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영어 교사인 이수현씨(43)는 2012년 딸 연우, 2015년 아들 정우를 낳았다. 두 아이 모두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진단받았다. 아이의 치료에 모든 것을 걸었다. 휴직을 하고 온갖 치료실을 찾았다. 발달장애 아이를 위한 대안학교를 만들기도 했다. 딸 연우는 일곱 살이 되었을 때쯤, 바깥에서 또래 아이들을 보면 넋을 놓고 쳐다봤다. 또래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싶어 했다. 그제야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 삶을 살아가야 할 주체’로서의 아이가 보였다. 아이의 장애가 아니라 아이가 살아갈 이 공동체를 바꿔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를 공교육에 맡기고 7년 휴직 끝에 복직했다.

이수현 교사는 복귀 후 ‘통합교육’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통합교육이란 장애 아동 등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도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에서 또래와 차별 없이 교육받는 것을 말한다. 그는 통합학급 담임을 자진해 맡고, 장애를 가진 학생을 수업에 적극 참여시켰다. 그 경험을 담은 책 〈해 보니까 되더라고요〉를 지난해 김민진 특수교사와 함께 썼다. 동료 교사들에게 통합교육의 가치와 구체적 학급 운영, 수업 진행 방법을 연수하고 있다.

최근 학교 통합교육 현장에서 여러 갈등 사례가 불거지자 논의는 곧잘 부모와 교사 간 대립으로 흘렀다. 이수현 교사는 어느 때보다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그 자신이 초등학교 5학년·2학년 장애 학생의 ‘부모’이자 통합학급 담임 ‘교사’이기 때문이다. 양쪽 입장을 모두 얼마간 이해하면서도 그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수현 교사를 8월16일 만났다.

이수현 교사가 딸 연우(오른쪽), 아들 정우(왼쪽)와 함께 한 공원을 걷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이수현 교사가 딸 연우(오른쪽), 아들 정우(왼쪽)와 함께 한 공원을 걷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웹툰 작가 아들 A군의 사건으로 통합교육을 둘러싼 갈등들이 사회에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A군 사건은 통합학급에서 일어났고 학교폭력 사안으로 접수됐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학폭위(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로 처리하지 않고 특수반으로 분리했다. 무조건 학폭위를 우선시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수반으로 분리한 것을 교육적 조치로 보긴 어렵다. 사람들은 ‘장애가 있으니 배려했다’고 말할 것이다. 한국 사회가 ‘차별’을 ‘배려’라는 말로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 사안이 그렇다. 특수학급이 분리 수용소인가? 특수학급은 누가 뭔가를 잘못해서 분리되는 공간이 아니라 배움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가 필요한 지원을 받는 공간이다. 그런데도 능력이 떨어지거나 수업에 방해가 되면 쫓겨나는 차별과 배제의 공간으로 자주 이용되고 있다. 이는 다시 특수교육 대상자에 대한 낙인을 강화한다. 통합교육이 취지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기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났다고 본다.

장애 아이들의 ‘도전행동(문제 행동)’이 갈등의 중심에 놓여 있다.

우리 큰아이도 여자아이인데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속옷까지 홀딱 벗은 일이 다섯 번 넘게 있었다. 감각이 예민해서 뭔가 물이 튀거나 먼지가 붙으면 못 견디는 거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아이에게 어떤 행동이 사회적으로 부끄러운 것인지 가르치기가 정말 어렵다. 그런 수치심을 느끼기 어려운 장애가 바로 자폐 스펙트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있을 때는 옷을 벗으면 안 되고, 화장실에 들어가면 문을 잠가야 한다고 일일이 훈련시킬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의 경우 자세한 상황을 몰라서 조심스럽지만, 개인적으로는 성적인 의도가 있었을 것 같진 않다. 뭔가 이유가 있었을 텐데, 사실 도전행동의 원인은 다양하다. 원인을 파악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도전행동에 대한 대응 시스템이 없는 것 같다.

이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 도전행동을 하며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특수교사뿐 아니라 아이의 수업에 들어가는 모든 교사가 사전에 공유하고 교장·교감 등 학교 관리자들도 알아야 한다. 바로 이런 내용이 ‘개별화 교육 계획(IEP)’에 들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게 전혀 없다.

통합학급 교사로서 수업에서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수업 중간에 일어나서 다른 아이 등을 때리는 도전행동을 하는 아이가 있었다. 당연히 맞는 아이들은 기분이 나쁘다. 폭력이기도 하다. 다른 선생님들은 이 아이 때문에 수업을 못하겠다고, 특수반에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나는 이 아이를 위해 따로 학습지를 만들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영어 단어 중에 일상생활과 관련된 단어를 골라서 그림과 연결 짓게 했다. 처음엔 아이가 어이없어 하더라. 이런 걸 처음 받아본 거다. 학습지 종이를 눈앞에서 계속 흔드는 상동행동(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이가 특정한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했다. 그런데 이 행동을 하면서 이전에 하던 도전행동이 확 줄었다. 이 학생의 도전행동 원인은 ‘지루함’이었던 것이다.

이후 영어 시간마다 학습지를 만들어 갔다. 자동차 그리는 걸 좋아하는 아이니까 자신이 그린 자동차에 대해 발표하게 하는 등 한 시간에 단 5분만이라도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그랬더니 내 수업 시간에 그 도전행동은 한 번도 하지 않더라. 무언가 할 게 있으니까 도전행동을 할 시간이 없는 거다. 어른도 계속 모르는 말을 들려주면서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견디기 어렵다. 장애 아동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지루함을 느끼고 힘들어하고 슬퍼하는 ‘감정’이 있는 인간이다. 많은 교사들이 ‘특수교육 대상자 학생은 수업 시간에 앉아만 있어도 대단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의자에 앉아만 있으려고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없다.

소수의 특수교육 대상자만을 위해 그런 노력을 해야 하느냐는 의문도 나온다.

예전에는 학생의 50%가 따라오면 성공한 수업이라고 간주했다. 그런데 10년 전과 비교해도 아이들의 특성이나 관심사가 확연히 달라졌다. 특수교육 대상자뿐 아니라 가정이 붕괴되었거나 우울증이 있는 아이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경계선 지능, 난독증, 틱(빠르고 반복적으로 어떤 소리를 내거나 동작을 함) 등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정말 많다. 이렇게 넓은 범주의 아이들을 사전에 염두에 두고 수업을 짜는 게 보편적 학습 설계다. 예컨대 수행평가를 한다면, 글은 못 쓰지만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에게는 자신이 배운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는 거다. 이러면 예전 같으면 포기했을 아이들도 좌절하지 않고 수업에 참여할 의지가 생긴다. 또한 학습목표에 혼자서는 도달하지 못하지만, 조금만 학습 내용이나 방법을 조정해주면 도달할 수 있는 아이도 있다. 같은 학습지라도 보기를 주면 답을 찾아서 쓸 수 있다. 물론 지필평가(시험) 같은 ‘줄 세우기’식 평가에선 여전히 어렵겠지만, 앞으로 점점 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이수현 교사가 만든 느린 학습자를 위한 학습지(오른쪽). 학습 목표인 수량형용사에 초점을 맞춰 과제를 수정했다. 이렇게 하면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 책 〈해 보니까 되더라고요〉 갈무리
이수현 교사가 만든 느린 학습자를 위한 학습지(오른쪽). 학습 목표인 수량형용사에 초점을 맞춰 과제를 수정했다. 이렇게 하면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 책 〈해 보니까 되더라고요〉 갈무리

교사의 업무 부담이 늘어나는 것 아닌가?

통합교육이 이뤄지기 위한 조건 중 하나가 ‘협력 교수(둘 이상의 교사가 협력해서 가르치는 것)’이다. 통합학급 교사 혼자서는 느린 학습자까지 고려한 수업을 해내기 쉽지 않다. 한 반에 30명이 넘는 신도시 과밀학급일수록 더 그렇다. 특수교사가 특수반에만 있는 게 아니라 통합반에 와서 아이들의 학습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특수교사가 주당 20시간 넘는 특수반 수업을 소화해야 하는 환경에서는 불가능하다. 결국 인력이다. 교육청은 학령기 아동이 줄어서 교사 수를 줄여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상황이 악화된다.

장애를 가진 학생의 학부모와 통합학급 교사 또는 특수교사 사이 소통에 어려움이 있다.

나도 교사지만 부모로서는 답답한 게, 올해 통합학급 교사에게 전화 온 적이 한 번도 없다. 물론 특수교사하고는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한데, 그래서 더 문제다. 아이들은 통합학급에 가 있는 시간이 많은데 거기서 일어난 문제를 특수교사는 알기 어렵다. 특수교사도 전해 들을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오해가 생긴다. 나도 예전에 그랬지만 서로 소통을 안 해온 세월이 길다 보니, 일반 교사들이 특수교육 대상자의 부모들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수교사가 있으니 그들이 맡을 사안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부모들도 특수교사에게 하소연할 뿐 일반 교사를 어려워한다. ‘내 아이를 통합학급에 보내서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위축되고 미안한 마음에 전화를 하고 싶어도 잘 못한다. 결국 아이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만 일반 교사가 전화를 하게 되는데, 그런 관계에선 절대 신뢰가 형성되기 어렵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한 특수교육 대상자의 학부모에게 첫 한 달을 거의 매일 전화했다. 아이들은 특히 학기 초에 도전행동을 일으킨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어서다. 이 도전행동이 뭘 의미하는지 나도 이 아이를 처음 만나서 잘 모른다. 특수교사도 바뀐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머님에게 ‘오늘은 아이가 이런 행동을 했는데 어떤 의미예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해요?’라고 묻고 자연스럽게 소통해서 여러 문제를 해결했다. 아이가 오랫동안 다른 학생들과 따로 떨어져서 밥을 먹었는데, 같은 반 학생들과 함께 밥을 먹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님이 흔쾌히 아이를 같이 설득해주셨다. 만약 심각한 일이 생겼을 때만 전화했다면 그분이 나를 신뢰했을까? 아닐 것이다. 통합학급 교사가 일상적으로 학부모와 함께 의논하고 특수교사와 부담을 나누어 질 때 학부모와 교사가 협조적 관계가 될 수 있다. 문제는 민원이나 갈등 그 자체가 아니라, 교사 개인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구조에 있다. 아이의 성장을 위해 일반 교사·특수교사·학부모·전문 인력이 공동으로 협의하고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통합교육은 특수교사만의 일이 아니라 공동체 모두의 몫이자 책무이기 때문이다.

이수현 교사가 아들 정우(왼쪽), 딸 연우(오른쪽)와 함께 웃고 있다. 이수현 교사는 “통합교육은 특수교사만의 일이 아니라 공동체 모두의 몫이자 책무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이수현 교사가 아들 정우(왼쪽), 딸 연우(오른쪽)와 함께 웃고 있다. 이수현 교사는 “통합교육은 특수교사만의 일이 아니라 공동체 모두의 몫이자 책무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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