전부)는 무거운 죄책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 사법은 연쇄살인마에게도 변론할 기회를 준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법관이 법이 정한 바에 따라 모든 사정을 살핀 이후에야 ‘영구히 사회에서 격리한다’는 판결을 내린다. 이 제도는 대중의 법 감정과 어긋난다. 그럼에도 전근대 수천 년간 빈발했던 오판과 조작, 불의를 줄이는 데 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이제 사람들은 합리적이지만 따분한 제도를 우회하려 한다. 증거와 법률 대신 소문과 분노가 다시 뜬다. 분노에 휩싸인 사람은 실수를 범하기 더 쉽다. ‘의분’조차 그렇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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