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3일 서울 시내에서 오토바이 배달 라이더들이 빗길을 달리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7월13일 서울 시내에서 오토바이 배달 라이더들이 빗길을 달리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배달 라이더 장희석씨(45)는 오토바이 운전석 앞에 파란색 미니 우산 하나를 꽂고 다닌다. 예쁘라고 단 게 아니다. 내리쬐는 여름철 햇빛으로부터 핸드폰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햇빛 받아서 뜨거워지면 (스마트폰) 충전도 제대로 안 되더라고요.”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등 배달 대행 플랫폼 앱을 통해 콜을 받는 장씨에게 핸드폰은 소중한 생계 수단이다.

정작 장씨의 머리 위에는 햇빛을 가려줄 보호막이 없다. “낮 12시 넘어 해가 머리 위로 올라가면 햇빛 피할 데가 거의 없어요. 너무 더울 때는 버스 옆에 섰을 때 생기는 그늘도 감사할 지경이죠.” 열을 오래 받은 핸드폰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폭염에 노출된 후에는 신체감각과 기능이 훅 떨어지는 걸 스스로도 느낀다. “오토바이에서 내릴 때 땅을 밟으면 머리가 ‘핑’ 하고 돌 때가 있어요. 그제야 깨닫죠. ‘아 덥구나’.” 그늘에 앉아 물을 마시고 잠깐 한숨을 돌려봐도 띵한 기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배달 라이더 장희석씨의 오토바이 앞에 달린 미니 우산. 여름의 햇빛으로부터 핸드폰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시사IN 신선영
배달 라이더 장희석씨의 오토바이 앞에 달린 미니 우산. 여름의 햇빛으로부터 핸드폰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시사IN 신선영

사실 휴식할 공간도 마땅치 않다. “음식점에서 음식이 늦게 나오면 저희 같은 라이더들은 오히려 내심 좋아하죠. 기다리는 동안 잠깐 실내에서 쉴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식당 주인이 허락해줬을 때에 한해서다. 에어컨 바람으로 잠시 땀을 식히고 물 한잔이라도 얻어 마실 수 있으려나 기대하고 갔는데 사장이 손님에게 방해된다며 ‘나가 계세요’ 내쫓으면 도리 없이 다시 땡볕 아래에서 음식을 기다린다.

올해로 라이더 4년 차인 장씨는 점점 여름이 무서워진다. 여름 내내 폭염일 아니면 폭우일이고 두 쪽 다 그 강도가 한 해가 다르게 심해지는 느낌이다. 건물 그림자도 지지 않는 시간, 신호를 받아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도로 아지랑이를 바라보면서 후, 날숨을 내뱉고 나면 다시 들숨이 안 쉬어진다. 너무 덥거나 비가 많이 오는 날은 평소보다 더 자주 쉬면서 받는 콜 수를 줄여야 안전하다는 걸 알면서도 쉽사리 콜을 포기하지 못한다. “남들이 밖에 나가기 꺼리는 때가 라이더들에게는 가장 많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피크잖아요. ‘내가 이걸 안 잡으면 남이 분명 잡을 텐데’ ‘지금 나가면 분명 단가 높은 콜을 잡을 수 있을 텐데’라는 불안감과 조바심을 내려놓기가 힘들어요.”

7월7일 배달 라이더 장희석씨가 동료와 함께 물을 마시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라이더 일을 시작하고 맞은 첫 장마철, 폭우가 쏟아지던 그날도 그랬다. 빗물 속에서 오토바이에 앉아 울어버린 날이었다. 서울 이태원 쪽에서 남산 2호 터널을 넘어 명동까지 가는 콜이 하나 떴다. “추가금이 많이 붙었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잡아버렸어요.” 이태원에서 음식을 받고 터널은 일단 넘었는데, 터널 밖으로 나오니 헬멧 앞으로 쏟아지는 빗물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도저히 못 가겠는데 그러면 안 될 것 같고, 어찌할 바를 몰라 눈물만 흘리다가 일 시작 후 처음으로 배민 관제팀에 전화를 걸었다. “‘도저히 못 갈 것 같은데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나’ 물어본 뒤, 너무 궁금해서 또 물어봤어요. ‘저기 죄송한데… 지금 이런 날씨에도 일하는 사람 있어요?’라고. 웃더라고요. ‘네, 많아요’ 하더라고요.”

어떤 기후든 아랑곳 않고 달리는 라이더들이 사실 가장 예민하게 살피는 게 일기예보다. 장씨도 매일 눈을 뜨면 날씨 앱부터 켜서 그날의 ‘배달 피크 시간대’를 가늠하고 일정과 동선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예측이 점점 어려워지는 한반도의 여름철 기상 상황 탓에 이 계획들은 많이 어그러지거나 수정된다. 노동하는 내내 예측 불가능성과 불확실성에 시달리는 플랫폼 라이더들에게 이 극한 기후는 또 하나의 스트레스 가중 요소다.

7월7일 배달 라이더 장희석씨가 빌딩이 즐비한 서울시 마포구 일대에서 다음 콜을 기다리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7월7일 배달 라이더 장희석씨가 빌딩이 즐비한 서울시 마포구 일대에서 다음 콜을 기다리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너무 덥거나 빗길이 위험할 땐 쉬어야 한다’는 안전수칙을 모르는 라이더는 없다. 내가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해도 되는 ‘프리랜서’ 노동자의 자유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도 일하는 쪽을 택하는 그 기제가 꼭 내 자유의지만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라이더들은 폭염특보·호우경보 속에서도 콜을 기다린다. 장씨는 말했다. “제일 비참할 때가요, 더위에 머리가 핑 돌아가고 미끄러운 빗길이 겁이 나는 그 순간에도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띵동’ 소리를 기다리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할 때예요. 이런 불안정과 불확실성에서 조금만이라도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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