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이 ‘승리’를 선언했다.
지난 3년10개월 동안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은 한국으로부터 거액의 손해배상금(7억7000만 달러, 한국 원화로는 9917억원)을 받아내기 위해 ‘국제중재(ISDS) 판정부’에서 치열하게 다투어 왔다. 6월20일 중재판정부는 한국이 엘리엇에 5358만여 달러(약 690억원)의 손해배상금, 이 금액에 대한 지연이자(2015년 7월16일부터 판정일까지 복리로 계산), 엘리엇이 한국과의 ISDS에서 사용한 법률비용 등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중재판정부가 한국의 손해배상금으로 책정한 금액(5358만 달러)은, 엘리엇이 당초 청구한 액수(7억7000만 달러)의 7% 정도다. 이에 따라 법무부(장관 한동훈)는 자랑스러워 보이는 어투로 “배상원금 기준 약 7% 인용, 정부 약 93% 승소”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일부 언론은 한국의 ‘사실상 승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엘리엇은 달랐다. 아예 입장문에 ‘엘리엇의 승리(Victory for Elliott)’라는 문구를 박아넣어, 6월20일(미국 현지 시각) 배포했다.

엘리엇의 창립자는 변호사 출신인 폴 싱어 회장(사진)이다. ⓒAP Photo

실제 지급액은 1400억원

입장문에서 엘리엇은 한국으로부터 1억850만 달러(약 1400억원)를 지급받게 되었다며, “엘리엇의 승리는, 정부 관료들과 재벌의 부패한 유착이 투자자에게 피해를 끼쳤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손해배상금 자체는 690억원이지만 지연이자와 엘리엇의 법률비용 등을 합치면, 한국이 엘리엇에 지급할 실질 금액이 1400억원에 이르는 모양이다.

엘리엇은 이번 판정에 큰 의의를 부여했다. “우리가 알기로, 이번 사건은 아시아에서 주주행동주의 전략을 취하는 투자회사가 투자 대상국의 최고위층으로부터 기인한 부패한 범죄행위에 대하여 국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최초의 투자자-국가 분쟁 사례다.”

만약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삼성물산 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에게 합병 찬성표를 던지도록 압박했더라도, 그것의 목적이 ‘국가경제의 건전한 미래’로 입증되었다면, 이번 ISDS에서 한국은 손해배상금을 물게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설사 대통령의 압박이 부적절했더라도, 해외에서 벌처펀드(vulture fund : 썩은 고기를 찾아다니는 독수리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초과수익을 노리는 펀드)로 불리는 엘리엇이 한국 경제의 중추 중 하나인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 ‘공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가 공익을 위해 외국인 투자자의 이익을 침해한 것으로 입증된다면 한미 FTA에 규정된 ‘한국의 미국인 투자자 보호 의무’ 관련 조항들을 침해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실제로 한국 측은 서면에서 그렇게 주장했다.

“아시아 최초의 승리!” 환호하는 엘리엇

그래서 엘리엇은 중재판정부에 낸 서면에서 ‘박근혜가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연금공단을 압박했다’고 반복해서 주장했고, 이는 판정 결과에 관철된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의 입장문에 ‘투자회사(엘리엇)가 투자 대상국(한국)의 최고위층(청와대)으로부터 기인한 부패한 범죄행위(연금공단의 합병 찬성 표결)에 대하여 국가를 상대로 승리’라는 문구를 보면 그렇다. 6월21일 현재 판정문이 시중에 배포되지는 않았으나, 이번 국제중재의 당사자인 엘리엇은 그 내용을 상세히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엘리엇은 입장문에 이번 사건의 “(정부 관료와 재벌 간의 유착 관련) 사실관계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법원 및 검찰에 의해서도 이미 지난 수년간 입증되고 널리 인정된 바 있다”라며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장관이 검찰 재직 당시 수사 및 형사 절차를 통해 이미 입증한 바”라고 서술했다.

이는 윤 대통령과 한 법무장관이 검사 시절 주도한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당시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제3자 뇌물죄를 적용한 사실을 가리킨 것이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홍완선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 등을 통해 연금공단 투자위원회의 합병 찬반 결정에 압력을 미쳤다는 것은 입증 가능했다. 그러나 박근혜 본인은 합병 찬성의 수혜자인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 등으로부터 직접 뇌물을 받은 바 없다. 그러나 박근혜의 측근인 최서원(최순실)은 자신이 만든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삼성으로부터 16억2800만원을 수령한 바가 있었다. 박근혜의 연금공단 압박에 공익적 요소가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즉, 박근혜를 법정에 세우려면 제3자 뇌물죄(공무원 본인이 아니라 그 측근인 제3자에게 뇌물을 제공하며 부정한 청탁을 한 혐의)라는 혐의가 적절했다.

실제로 엘리엇이 한국에 ISDS를 제기한 시점은, 국정농단 관련 수사가 상당 부분 진행되어 박 전 대통령 등 피의자들의 혐의 사실이 언론과 재판정에서 공개적으로 거론되던 때였다. 엘리엇은 한국 검찰이 제기한 혐의 사실들을 중재판정부에 제출한 서면에 빼곡히 제시하며 ‘한국의 부정부패로 인해 외국인 투자자가 손해를 봤다’라고 주장했다.

벌처펀드로 불리는 엘리엇은 입장문을 마무리하며 한국에 점잖은 훈계를 남겼다. “이번 중재판정은 지난 정권의 행위에 대하여 대한민국의 명백한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서, 엘리엇은 현 정부가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계속해서 부패와 싸워 나가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대한민국이 보다 투명하고 믿을 만한 외국인 투자처가 되기를 희망한다.”

2016년 3월 당시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뉴스

정부가 중재판정에 불복할 것인가

엘리엇은 거의 1조원을 청구했지만 1400억 원밖에(?)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쾌재를 부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유가 있다. 당초 청구한 손해배상 액수 자체가 황당한 규모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투자자들은 1억원을 주식에 투자했다가 주가 상승으로 1억2000만원에 매도하면 2000만원의 수익을 냈다며 좋아한다. 8000만원에 매도하면 2000만원의 손실을 낸 것이다. 그러나 엘리엇은 자사가 사들였던 6800억원 상당의 삼성물산 주식이 미래에 1조2900억여 원으로 올랐을 텐데, 연금공단의 찬성 표결 때문에 6100억원(1조2900억원-6800억원) 상당의 손실을 봤다며 이 국제중재를 개시했다. 엘리엇 본인들도 이런 황당한 손익 계산이 중재 과정에서 그대로 관철될 수 있다고 보진 않았을 것이다.

엘리엇은 입장문에서 한국 정부에게 “중재판정에 불복하여 근거 없는 법적 절차를 계속 밟아나가는 것은 추가적인 소송 비용 및 이자를 발생시켜 대한민국 국민의 부담만 가중시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엘리엇이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엘리엇이 입장문에 설명한 것처럼, 한국에 ISDS를 제기할 수 있었던 근거들이 한국 검찰의 수사에서 비롯되었고, 그 수사를 주도한 사람은 현직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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