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중재지(place of arbitration)’인 영국 법원에 ‘엘리엇 ISDS’ 판정의 취소 소송을 제기한다고 한다. 그런데 ‘중재지’란 무엇인가? 취소 소송에서 한국의 승소 가능성은 있는가? 이를 예측하려면 ‘중재(arbitration)’라는 것에서부터 ISDS까지 조금씩 이해도를 넓혀갈 필요가 있다.

'한국 대 엘리엇' ISDS에 중재 서비스를 제공한 PCA는 네덜란드 헤이그 평화궁(Peace Palace)에 소재하고 있다. ⓒAP Photo
'한국 대 엘리엇' ISDS에 중재 서비스를 제공한 PCA는 네덜란드 헤이그 평화궁(Peace Palace)에 소재하고 있다. ⓒAP Photo

소송과 중재의 차이

개인과 개인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는데 어느 쪽도 양보하지 않을 때, 이를 해결하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은 소송이다. 국가(사법부)를 대리하는 판사가 법정에서 양측의 의견과 증거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판결한다. 재판은 일종의 분쟁해결절차다. 재판보단 훨씬 적게 열리지만 비교적 널리 사용되는 분쟁해결절차가 바로 중재다.

소송을 주재하는 것은 국가다. 국가가 재판관을 파견한다. 중재는 민간 차원에서 이뤄진다. 민간의 분쟁 당사자들이 서로 합의해서 자신들의 다툼을 해결할 사람들(소송이라면 재판관)을 선정한다. 이 사람들이 바로 중재판정부다. 뿐만 아니라 분쟁 당사자들은 중재절차를 어떻게 진행할지, 중재판정부가 어떤 규칙(법률)에 따라 옳고 그름을 따질지까지 합의해서 결정한다. 이처럼, 소송과 중재는 비슷하면서도 아주 다르다. 소송의 결과가 판결이라면 중재의 결과는 판정(awards)이다.

중재에선 판사가 아닌 ‘민간인’이 판정을 내린다. 그러나 판정은 판결만큼이나 엄정하게 집행된다. 대다수 국가는 ‘중재판정에 승복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률(중재법)로 판정의 강제성을 보장하고 있다. 국가가 중재의 절차에선 빠져 있지만, 판정의 집행엔 개입하고 있는 셈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중재판정이 소송의 판결보다 더 엄혹하다. 소송은 대체로 3심제지만, 판정은 단 한 번으로 끝난다(단심제).

패배한 당사자가 중재에 불복하는 경우, 중재법에 따라 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취소 소송으로 판정을 뒤집기는 무척 어렵다. 중재절차에서 매우 기괴한 일(예컨대 판정부가 당사자들의 합의 없이 구성되었다거나 뇌물을 받는 등)이 발생했거나 판정이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를 위배한” 경우 정도다.

국제중재기관을 두는 이유

중재는 한 국가 내에서가 아니라 국제적 차원에서도 이루어진다. 이런 국제중재에서도 중재판정부는 분쟁 당사자들의 합의로 구성된다. 다만 상황은 조금 더 복잡하다. 한국 내에서 한국인끼리 중재절차를 밟는다면, 이를 진행하는 규칙으로 국내법이나 관행을 채택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중재에서는 다른 나라 국적의 기업(개인)들 간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 어떤 장소에서 중재 심리를 진행할지, 심리 절차를 어떻게 전개할지 등이 무척 모호하다. 원칙적으론 양측이 합의하면 되겠지만 중재와 관련된 세세한 사안들을 일일이 논의하려면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

이런 장소와 규칙은 물론 분쟁 당사자들에 대한 통지, 사건 기록과 증거 보관 등 일체의 서비스를 패키지로 제공하는 영리기관들이 있다. 이른바 ‘국제중재기관’이다.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 국제상공회의소(ICC), 런던국제중재법원(LCIA)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한국 대 엘리엇 ISDS’에 중재 관련 인프라와 서비스를 제공한 PCA도 이런 국제중재기관 중 하나다. 국제중재기관을 ‘국제법정’쯤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분쟁 당사자들이 중재판정부를 이미 구성해 놓았고, 국제중재기관은 당사자들이 원하는 서비스만 제공하면 된다.

국제중재에서 판정의 집행은 어떻게 이뤄질까? 국내에서 이뤄지는 중재판정의 집행을 강제하는 것은 중재법과 법원이다. 국제중재에서는 국제조약이 그 역할을 한다. 일단 국제중재에서 판정이 나오면, 체약국들은 그 판정이 자국에 불리하더라도 집행에 협력하도록 국가들끼리의 약속이 성립되어 있다. 이 약속을 어기면 엄청난 국가적 불이익을 감당해야 하므로 국제중재의 판정에 저항할 만큼 간 큰 국가는 없다.

중재지란 무엇인가?

만약 국내의 중재판정에 당사자 중 하나가 불복하는 경우라면, 중재법에 따라 국내 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국제중재에서는 이른바 ‘중재지’의 법원이 비슷한 역할을 한다. 분쟁 당사자들은 본격적인 국제중재 절차에 들어가기 전에 ‘중재지’에 대해서도 합의해 둔다. 이름은 ‘중재지(place of arbitration, 중재가 이뤄진 장소)’지만, 중재 심리를 그 나라에서 진행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곳에서 중재가 이뤄졌다고 간주하자’는 정도의 의미다. 그러나 이렇게 해놓으면, 중재절차 완료 이후 판정에 하자가 있다고 생각할 때 ‘중재가 이뤄진 그 장소의 법원에 한 번 더 물어보자’라며 취소 소송을 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둘 수 있다.

그러나 중재란 그 속성상 국내든 국제든 판정을 뒤집을 가능성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만큼이나 희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ISDS는 국제중재의 일종

ISDS는 국제중재의 일종이다. ISDS는 다른 국제중재들과 거의 비슷하게 진행되지만 다른 점이 있긴 하다. 대다수 국제중재의 분쟁 당사자는 ‘기업(개인) 대 기업(개인)’이다. ISDS의 분쟁 당사자는 ‘투자 기업 대 피투자 국가’다. 또한 기업은 피투자 국가에 대해 ISDS를 제기할 수 있지만, 국가는 투자 기업에 제기할 수 없다. 다만 기업이 ISDS를 제기하려면, 해당 업체의 소속 국가와 피투자 국가 사이에 조약(자유무역협정 등)이 체결되어 있고, 그 조약에 ISDS 관련 조항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엘리엇 ISDS’는, 이 사모펀드의 국적인 미국과 한국 사이에 체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기반한 것이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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