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7일 도로공사 현장지원직 차미애씨가 경부고속도로 연곡졸음쉼터 주차장을 청소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7월7일 도로공사 현장지원직 차미애씨가 경부고속도로 연곡졸음쉼터 주차장을 청소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연곡졸음쉼터 주차장에 승합차 한 대가 멈춰 섰다. 한국도로공사 로고가 박힌 조끼와 모자를 착용한 차미애씨(53)가 동료들과 함께 차에서 내려 잰걸음으로 쉼터 여기저기를 쓸고 닦았다. 쓰레기통에서 포대를 꺼내 묶고, 새것으로 갈아 끼우고, 화장실에 세제를 뿌려 솔로 문지르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주차장 아스팔트 위 오물을 쓸어 담았다. 지저분하던 졸음쉼터가 말끔해지자 차씨와 동료들은 다시 차에 올라타 다음 작업장인 입장졸음쉼터로 향했다. 아스팔트 열기가 가득한 7월7일에도, 게릴라성 폭우가 쏟아지던 7월11일에도 똑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차씨는 한국도로공사 현장지원직 사원이다. 각 지사마다 팀을 나누어 고속도로 주변의 졸음쉼터(쉼터팀), 부체도로 주변(도로팀), 휴게소 녹지대 인근(휴게소팀) 등을 청소한다(부체도로는 고속도로 인근 주민과 차량의 소통을 위해 한국도로공사가 설치·관리하는 도로를 일컫는다). 마땅한 그늘도 휴게시설도 없는 현장에서 청소하고, 이동하고, 대기하기를 반복한다.

7월11일 연곡졸음쉼터에서 비가 내리는 가운데 도로공사 현장지원직 차미애씨가 쓰레기통 주변을 치우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찾아오는 여름철에는 더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에 몰린다. 도로 위에 잠깐만 서 있어도 온몸이 땀에 젖는다. 비가 퍼붓는 날에는 졸음쉼터로 들어오는 차들이 청소하는 노동자들을 발견하지 못해서 아찔한 순간이 많다. 쥐며느리, 귀뚜라미, 돈벌레, 딱정벌레 등 쉼터 화장실에 창궐하는 갖가지 벌레들을 퇴치하고 방역하는 일도 여름철 현장지원직 사원들의 주요 업무다.

차씨는 원래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이었다. 용역업체에 소속되었지만 본사의 지시를 받고 일하던 노동자들에 대해 법원은 불법 파견을 인정하며 한국도로공사 측에 직접고용을 주문했다. 2019년 8월29일 대법원 확정판결 이후 도로공사는 이들을 직고용하면서 현장지원직이라는 새로운 직군을 하나 만들었다. 명확한 업무 범위가 없고 임금체계는 기존 최하 직군보다도 한 단계 낮은, 급조된 임시 일자리였다. 차씨를 포함해 요금 수납원으로 일하던 노동자 1200여 명이 현재 도로공사 현장지원직으로 일하고 있다.

2019년 7월31일 한국도로공사의 자회사 정규직을 거부하다 해고된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이 경부고속도로 톨게이트 지붕 위에서 고공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2019년 7월31일 한국도로공사의 자회사 정규직을 거부하다 해고된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이 경부고속도로 톨게이트 지붕 위에서 고공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차씨의 동료 박은화씨(57)는 7월10일 도로팀에 속해 고속도로 주변 교량 하부 등을 청소했다. 인근 지역 주민들이 갖다버린 폐기물부터 고속도로 사고 잔해 등 별의별 쓰레기를 다 치운다. 구름이 많이 낀 흐린 날씨였는데도 순식간에 체감온도가 올라갔다. 〈그림 3〉은 그날 박씨가 작업 조끼 주머니 안에 지녔던 온도기록계가 기록한 온도 변화다. 오전에 38.1℃, 오후에 36.3℃까지 치솟았다.

30℃ 아래를 기록한 때도 결코 편한 시간이 아니다. 근무시간 중에는 무조건 담당구역으로 배정받은 고속도로 주변 ‘현장’에 있어야 한다. 청소 업무 사이 휴식 및 대기 시간에도 마찬가지다. 졸음쉼터 주차장, 휴게소 외곽, 부체도로 위에 있거나 아니면 그 사이를 잇는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어야 한다. 폭염경보가 뜨든 호우주의보가 떨어지든 고속도로 아스팔트 위를 벗어나면 ‘근무지 무단이탈’이 된다.

청소를 마치고 나면 따로 사무실도 휴게실도 없으니 고속도로에 세워놓은 차 안에서 오랜 시간 대기한다. 에어컨은 틀지만 청소 집기가 가득한 좁은 차량 내부에 6~9명이 붙어 앉아 몇 시간째 대기하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얼굴에 바른 자외선차단제가 다 녹아 흐르도록 아스팔트 위를 청소하고 화장실 벌레 떼를 처리하고 있을 때보다 대기 시간이 더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다.

오랜 투쟁 끝에 법적으로 당당히 정직원 자격을 인정받았는데도 아직 이들은 도로공사 사내에서 어엿한 업무와 가치를 부여받은 동료로서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 박순향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장은 “지금도 일부 (공채 출신 정규) 직원들이 도로공사 사내 게시판에 익명으로 현장지원 직군에 대해 험한 말을 쏟아내고 있다. 회사 측이 제대로 된 업무를 주지 않으면서 사내 갈등만 더 키우고 있다”라고 말했다. 땀 흘리며 일해도 인정받지 못하고, 시간이 있어도 편하게 쉬지 못하는 이 특수한 고속도로 노동자들은 올여름에 더욱 숨이 막힌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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