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LH 직원들이 사들인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17○-6번지(2739㎡), 17○-7번지(3996㎡) 토지.

나무만 보다가 숲을 놓칠 때가 있다. LH 직원들이 매입한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무지내동 토지는 각종 자원순환 업체(고물상 등)와 야적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언론을 통해 LH 직원들의 ‘나무 재테크’가 부각되었지만, 오히려 이들이 사들인 땅은 이 일대에서 ‘제 목적(농업)’에 부합하는 얼마 안 되는 사례였다. ‘토지 보상’의 메커니즘을 잘 아는 이들은 개발이 멈춰 방치되고 불법 전용되던 땅을 3기 신도시 발표 직전에 다시 농토로 회복시킨 것이다.

LH 직원들이 매입한 과림동 17○-6·7번지와 17○-2번지 일대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자. 이 세 필지 인근에는 불법 폐기물 야적장과 고물상이 즐비하다. 원래는 농토였던 땅이다. 이들 야적장·고물상의 지목은 여전히 전(밭)과 답(논)이다. 농사를 짓던 농토 바닥에 마사토(모래보다 입자가 굵고, 자갈보다는 작은 흙)를 깔고 가림막을 설치한 뒤 고철·건축폐기물 등을 쌓아올리는 식으로 영업 중이었다.

원래 농지(전·답·과수원)에 야적장을 만들거나 고물상이 들어서기 위해서는 농지를 다른 용도로 쓰겠다는 일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조건이 있다. 4m 이상 진입로를 확보하고, 침출수가 지면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바닥을 콘크리트 등으로 포장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3월7일에 방문한 이 일대의 다수 야적장은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고 있었다. 그런 야적장과 고물상이 2010년대 들어 동네 논밭을 점점 채우기 시작했고, 이는 시흥시 지역민의 골칫거리이기도 했다. 토지 오염과 화재 위험이 따라다녔다. 실제로 2019년 8월과 2020년 5월 야적장에 쌓인 쓰레기 더미에서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토지 보상 체계를 따져보면 어째서 이 동네에 유독 불법 야적장이 많은지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3기 신도시 같은 ‘개발 호재’가 생기면 땅 주인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광명·시흥 신도시 예정지를 비롯한 서울 인근 지역은 개발 호재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지가가 오르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언젠가는 개발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계속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정부 주도 신도시 개발을 통해 토지를 수용할 경우, 보상액은 감정가(공시지가보다 크게 높긴 힘들다)를 바탕으로 책정된다. 토지를 가진 사람이 시가보다 더 많은 보상금을 받기는 어렵다. 토지 원소유주는 양도차익에 따르는 세금(양도소득세)도 납부해야 한다. 신도시 발표 직전에 땅을 산다고 해서 곧바로 이익이 보장되지는 못하는 이유다.

현장은 반발하는 분위기로 팽배했다. 시흥시 과림동과 무지내동 곳곳에는 신도시 개발을 반대한다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었다. 토지 투자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수용이 더 손해’라는 말이 빈번하게 오간다. 이들로서는 이 지역의 개발 제한을 풀고 민간이 주도해 국지적인 개발을 하는 게 토지를 더 비싸게 매각하는 길이다. 민간개발 시에는 개발사·건설사가 경쟁적으로 가격을 띄우지만, 공공개발은 행정소송을 하더라도 보상금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오히려 신도시에 포함되는 땅보다 신도시 예정지와 맞닿아 있는 인근 지역 토지가 비싸게 팔린다.

광명·시흥 신도시 지역의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 이곳은 2010년 당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던 보금자리주택 지구 중 하나였다. 보금자리주택은 당시 정부가 거대 공기업이 된 LH를 통해 의욕적으로 추진한 공공주택 분양·임대 사업이다. 서울시 강남(세곡), 고양시 원흥지구, 하남시 미사지구 등 수도권 전역에 개발 사업을 일으켰고 이들 부지에서는 오늘날까지 아파트 건설이 한창이다.

ⓒ연합뉴스3월10일 공전협 각 지역 대표와 주민이 LH를 규탄하며 3기 신도시 전면 백지화를 촉구하고 있다.

농작물 보상, 대토 보상을 예상한 이익

광명·시흥지구(현 광명·시흥신도시)는 이런 보금자리주택지구 가운데 면적이 넓고 사업 규모도 큰 편이었다. 부지 규모가 1735㎡로 9만5000호를 공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런 대규모 공급이 부동산 경기 부양을 원했던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와 맞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LH의 부채를 더 키울 수도 있었다.

결국 정부는 2015년 이 땅의 개발을 포기(지구 해제)하고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했다. 특별관리지역이란 주택지구 해제 이후 난개발이 예상되는 지역을 10년간 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광명·시흥신도시 지역은 2025년까지 형질변경, 토지분할, 화물 적재 등이 원칙적으로 제한됐다. 농토를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승인이 일일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미 한 차례 불붙은 투기지역에서 다시 농사지을 사람에게 땅이 돌아가진 않았다.

정부의 개발정책이 멈추고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야적장’과 ‘고물상’은 점점 늘어났다. 경작하지 않은 채 땅을 놀리는 것보다는 이런 식으로라도 땅을 쓰거나 임대를 내주는 것이 이익인 셈이다. ‘언젠가 다시 개발될지 모르는 땅’이라는 인식에 지자체도 불법 전용을 일일이 막기 어려웠다.

반면 LH 직원들이 땅을 매입해 적극적으로 농토로 바꾼 것은 ‘보상의 순간(신도시 지정)’이 머지않았음을 감안했을 가능성이 높다. 3기 신도시의 토지 보상 과정은 통상적인 경우와 달랐다. 3기 신도시는 개발 속도가 중요했다. 하지만 시중에 50조원 가까이 보상금액이 풀리는 것을 우려한 정부는 대토 보상의 범주를 넓히기로 했다. 종전에는 현금 대신 받을 수 있는 땅 종류가 상업 용지와 단독주택 용지였던 반면, 3기 신도시에서는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공동주택 용지까지 가능케 한 것이다. 대토 보상 시 양도소득세 감면 비율도 15%에서 40%까지 확대했다. 농작물 보상, 대토 보상을 통한 절세 효과 등을 예상했다면 2020년에 토지를 시가로 매입하더라도 큰 이익을 낼 수 있었다.

신도시 수용을 반대하는 토지 소유주들은 LH 직원의 투기 사례를 오히려 동력으로 삼고 있다. 자신들은 감정가 수준 보상액만 책정된 반면, LH 직원들은 적정한 시점에 토지를 매수해 추가 수익(농산물 보상)까지 내려 했다며 분개한다. 공공주택지구 전국연대 대책협의회(공전협)는 3월10일 기자회견을 열고 “투기 의혹 조사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신도시 및 전국 공공주택 사업지구 수용·보상 절차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2019년 9월 당시 이언주 의원이 마련한 간담회에 참석해 양도소득세 감면 확대, 수용 전 개발제한구역 해제, 보상 시 시가 반영 등을 주장한 바 있다.

이들의 요구사항 대부분은 ‘자산가치 극대화’에 맞춰져 있다. 공공주택 공급사업의 목표는 이런 사적 이익 극대화가 가져오는 난개발을 막고, 쾌적하고 살기 좋은 도시를 조성하는 데 있다. 이를 무리 없이 추진하기 위해 법률로 보상 체계를 명시하며 주택 공급량을 빠르게 늘린 것이 그동안의 역사였다. 잡음을 최소화하고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는 결국 정부와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가 바탕에 깔려야 한다. 그 신뢰가 무너져버렸으니 토지 보상 체계에 대한 반발 역시 더 거세질 수밖에 없다. 당초 토지 보상 절차를 빠른 시일 내에 마치고 3기 신도시 분양과 입주를 서두르려 했던 정부 정책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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