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3일, 설계 오류로 무량판 구조 기둥 일부에 전단보강근이 빠진 경기도 오산시 LH 공공주택에서 보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8월3일, 설계 오류로 무량판 구조 기둥 일부에 전단보강근이 빠진 경기도 오산시 LH 공공주택에서 보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우연히 발생한 사고가 한 업계의 구조적 병폐를 드러내는 순간이 있다. 4월29일 인천 서구 검단 자이 안단테 아파트 시공 현장에서 일어난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가 그랬다. 골조 공사가 마무리된 시점에서 지하주차장의 ‘지붕’ 격인 지상 슬래브(상판)에 흙을 들이붓다가 무게를 견디지 못한 ‘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현장에는 무너진 슬래브와 흙더미 사이로 콘크리트 기둥만 앙상하게 남았다.

이번 사고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전문가 12명으로 구성된 특별점검단이 소집됐다. 조사를 마친 특별점검단은 7월5일, 이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설계-감리-시공 전 단계에 총체적 부실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시공사 GS건설은 곧바로 전면 재시공을 약속했고, 발주처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비슷한 방식(무량판 구조)으로 지은 다른 공공 사업장을 점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이 점검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7월30일, 국토교통부와 LH는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LH아파트 91개 가운데 15곳에서 추가로 부실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이 조사도 완벽한 게 아니었다. 조사에 누락된 아파트가 뒤늦게 발견되었고, 추가 조사 결과 현재까지 총 102개 아파트 가운데 20곳에서 부실이 발견됐다. 검단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한국 건축산업에 광범위하게 확산된 부실을 ‘어쩌다가’ 드러냈을 뿐이었다.

이번 사태를 제대로 살펴보려면 논란이 되고 있는 ‘무량판 구조’에 대한 간단한 이해가 필요하다. 높은 건물을 지을 때 기둥(또는 벽)과 상판(슬래브)을 연결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벽식, 기둥식 그리고 무량판식 공법이다(〈그림〉 참조). 벽식은 벽 자체가 기둥 역할을 하는 구조다. 그동안 대다수 아파트가 이 구조로 지어졌다. 상부 하중이 분산되어 튼튼하지만 단점도 크다. 벽을 타고 전달되는 층간 소음이 가장 큰 문제다. 천장(상판)을 지지하는 내력벽을 부숴서 리모델링하기도 어렵다. 벽 안에 넣은 배관, 배선 등도 교체하기 어렵다. 한국식 아파트의 수명이 30년 남짓에 불과한 것도 벽식 구조 건물을 고치는 데 제약이 많아서다. 그래서 국토교통부는 최근까지 각종 고시를 통해 건물의 수명을 늘리기 위한 방편으로 기둥식이나 무량판식 공법을 권장해왔다.

기둥식과 무량판식은 모두 ‘벽 대신 기둥으로 슬래브를 지탱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기둥식에는 기둥과 기둥 사이를 이어주는 ‘보’가 있다. 보 위에 슬래브를 까는 게 전통적인 기둥식 공법이다. 다만 단점이 있다. 자연스럽게 보의 크기만큼 층고가 높아진다. 건설 비용이 그만큼 늘어난다. 보와 보 사이에 빈 공간이 생겨 천장 공간을 온전하게 활용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보 없이, 기둥 위에 바닥을 그대로 깔아버리면 안 될까? 그걸 가능하게 하는 공법이 바로 무량판 구조다.

검단 자이 안단테 아파트 사고를 대중은 ‘순살 아파트’라며 지탄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표현이다. 철근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보 없이 지으려면 반드시 추가 보강해야 하는 철근’이 누락된 게 문제였다. 이게 바로 ‘전단보강근’이다. 보 없이도 슬래브를 지탱하려면 기둥 주변에 전단보강근을 보충하거나 하중을 지탱하는 보조 설비를 기둥에 붙여야 한다. 역학적으로 전단보강이 되지 않는 무량판 구조는 하중이 과할 경우 슬래브가 기둥에 뚫려버리는 문제가 생긴다(펀칭전단). 이번 검단 자이 안단테 붕괴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전형적인 예시다.

보강 공사는 상부 슬래브의 하중을 지탱하기 위한 외부 구조물을 기둥에 덧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연합뉴스
보강 공사는 상부 슬래브의 하중을 지탱하기 위한 외부 구조물을 기둥에 덧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연합뉴스

자칫 잘못하면 위험이 발생할 것 같지만, 공법에는 죄가 없다. 무량판 구조를 택한 게 문제가 아니라 한국 건축업계가 무량판 구조를 제대로 설계-시공-감리하지 못하는 바람에 이 사달이 났다. ‘순살 아파트 논란’은 누군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철근을 빼돌리다 들킨 횡령 사례가 아니다. 건축산업 전반의 무능과 태만의 결과다. 검단 자이 안단테 붕괴 사고만 놓고 봐도 그렇다. 특별점검단에 따르면, 구조설계 과정에서 총 32개 기둥 가운데 15개에 전단보강근 설계가 누락된 것으로 확인됐다. 시공 단계에서도 설계상 전단보강근이 들어갔어야 할 8개 기둥 중 4개 기둥에 전단보강근이 빠져 있었다. 설계에서도, 시공 과정에서도 넣어야 할 철근을 빠뜨린 셈이다.

검단 자이 안단테 외에 현재까지 확인된 전단보강근 누락 아파트는 총 20곳이다. 이들 부실 건축 사례 가운데 가장 많은 ‘부실 유형’이 바로 설계 오류다. 구조 계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 규격에 맞지 않는 철근을 사용하게 하거나, 아예 도면에 전단보강근 표기를 빠뜨린 경우가 가장 많았다. 우리가 흔히 ‘전문가들이 하는 일’이라고 여기는 건축설계도 작성 단계에서 가장 많은 부실이 발생한 셈이다.

‘LH 전관 카르텔’ 탓하는 정부

정부는 이 같은 부실의 근본적 원인으로 ‘LH 전관’과 ‘이권 카르텔’을 꼽고 있다. 이번 사태의 책임이 있는 설계-감리 업체 다수에 전직 LH 고위층 인사들이 재직 중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8월17일 김영민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부회장은 〈경향신문〉이 마련한 전문가 좌담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해보니 철근 누락된 아파트 단지 15곳을 맡은 구조기술 업체 8곳이 모두 도면 작업을 하지 않은 것이 확인됐다. 이중계약서를 쓰고 건축사가 다른 업체에 재하청을 준 것이다”라고 밝혔다. 전관 업체들이 설계-감리 용역을 수주하고, 막상 중요한 도면 작성은 다른 업체에 하청을 주는 구조가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7월31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LH가 발주한 공공주택의 무량판 구조 안전 점검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7월31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LH가 발주한 공공주택의 무량판 구조 안전점검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공공주택의 최종 발주처인 정부는 이 같은 설계-감리 업체의 구조적 문제를 ‘순살 아파트’의 원흉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동안 건설 시공 현장에서 노조를 지칭하는 용어였던 ‘이권 카르텔’을 확장해 ‘전관 카르텔’로 변용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연이은 발언에서 정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원 장관은 7월30일 “국민 안전을 도외시하던 건설 분야의 이권 카르텔과 비정상적인 관행을 근본적으로 혁파”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8월6일에는 부실 건축 현장을 찾아 “공공주택에서 이런 사태가 재발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이권 카르텔을 반드시 근절하겠다”라고 말했다. 8월20일에는 범주를 넓혀 “전관 카르텔은 공공의 역할에 대한 배신”이라며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병폐가 전관 출신들이 포진한 설계-감리 업체에 있다고 주장했다. LH는 결국 8월20일, 전관 업체와의 설계-감리 용역계약 11건(648억원 규모)을 일방 해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정부의 주장대로 전관 업체를 발붙이지 못하게 하면 사태는 재발하지 않고 해결되는 것일까? ‘전관 혁파’는 근본적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손쉬운 국면전환 카드에 가깝다. 이번 20개 부실 아파트 역시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공공이 짓는 것보다 훨씬 많은 민간 아파트 점검이 아직 진행 중이다. 국토교통부는 8월3일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민간 아파트 293곳(시공 중인 아파트 105곳, 2017년 이후 준공된 아파트 188곳)의 안전점검을 9월 말까지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수치는 이후 오락가락한다. 특히 2017년 이후 준공된 아파트가 188곳에서 290곳으로, 다시 270여 곳으로 조정되며 8월24일 현재까지도 조사 대상 아파트 수가 확실치 않은 상황이다.

8월11일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기자회견에서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8월11일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기자회견에서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혼선이 계속되는 원인은 상당수 민간 아파트가 벽식 구조와 무량판 구조를 섞어서 짓기 때문이다. LH가 발주한 공공 아파트는 대부분 지하주차장 건축 과정에서만 무량판 구조를 사용했다. 그러나 민간이 짓는 아파트에서는 사람이 사는 주거동에도 무량판 구조를 부분적으로 도입한 경우가 많다. 무량판 구조가 입주자의 수요에 맞춰 집을 리모델링하기 용이해서다. 이 경우 외벽과 중심부(엘리베이터와 계단이 있는 부분)는 벽식으로, 집 내부(방과 방 사이)는 무량판식으로 구성한다.

민간 주택 점검, 시작부터 삐거덕

국토교통부는 혼합 구조로 지은 아파트라 해도 무량판 기둥이 지지하는 하중이 25%가 넘는 민간 아파트는 모두 조사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조사 비용과 주민들의 반발이 관건이다. 정부는 조사 비용을 시공사가 부담하게 할 방침인데, 민간 시공사가 자발적으로 충분히 비용을 들여 철저히 조사할지는 미지수다. 철저히 조사하더라도 그 결과를 LH가 발주한 공공주택처럼 발표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안전만 생각한다면 문제가 있는 주택을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보강 조치를 서두르는 게 맞다. 그러나 자산 손실을 우려하는 입주민 입장에서는 ‘철근이 빠졌다’는 게 공개적으로 알려지는 걸 꺼릴 수 있다. 입주민들의 반발로 조사 자체가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만약 실제로 전단보강근이 빠져 있다면, 입주민들이 소송 등을 통해 재산상 손해를 시공사에 전가할 가능성도 크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시공사가 (자비를 들여) 책임 있는 조사를 할 거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LH 전관’에만 초점을 둘 게 아니라 한국식 건축 시스템 전반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2021년부터 LH 설계용역 계약 문제를 제기했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8월21일 기자회견을 열고 10가지 제도개선 방안을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이 중에는 전관 업체에 대한 견제뿐 아니라 직접 시공제 확대, 분양 계약 시 설계 도면 등을 계약 서류로 첨부하기, 감리보고서 공개, 시공 현장 출입권 보장, 지역건축센터 설립 의무화 등이 담겨 있다. 건축주와 다름없는 분양권자들이 건축 과정 전반을 감시할 수 있도록 건축 관련 정보를 보다 투명하게 공개하자는 것이다.

건설업 채권 평가 분야에 재직한 한 애널리스트는 한국 건설사의 사업 특징을 이렇게 설명한다. “아파트를 중심으로 노하우를 쌓아온 한국 건설업계는 사실 ‘시공 실력’ 면에서 다른 나라보다 뒤떨어진다. 한국에서 아파트로 쉽게 돈을 벌지만, 막상 실력이 필요한 해외 플랜트 사업에서 돈을 까먹기 일쑤다.” 이 지적은 시공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HDC현대산업개발의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부터 이번 LH 발주 ‘순살 아파트 논란’까지. 문제의 핵심은 일해야 할 사람들이 제대로 일하지 않은 데서 나왔다. ‘무량판 구조도 제대로 구현 못하는 한국 건축’은 화려한 조감도와 값비싼 분양가에 가려진 허약한 내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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