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LH 직원들이 개발 정보를 이용해 3기 신도시 발표 이전에 매입한 시흥시 과림동 178번지 일대의 땅.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에 위치한 한 농토. 5025㎡ 규모 땅에는 성인 무릎 높이만 한 묘목이 빽빽하게 식재되어 있었다. 이곳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지분을 나누어 구입한 지역 중 하나다. LH 직원들은 이 땅을 2020년 2월에 22억5000만원을 주고 구입한 뒤, 그해 7월에 각각 1000㎡ 넘는 크기로 4분할 등기했다.

직접 찾아간 땅에서는 LH 직원들의 간절한 욕망의 흔적이 역력했다. 50㎝ 간격을 두고 심겨진 에메랄드그린 묘목은 가지치기를 할 필요가 없어 초보자도 키우기 쉬운 종으로 알려져 있다. 시중에서 약 5000원에 판매되는 묘목이지만 추후 공공에 수용되어 보상되는 경우 그 가격은 원가의 몇 곱절에 달한다.

땅은 인근 도로에 비해 지대가 높았다. 인근 주민들은 과거 이곳이 자갈로 다진 바닥이었다며 급하게 흙을 쌓아올린 뒤 나무를 심었다고 주장했다. 실제 2018년 위성 사진과 2016년 거리 사진을 살펴보면, 자갈밭이었던 이 땅이 건축폐기물과 폐유를 모으는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그런 땅이 어엿한 농토로 인정받아 농민을 위한 보상 체계에 편입될 뻔했다. ‘묘목 재테크’는 LH 직원들이 투기한 것으로 꼽히는 다른 땅에서도 현재진행형이었다.

3월2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의 고발로 드러난 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건은 ‘투기의 교과서’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LH 직원들의 땅 구입 시점, 융자 확보 경로, 이들이 구입 시 제출한 영농계획서, 땅에 경작한 각종 묘목이 상세하게 보도되면서 각종 수익을 극대화하는 노하우가 전국적으로 공유되었다.

LH 직원들이 집중적으로 매입한 지역은 지난 2월24일 국토교통부가 여섯 번째 3기 신도시로 발표한 ‘광명·시흥 신도시’의 한복판에 있다. 당초 투기 의혹을 받은 LH 현직 직원은 13명이었다. 그러나 여론의 공분이 거셌고, 정부는 정부합동조사단을 꾸려 주요 유관 기관과 부처 직원의 토지 거래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급한 대로 공무원·직원 본인의 토지 거래 내역을 확인한 1차 조사 결과가 3월11일 나왔다. 국토교통부 공무원 4500여 명, LH 직원 9900여 명 등 총 1만4500여 명에 대한 조사 결과다. 이날 정세균 국무총리는 민변과 참여연대에서 제기한 사례를 포함해 총 20명을 투기 의심 사례로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들 중 일부는 다른 3기 신도시 지역에서도 유사한 투기를 저지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번에 적발된 이들은 모두 LH 직원으로 현재 수사 단계로 이첩되었다. 국토교통부와 LH 직원 가족, 지자체 공무원과 지방 공기업 직원 및 가족에 대한 2차 전수조사도 진행 중이다. 2차 전수조사 대상은 10만명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3월10일, 시흥시청 소속 공무원 8명과 광명시청 소속 공무원 6명도 신도시 지역에 토지를 매입한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시흥시와 광명시는 해당 공무원들의 토지 매입에 투기성이 있는지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에 대한 투기 의혹은 정치권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모친이 경기도 광명시의 신도시 예정지 인근 땅을 매입한 사실이 드러나는가 하면, 김경만·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본인 또는 가족이 각각 시흥장현 공공택지지구, 화성비봉 공공택지지구 인근에 땅을 구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공무원과 공공기관 재직자, 정치권 인사까지 투기 의혹이 확대되고 있어 이 사태가 쉬이 가라앉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시사IN 조남진LH 직원 7명이 22억5000만원에 공동으로 사들인 땅에는 현재 에메랄드그린 묘목이 심겨져 있다.

소급입법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

당장 정부와 여당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합동조사단과 합동수사본부를 꾸려 각각 실태조사와 수사를 맡겼다. 그런데 조사와 수사 범위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이번 사건의 난점이 드러난다. 무엇을 투기로 볼 것인지, 어디까지 죄를 물을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이러한 투기의 반복을 막을 것인지가 불명확해서다.

투기를 벌인 LH 직원들은 대다수가 50대 이상으로 토지 관련 업무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다. 이들 중 일부가 LH과천의왕사업본부에서 토지보상 업무에 종사한 적이 있어 ‘과천 근무’를 매개로 정보를 공유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토지 수용 시 현금 보상금은 토지 매매 시가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차익에 따른 양도세도 물어야 하기 때문에 기대 이익도 크지 않다. 단순 차익을 노리고 토지 매매에 나서는 건 일반인들에게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러나 해당 토지가 신도시 지역으로 지정되고, 이곳에서 ‘대토 보상’을 받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토 보상이란 수용되는 땅을 돈 대신 새 땅으로 보상하는 방식이다. 부동산 가격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는 3기 신도시를 빠르게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보상금이 다시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대토 보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했다. 그런데 이번 3기 신도시 대토 보상 중 일부(단독주택용지 등)는 전매가 가능하다. 빠르게 차익 환수가 된다는 의미다.

또 보상받는 땅(대토)의 위치에 따라 추가 시세 차익을 거둘 수도 있어 이를 기회로 삼았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3기 신도시 대부분은 서울과 인접해 있어 오히려 ‘잘 정비되고 위치 좋은 땅’으로 돌려받는 것이 이익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런 상세한 노하우가 LH 직원들 사이에서 일종의 ‘암묵지’처럼 전해졌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하지만 현행법 체계에서 이들의 수익을 곧바로 회수하기는 쉽지 않다. 이 지역 땅을 구입한 LH 직원들의 이익을 환수하고 처벌하기 위해서는 부패방지법상 몰수 또는 추징 조항을 적용해야 한다. 몰수·추징하기 위해서는 수사기관이 피의자가 내부 정보를 불법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토지를 거래한 직원의 내부 정보 활용 여부를 모두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부당이익 환수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뒤따른다.

이 때문에 처벌과 방지책을 빠른 입법으로 보강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된다. 3월8일, 이번 사태를 고발한 민변과 참여연대는 정의당 심상정 의원을 통해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을 입법 청원했다. 미공개 중요 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거나, 이를 이용한 거래를 금지하는 조항을 넣고, 이를 위반할 경우 최대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연합뉴스3월9일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회의에서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이미 거래한 이들에 대한 소급 적용 문제가 남아 있어서 논란이 뒤따른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3월9일 국회 국토교통위 현안 보고에서 “논란이 있지만 ‘부진정 소급입법’을 통해, 이익이 실현되지 않은 경우도 (토지 몰수를 위한 특별법 소급적용 제정 등으로 처벌이) 가능한지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부진정 소급입법(不眞正遡及立法)’은, 과거에 시작되어 현재 진행 중인 행위에 새롭게 만든 법을 적용(소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2021년 3월 현재, LH는 자사 직원이 투기한 토지를 포함한 3기 신도시의 예정 부지를 아직 수용하지 않은 상태다. 즉, LH 직원들이 지금까지는 부당이익을 취득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을 겨냥한 새로운 법을 제정해서 적용하는 것이 법률적으로 타당한가의 문제다. 변 장관의 문제 제기는 한가롭게 들리지만 대한민국 헌법의 원칙(형벌 불소급)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에, LH 직원들의 투기를 겨냥한 입법이 현실화되면 헌법재판소에서 심의할 사안이 될 가능성이 높기는 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은 구체적으로 이해충돌방지제도(공직자 등 공공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자가 이를 남용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차단하는 규제)를 추진할 계획이다. 3월10일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당 원내대표단과의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은 이해충돌방지의 제도화를 특히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이 통과될 당시, 이해충돌방지 조항이 제외된 바 있는데 이를 이번 기회에 반영하자는 주장이다. 이해충돌방지법이 입법될 경우 직무상 알게 된 비밀(예컨대 신도시 개발 정보)을 이용하는 행위에 대한 규제가 더욱 엄격해진다. 2015년 당시에는 법 적용의 범위가 너무 넓다는 이유로 현실화되지 못했다.

대규모 주택단지를 개발할 때마다 지적되는 ‘농지법’ 문제도 전면 검토 요구가 잇따른다. 3월10일 농민단체 대표들은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부 정보에 의한 불법 투기도 문제지만 핵심은 농지의 무분별한 훼손을 열어둔 현행 법체계”라고 지적했다.

농지는 헌법상 경자유전 원칙에 따라 농민만 소유할 수 있다. 그러나 농지법상 예외조항에 따라 이번 LH 직원들처럼 영농계획서만 제출하면 사실상 누구나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번 사태에서도 토지를 구입한 LH 직원들이 지자체에 제출한 영농계획서와 달리 논(답)이나 밭(전)에 묘목을 심는 모습이 여론의 공분을 샀다. 공공기관 재직자의 직업윤리 문제를 넘어, 이 사태는 한국 사회에서 ‘땅’이 갖는 의미까지 되짚어보게 만들고 있다.

ⓒ시사IN 조남진3기 신도시 개발 예정지역인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일대에는 신도시 개발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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