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서 한 남성이 주간지 〈일요신문〉을 읽고 있다. ⓒAFP PHOTO
프랑스 파리에서 한 남성이 주간지 〈일요신문〉을 읽고 있다. ⓒAFP PHOTO

프랑스 국민의 일요일을 함께한 주간지 〈일요신문(Le Journal du Dimanche·JDD)〉이 창간 이래 가장 큰 위기에 처했다. JDD는 1948년부터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같은 유력 정치인을 인터뷰하고, 각종 전문가들의 논단을 제공해왔다. 이 주간지가 기자들의 파업으로 5주 동안 발행을 멈췄다.

극우 성향 주간지 〈발뢰르 악튀엘(Valeurs Actuelles)〉의 전 편집장 조프루아 르죈을 신임 편집장으로 임명한 게 파업의 원인이다. 르죈은 극우 평론가 출신이며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프랑스의 트럼프’ 에리크 제무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제무르가 창당한 재정복당(Reconquete!)의 부대표이자, 국민연합(RN) 대표 마린 르펜의 조카인 마리옹 마레샬과 가까운 사이다. 르죈이 편집장이던 〈발뢰르 악튀엘〉은 인종차별적 기사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이 매체는 2020년 8월 가봉 출신의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당 국회의원 다니엘 오보노를 목에 쇠줄을 찬 노예로 묘사한 ‘아프리카인 오보노(Obono l'Africaine)’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지난 6월22일 본격 파업에 돌입한 JDD 기자들은 르죈 편집장 임명에 반대하는 공식 성명을 냈다. 이 성명문에서 JDD 기자들은 “조프루아 르죈은 JDD가 75년간 지켜온 가치와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인물이며 그의 지도하에 〈발뢰르 악튀엘〉은 혐오와 잘못된 정보들을 퍼뜨렸다”라고 밝혔다. 기자 93%가 파업에 참여했다. 다음 날 사측인 라가르데르 그룹이 르죈 임명을 공식 발표하자 더 많은 기자들이 파업에 참여해 6월24일에는 98%에 달했다. 6월26일에는 JDD 전 편집장 8인이 AFP 통신에 파업 지지 의사를 담은 서한을 보냈다. 서한에는 “신임 우파 편집장 임명은 이제 극우가 미디어에 자리를 잡았다는 증명이자 도발이다. 이뿐만 아니라 독자와 편집부 자체를 부인하는 것과 같다”라는 메시지가 담겼다.

그러나 사측은 임명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라가르데르 그룹 대표인 아르노 라가르데르는 6월26일 일간지 〈르피가로〉 인터뷰에서 “경제적 이유에 따른 결정일 뿐 결코 사상적인 결정이 아니었다. 편집부의 (출간) 노선을 바꾸려고 조프루아 르죈을 택한 것이 아니다. 그에게 시간을 주고 어떻게 일하는지 지켜보자”라고 말했다.

기자들은 모금 사이트를 만들며 시민들에게 파업의 정당성을 알렸다. 6월27일 라가르데르의 방문에도 파업을 계속 이어갔으며, 7월5일 조프루아 르죈과의 첫 회동도 거절했다. 시민들의 호응이 뒤따랐다. 7월25일까지 후원금 약 3만 유로(약 4300만원)가 모였다. 6월27일 일간지 〈르몽드〉에는 학계와 출판계 인사 400명이 서명한 지지논평이 발표됐다. 논평에서 지지자들은 “기자들은 완전히 독립적으로, 특히 주주들로부터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미디어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중요한 자본 중 하나다”라고 선언했다.

JDD 파업 사태는 프랑스 언론이 처한 위기를 드러낸다. 재계의 개입으로 프랑스 언론이 편집권 독립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6월1일에는 명품 브랜드 그룹 LVMH가 소유하고 있는 경제지 〈레제코〉의 편집부가 편집권 독립을 주장하며 파업을 하기도 했다. 여기에 JDD 파업은 극우 인사가 주요 언론 매체의 편집장으로 임명됐다는 데 그 의미를 더한다. 언론역사학자 알렉시 레브리에는 주간지 〈라비(La Vie)〉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견해를 내비치는 언론과 중립적인 언론이라는 이분법은 늘 존재해왔다. 하지만 이번 사안에서 새로운 점은 급진적인 극우 인사가 메인스트림(주류) 언론에 진입했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조프루아 르죈 〈일요신문(JDD)〉 편집장. 그의 임명은 내부 기자들의 대규모 파업을 불러왔다.ⓒGoogle 갈무리
조프루아 르죈 〈일요신문(JDD)〉 편집장. 그의 임명은 내부 기자들의 대규모 파업을 불러왔다.ⓒGoogle 갈무리

특히 이번 사태의 배후에는 2014년부터 미디어 기업을 인수하고 우파 성향 뉴스 위주로 개편해온 억만장자 뱅상 볼로레가 있다. 라가르데르 그룹은 JDD 외에도 주간지 〈파리 마치〉, 유럽 1 라디오, 아셰트 출판사 등을 거느린 종합 미디어 기업이다. 뱅상 볼로레는 이런 라가르데르 그룹을 공개 매입(OPA)을 통해 인수했다. 이 때문에 라가르데르 산하 언론사가 볼로레 소유의 다른 언론사들과 유사하게 개편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도래했다.

억만장자의 ‘우파 뉴스 만들기’

실제로 뱅상 볼로레는 지난 5월 유럽의회의 공식인수 허가가 나기 전부터 〈파리 마치〉 편집장을 교체하고, 자신의 형인 미셸이브 볼로레의 책에 관한 기사를 싣게 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6월25일 라디오 프랑스앵포는 “뱅상 볼로레는 힘으로 미디어 제국을 만들어왔으며 반항자들을 처벌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라고 보도했다. 볼로레는 2015년 카날플뤼스 TV 채널을 인수하면서 탐사보도 프로그램들을 폐지하고, 편성된 영화 방영을 취소했다. 2016년에는 독립권을 주장하며 파업한 이텔레(i-Télé) 채널 직원들과 대립하기도 했다. 이후 세뉴스(CNEWS)로 채널명을 바꾸게 된 이 채널은 다수의 직원을 떠나보낸 뒤 우파 색채를 띤 방송을 이어왔다.

뱅상 볼로레는 라가르데르 그룹이 소유한 언론 매체에도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했다. 〈파리 마치〉 정치경제부 팀장 브루노 주디는 보수적인 추기경 로베르 사라를 비판하는 기사를 싣고 나서 해임됐다. 지난 7년간 뱅상 볼로레의 언론 장악을 탐사보도하고 있는 온라인 매체 'Jours.fr'의 이자벨 로베르 기자는 7월9일 라디오 프랑스앵포와의 인터뷰에서 “이 모든 결정의 배후에는 뱅상 볼로레가 있는 게 확실하다. 각각의 편집부에 완전히 같은 방식으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 달여간 이어진 파업에도 결국 조프루아 르죈은 8월1일 JDD 편집장으로 임명됐다. 프랑스 언론 역사에 손꼽힐 만한 파업이지만, 프랑스 정치권의 반응은 대체로 미온적이다. 언론이 특정 정치색을 띠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극좌 성향 정당인 LFI당 대표 장뤼크 멜랑숑은 7월15일 개인 블로그에 “JDD는 이미 우파 성향을 지니고 있었으며 기자들은 오래전부터 대표에게 ‘비굴하게 아첨’하는 데 익숙했다”라며 파업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JDD 파업에 적극 나서는 일부 정치인도 있다. 7월17일 LFI당과 르네상스(Renaissance)당 의원 15명은 기자들에게 ‘편집장 임명 승인권’을 부여해 언론의 편집권 독립을 보호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실뱅 마야르 르네상스당 대표는 르죈이 편집장으로 있는 JDD와는 당분간 인터뷰하지 말라는 당내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에도 상황은 더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8월13일 일요일 라디오 프랑스앵테르에 출연한 JDD 기자협회 소속 쥘리에트 드메와 베르트랑 그레코는 “10월 말까지 약 90%의 기자들이 JDD를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명 파리∙이유경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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