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채널 ‘원지의 하루’에 올라온 ‘오싹오싹 이집트 입성기’ 영상의 일부. ⓒ유튜브 채널 ‘원지의 하루’ 화면 갈무리
유튜브 채널 ‘원지의 하루’에 올라온 ‘오싹오싹 이집트 입성기’ 영상의 일부. ⓒ유튜브 채널 ‘원지의 하루’ 화면 갈무리

이집트 피라미드 앞, 터번을 쓴 사람들이 ‘헤이’ ‘익스큐즈 미’ 하며 줄기차게 따라온다. 낙타를 태워주고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호객꾼들이다. “옷 가게도 혼자 못 들어가는 성격”인 유튜버 ‘원지’가 “노 팁! 노 모어 머니!” 하고 외쳐보지만 소용없다. 공짜라고 해서 낙타를 탔는데 걷기 시작하자 돈을 내야 한단다. 은근슬쩍 다가와 터번을 씌워주더니 팁을 요구하기도 한다. “뭔가 호구가 된 기분” 탓에 피라미드를 둘러보는 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16분짜리 영상을 지켜보는 구독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2021년 5월 유튜브 채널 ‘원지의 하루’에 올라온 이 영상은 조회수 92만 회를 기록했다.

여행 콘텐츠인데 가보고 싶다는 반응보다 안 가길 잘했다는 댓글이 많다. '원지의 하루'만이 아니다. '빠니보틀' '곽튜브'처럼 인기 유튜버들의 영상에 흔한 관광지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8000원짜리 인도 기차 꼴등석을 타거나 끈질기게 달라붙는 호객꾼과 싸우고, 바가지 요금을 씌우는 상인과 흥정하는 장면이 주로 담긴다. 현지 미용실에서 메이크업 받기, 아프리카 원주민 마을에서 숙식하기, 아시아 최대 빈민촌 가보기 등의 콘텐츠도 그런 종류다. 각각 유튜브 구독자 177만명(빠니보틀), 158만명(곽튜브), 75만명(원지의 하루)을 보유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여행 유튜버 사이에서 통하는 영업비밀이 있다면 이런 문장으로 요약되지 않을까. ‘고생은 돈이 된다.’

날것 그대로의 고난을 담은 여행 유튜브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코로나19가 계기였다. TV 여행 예능이 중단된 틈을 비집고 들어와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남들이 가지 않는 장소에 가서 예기치 못한 사건을 맞닥뜨린다는 ‘서사’가 방송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림인 데다, 때로 현지인들의 삶과 고민을 깊숙이 담아내며 교양 다큐멘터리 못지않다는 찬사가 붙기도 했다. 여행 유튜버마다 추구하는 여행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점은 각본 없는 리얼함이다.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이 2019년 4월25일 올린 인도 기차 여행 콘텐츠는 조회수 700만 회를 넘었다. ⓒ유튜브 채널 ‘빠니보틀’ 화면 갈무리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이 2019년 4월25일 올린 인도 기차 여행 콘텐츠는 조회수 700만 회를 넘었다. ⓒ유튜브 채널 ‘빠니보틀’ 화면 갈무리

지상파를 비롯한 TV 채널 진출은 여행 유튜버의 인기를 보여주는 사례다. 김태호 PD의 ENA 오리지널 예능 〈지구마불 세계여행〉은 빠니보틀, 곽튜브, 원지를 메인 출연자로 내세웠다.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나라를 다음 여행지로 결정해 랜덤 세계일주를 떠나는 형식이다. 지난 3월 공개와 함께 유튜브 누적 조회수 1800만 회를 기록했다. MBC 예능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에는 빠니보틀이, tvN 예능 〈부산촌놈 in 시드니〉에 곽튜브가 각각 멤버로 출연했다. 〈짠내투어〉 〈꽃보다 청춘〉 등 한때 흥행했던 여행 예능의 흐름이 인기 유튜버들과 함께 부활하는 모양새다.

그간의 여행 예능이 여행 판타지를 자극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2023년판 여행 예능은 극사실주의에 치중한다. 제작진 개입을 최소화하고, 각 출연자에게 셀프 촬영을 하도록 연출하는 식이다. 여행 유튜버의 영향이 컸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빠니보틀이나 곽튜브의 여행 영상을 ‘진정성 있다’고 봐온 대중들에게 짜인 각본 안에서 움직이는 예능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스타 연예인들이 해외여행 하는 콘셉트가 점차 줄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지금의 대중들이 중시하는 가치는 진짜냐, 가짜냐 혹은 진심이냐, 아니냐다. 연예인들이 출연하더라도 현지에서 고생하고 갈등하는 요소가 중심이 된다.”

제작자 입장에선 어떨까. 유튜버 ‘폭칸트’는 최근 여행 콘텐츠를 시작했다. 고프로 하나만 들고서도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공중파 프로그램에 비해서 음질이나 화질이 좋지 않지만 현지인들과 가까이 소통할 수 있어 훨씬 날것의 느낌을 담아낼 수 있다.” 빠니보틀을 좋아했던 그는 올해 2월 인도 여행을 다녀온 후 영상 17개를 올렸다. 구독자 수가 1만명을 넘었다. 인도 관공서 구내식당 탐방하기와 인도 로컬 이발소 체험기, 갠지스강 입수하기 같은 콘텐츠 덕분이다. “인도는 카메라 들고 길거리만 걸어다녀도 자연스럽게 유튜브 ‘각’이 나온다. 콘텐츠 밀도가 굉장히 빽빽한 나라다.”

ENA 오리지널 예능 〈지구마불 세계여행〉 포스터. ⓒENA 제공

실제로 인도나 이집트는 인기 여행 유튜버를 꿈꾼다면 꼭 다녀와야 할 관문 같은 곳이 되었다. ‘돌발 변수’가 많아서다. 호객꾼으로 악명 높은 여행지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그에 비해 미국이나 유럽은 여행 유튜버의 ‘무덤’으로 불린다. 〈지구마불 세계여행〉 사전미팅에서 빠니보틀은 “유튜브 콘텐츠로 별로인 나라는 유럽이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 어쨌든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니까 좋은 호텔, 짜여진 스케줄을 진짜 싫어한다”라고 말했다. 여행 유튜버들은 ‘최악의 나라’로 싱가포르를 꼽는다. “그냥 강남 여행해봐라, 이런 느낌이다(곽튜브).” 결국 여행지를 선정할 때부터 조회수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여행가와 여행 유튜버가 다른 지점이다.

리얼함이란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곽빠원(곽튜브·빠니보틀·원지의하루)의 여행기엔 잘 나타나지 않지만, 일부 여행 유튜버들의 영상은 노골적으로 ‘조회수 장사’를 노리면서 논란을 사기도 한다. ‘바가지 상인 참교육 해드림’ ‘현지인도 피하는 슬럼가 가보기’ ‘한국인에 대한 반응’ 같은 콘텐츠가 대표적이다. 한국인이라 인종차별을 받았다거나 여행 사기를 당했다는 콘텐츠도 잘 ‘팔리는’ 문법 중 하나다. 영상 아래에는 이런 댓글이 쏟아진다. ‘○○○를 유튜브로만 봐야 하는 이유’ ‘공짜로 보내준다고 해도 저 나라는 안 간다’ ‘한국에서 태어난 걸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등등. 여행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서 인종, 종교, 국가에 대한 편견이 강화된다. 폭칸트는 여행 유튜버가 그 문화를 다루는 태도에 따라 댓글 반응도 다르다고 지적한다. “갠지스강을 두고도 이곳이 역사적으로 신성한 의미를 갖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빈부격차나 여행 사기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미디어가 인도를 소비하는 방식이 유튜브를 통해 정형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성상민 대중문화 평론가는 여행 콘텐츠 자체의 양면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쉽게 갈 수 없는 곳들을 가기 때문에 (유튜버들은) ‘그 국가가 지닌 고유한 문화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란 과제를 부여받는다. 윤리적 고민 없이 다루게 되면 위에서 내려다보는 식의 민족주의적 접근이 발현되기 쉬운 장르다.” ‘오지 탐험’을 기치로 내걸었던 예능 방송이 조작 논란에 휩싸인 것과 비슷하다. 리얼함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사실 어느 정도의 판단과 연출이 개입돼 있다는 의미다. 여행 유튜버들은 ‘내가 직접 겪은 일’임을 강조한다.

〈아무튼, 예능〉을 쓴 복길 칼럼니스트는 “여행 유튜버가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특정 시각으로 그 세계를 바라보게 만든다”라고 말한다. 인지도를 위해 타 문화를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여행 유튜버 문화라기보다 아프리카TV BJ 문화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다. 한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시선이 드러나는 경우, 우리 안의 편견을 지우기도 한다. “'원지의 하루'의 경우 다른 유튜버들처럼 호전적이기보다 여행하는 두려움을 매번 드러내면서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점이 신선하다. 유튜브 채널 ‘오사카에사는사람들’로 유명해진 '마츠다 부장'의 경우도 그렇다. 일본 곳곳을 소개할 때 재일동포에 대한 설명이 등장하는데 기존 미디어에서 제대로 노출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복길 작가의 말이다.

리얼함을 강조하는 여행 유튜버들의 등장이 다양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지, 또 다른 민족주의 전시 공간으로 전락할지 단정하기 어렵다. 고난과 갈등이 ‘돈’이 되는 유튜브 세계에서, 여행이 새로운 다문화 전장으로 변모해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