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3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답변을 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역전세 대란’은 예고된 미래다. 올 상반기 전세 사기 문제로 전국이 떠들썩했지만, 가장 높은 파도는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한국은행이 6월4일 발표한 ‘금융·경제 이슈분석’에 따르면 역전세 대란 규모는 앞으로 1년 동안 정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임대차계약이 끝나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임차인(세입자) 수가 올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급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은 깡통전세의 72.9%, 역전세의 59.1%가 향후 1년 이내에 계약만료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높은 깡통전세, 기존 계약 시점보다 전세보증금 시세가 하락한 역전세는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할 위험성이 크다. 깡통전세는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을 전액 돌려줄 수 없고, 역전세는 임대인(집주인)의 재력이 충분하지 않으면 보증금 반환이 어렵기 때문이다.

집값 상승기에 널리 퍼진 갭투자도 위험을 가중시킨다. 임대차보증금과 주택 매매가격의 차액(갭)만 지불하고 주택을 소유하는 갭투자는 집값 하락기에 전세보증금 미반환 위험을 키우는 요인이 된다. 갭투자는 2021년 정점을 찍었는데, 당시 거래된 갭투자 주택의 전세계약 만료가 다가온다는 점이 역전세 대란을 악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그림〉 참조).

예고된 위기에 정부가 내놓은 해법이 논란이 되고 있다. ‘대출 규제 완화’를 해법으로 내밀어서다. 임대인이 규제 한도보다 더 많이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그 돈으로 전세보증금을 돌려주는 것이 골자다. 정부는 전세보증금 반환 시에만 사용할 수 있는 대출을 만들고, 이 대출 가능 금액을 기존 전세보증금과 새로운 전세보증금의 차액으로 한정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임대인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완화해주는 방안이 발표됐다. DSR은 채무자의 소득에서 각종 부채의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예컨대 연봉이 1억원인 사람이 DSR 40%를 적용받는다면, 이 사람이 빌릴 수 있는 돈은 매년 원리금 상환액이 4000만원 이하인 경우로 제약받는다. 채무자 개인의 상환 능력을 기준으로 삼는 규제방식이라, DSR 규제는 부실 대출을 막는 데 효과적인 제도로 손꼽힌다. 현재 정부는 1억원 이상 대출에 대한 DSR을 최대 40%로 규제하고 있다(1금융권 기준, 2금융권은 50%). 정부는 DSR 한도를 일시적으로, 특정 목적에 한해서(전세보증금을 돌려줄 때) 늘려준다면 그만큼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이 늘어나 역전세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은행은 무엇을 믿고 역전세에 허덕이는 임대인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을까? 예를 들어보자. 임대인 A씨는 공시가격이 5억원인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 2021년 임차인 B씨와 전세 4억원에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2023년이 되어 인근 아파트 전세가격이 3억원으로 떨어졌다. B씨는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아 더 싼 주택으로 이사를 가겠다고 밝힌 상황. 정부의 방침대로 DSR 규제와 상관없이 1억원을 은행에서 대출받는다 하더라도, 은행은 ‘담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결국 시중은행은 A씨의 아파트를 담보로 잡고 대출 1억원은 이 아파트의 선순위 근저당으로 기록된다. A씨가 또 다른 임차인을 구한다면 “이 집은 일단 1억원 융자가 껴 있어요. 전세보증금(3억원)은 후순위입니다”라고 안내해야 한다. 혹시나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간다면, 전세보증금보다 은행 대출 회수가 우선이란 의미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위험을 감수하고 A씨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가려 할까?

이런 반문에 정부는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을 안전장치로 내밀었다. DSR 완화 적용을 받은 주택의 경우 다음 임차인에 대해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을 의무화하겠다는 대책이다. 앞선 예시를 다시 살펴보자. 은행 대출 1억원이 끼어 있지만, 전세보증금 3억원에 대해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이 가능하다면? 임차인 입장에서는 전세보증금을 못 돌려받을 걱정은 덜 수 있다. ‘임대인 대출 규제 완화’와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의무화’를 한 세트로 묶어 당장 다가올 1년(역전세 위기)을 어떻게든 버텨보자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대출 규제 완화는 불가피한가

규제의 일관성을 해치면서 대출을 늘리는 방안은 정부에도 부담이다. 비판론자들은 DSR 완화로 인해 부실 대출 위험이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GDP의 100%를 넘어서는 가계부채 문제를 고려했을 때, 무책임한 돈풀기라는 비판도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그럼에도 정부는 더 큰 위험을 막기 위해 DSR 완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6월1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DSR 규제 완화가 위험하다는 데 동의한다. 다만 (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한꺼번에 터지다 보면 뜻하지 않은 다수의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라고 DSR 완화 조치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원 장관은 6월1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정부가 임대인에게 돈을 풀어주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대출 신청이 들어오면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은 그대로 볼 것이고, 보증금 반환 목적에만 쓰도록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4월30일 전국임대인연합회 관계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연합뉴스
4월30일 전국임대인연합회 관계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연합뉴스

DSR 완화와 같은 ‘대출 규제 완화’는 정말 불가피한 조치일까. 정부의 역전세 대응책은 ‘대출이 없다면 보증금을 미반환할 수밖에 없다’고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대출은 전세금을 반환하기 위한 유일한 조치가 아니라는 점에서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임대인이 보유한 주택을 팔아 전세금을 돌려준다는, 시장 논리에 입각한 선택지가 있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돈을 갚지 못한 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새로운 대출로 기존 대출을 갚는 것도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그렇다면 그가 취해야 하는 합리적인 해결 방안은 자신의 자산을 팔아치우는 것이다. 자동차든, 귀금속이든 값이 나가는 것이라면 팔아 대출을 상환해야 한다. 임대인도 마찬가지다.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서도 타인의 돈(보증금)을 갚지 못한다면 자신이 가진 재산, 즉 주택을 처분해 타인의 돈을 상환해야 한다.

지난 3월 이전까지만 해도 이는 상식일 뿐만 아니라 일부 지역에서는 규정상 의무였다. 규제지역 내 주택을 담보로 대출할 경우 2주택을 보유한 사람은 나머지 주택 한 개를 의무적으로 처분해야 했으며, 3주택 이상을 가진 경우엔 대출이 아예 금지됐다. ‘주택을 담보로 대출하지 말고, 가지고 있는 주택을 처분해 문제를 해결하라’는 메시지다. 그러나 올해 3월 이와 같은 규제가 일괄적으로 폐지됐다. 집이 몇 채가 있든, 자신의 재산을 처분하지 않고 대출을 통해 전세금을 반환하는 일종의 ‘돌려막기’가 가능해진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DSR 완화는 ‘돌려막기’로도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임대인에 대해 추가 대출을 해주겠다는 얘기다.

이윤수 서강대 교수(경제학)는 역전세 대란이 “임대인이 책임지지 못할 만큼 무리하게 자산을 소유해서 벌어진 현상”이라고 말한다. 일부 임대인들이 무리하게 자산을 매입해 역전세 대란의 원인이 됐다면, 주택을 처분해 투자를 중단하도록 하는 게 합리적인 해결 방법이다. ‘무리한 투자’의 해법으로 상환능력을 넘어선 ‘무리한 대출’이 이뤄진다면, 대출 건전성을 해칠 뿐만 아니라 역전세 대란의 원인을 존속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임대인들 역시 이러한 지적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임대인들은 집을 팔고 싶어도 매매 자체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추가 대출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장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아파트가 아닌 빌라·오피스텔에서 특히 역전세가 심한데, 이곳들은 매매가 어렵다. 애초에 빌라·오피스텔은 주로 실거주 목적이 아닌 투자 목적으로 매입한다. 그런데 현재는 빌라·오피스텔 투자 수요가 사라진 상황이다. 보증금보다 저렴하게 가격을 낮춰 내놓아도 팔리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6월8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DSR 규제 완화를 늦어도 7월 중에는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6월8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DSR 규제 완화를 늦어도 7월 중에는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반면 임재만 세종대 교수(부동산학)는 주택을 처분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임대인들의 말이 옳지 않다고 반박한다. 주택이 팔리지 않는 이유는 값을 충분히 낮추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임 교수는 “대규모 전세 사기가 일어난 인천 미추홀구를 보면 안다. 정부가 나서서 경매를 중단시킨 이유는, 사기를 당한 주택마저 낙찰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가격을 낮추고 싶지 않아서 발생한다”라고 말했다.

‘부동산 불패 신화’ 강화하는 규제 완화 조치

임재만 교수가 보기에 임대인이 주택을 처분하지 않는 이유는 집값이 언젠가는 오를 것이라는 ‘부동산 불패 신화’를 믿기 때문이다.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 생각한다면, 조금이라도 비쌀 때 빨리 주택을 처분하는 것이 이득이다. 반대로 주택을 팔지 않는 데에는, 정부의 도움을 받아 버티다 보면 언젠가 집값이 오를 것이고 그때 차익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는 것이 임 교수의 분석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정부의 DSR 규제 완화는 부동산 불패 신화를 강화하는 것과 다름없다. “‘역시 갭투자’라는 결론이 나오면 안 된다”라는 원희룡 장관의 다짐과 달리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주는 셈이다.

이익은 사유화되는 반면, 비용은 공공이 떠안는다는 점에서 ‘부동산 불패 신화’의 악영향은 가중된다. 정부의 역전세 대책의 또 다른 축은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의무화다. 그러나 전세보증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비용을 감당하는 주체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같은 공공기관(기금)이다. 실제로 2022년 HUG는 전세보증 사고가 폭증하는 바람에 1125억원이 넘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집값 상승기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비용은 공공이 짊어지고, 혹여 집값이 오른다면 시세차익은 임대인이 사유화하는 셈이다.

DSR 규제 완화를 둘러싼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보증금 반환을 위한 추가 대출을 허용했다. 7월4일 발표한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정부는 임대인에게 DSR 40% 규제가 아니라, 총부채상환비율(DTI) 60% 규제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허용 비율을 40%에서 60%로 상향했기 때문에, 그만큼 더 많은 대출이 가능해진다. 더욱이 모든 대출의 원리금 상환액을 합산하는 DSR과 달리, DTI는 주택담보대출 외 부채는 이자 상환 비용만을 합산한다. 기타 부채의 원금 상환액을 고려하지 않는 만큼 대출 한도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정부 합동 브리핑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역전세와 관련돼 있는 부분에 한해서 대출 규제를 완화하겠다. 현재 경제 규모 대비 가계부채가 굉장히 높은 수준이기에 (DSR 규제 일시적 완화 외에) 가계 대출의 건전성 유지를 위한 정책은 일관성 있게 지속하겠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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