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모하메드 아부엘레일 라셰드 지음, 송승연·유기훈 옮김, 오월의봄 펴냄

“그는 변하더라도 같은 사람으로 남아 있다.”

광기가 의료적 개념들로 대상화되자 정부는 보건의료계획을 새롭게 세우고 광기를 제거하기 위한 지배담론을 의료시스템 안에 집어넣었다. 자연히 광기는 혐오스럽고 비윤리적인 것이 되었다. ‘미친’ 동성애의 전환 치료가 그 예다. 1970년대에 흑인·성소수자·여성 민권운동이 부흥하자 광인들은 모욕의 단어가 된 ‘광기’를 되찾기 위해 ‘매드 프라이드 운동’을 조직한다. 이들이 자존감을 되찾고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해가는 과정은 광기와 사회가 화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힌트가 된다. 미쳤다는 것이 실패한 정체성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매드 운동의 결말은 시민(독자)들 몫으로 열려 있다.

어나더 경제사 1, 2
홍기빈 지음, 시월 펴냄

“선악과를 맛보면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이 세상을 지배하는 ‘어떤 것’을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세상을 찬양하거나 욕할 때 자본주의를 거론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란 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발생하고 발전해왔을까? 경제학자 홍기빈이 태초부터 신자유주의 시대까지 인류 역사를 통해 자본주의의 정체를 규명한다. 1권에서는 구석기인들의 식생활로 시작해서 복식부기와 화폐의 탄생, 은행과 신용의 발달, 전쟁과 국가권력의 결합 등 태초부터 자본주의의 유아기까지 5만 년 인류사를 살핀다. 2권에서 서술되는 1차 산업혁명, 금본위제, 중앙은행 제도의 발전, 제국주의, 신자유주의 등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 현대 글로벌 경제를 좀 더 밀도 높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매트릭스
로런 그로프 지음, 정연희 옮김, 문학동네 펴냄

“그녀는 이 비참한 곳에 머물 것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최고로 살아낼 것이다.”

소설은 1158년 3월, 늙은 말을 타고 비가 내리는 숲을 지나 수녀원으로 향하는 마리 드 프랑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마리 드 프랑스는 실존 인물이지만 그가 썼던 시만 전해져 내려올 뿐인데, 작가는 그 시에서 영감을 받아 그의 삶을 작품으로 복원해낸다. 귀족 세계로부터 배척당한 그는 다 쓰러져가는 수녀원을 풍요롭게 번영시키고, 동료 수녀들과 함께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든다. “그녀의 굳건한 손아귀에 잡힌 수녀원의 모든 것이 참으로 아주 좋다.” 긴 대서사시 끝에 작가는 이렇게 공을 돌린다. “이 책은 내 자매들, 육신의 자매와 영혼의 자매 모두를 위한 것이다.”

불안의 변이
리디아 데이비스 지음, 강경이 옮김, 봄날의책 펴냄

“이해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고, 깨닫지 않고 계속 읽었다.”

단 한 줄의 문장은 소설일 수 있을까. 리디아 데이비스는 독자를 자주 상상력의 영토에 밀어 넣는다. 이야기는 소설이라면 마땅히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비웃으면서 제 갈 길을 간다. 기민함과 기이함을 오가며 소설의 세계를 확장한다. 삶을 채집한 문장들 사이에서 생을 포착한 순간을 만날 때면 어쩔 수 없이 이야기에 붙들린다. 저자가 1986년부터 2007년까지 발표한 소설집 네 권에서 102편을 골라 묶었다. 여름 숲처럼 빽빽한 이야기 사이를 통과하다 보면, 다른 사람은 어떤 작품에 마음을 포개거나 틈새를 만들었을지 궁금해진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과 ‘이상해, 그래서 좋아’라고 한없이 수다를 떨고 싶다.

가짜 뉴스의 모든 것
신디 L. 오티스 지음, 박중서 옮김, 원더박스 펴냄

“도널드 트럼프, 방황하는 해병대 200명을 이송하기 위해 자가용 비행기 급파.”

2016년 미국 ‘폭스뉴스’ 정치 평론가 션 해니티가 언급한 말이다. 아메리칸밀리터리뉴스닷컴이 정식 기사로 발행했다. 하지만 거짓으로 판명 났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SNS를 타고 전방위로 퍼지는 가짜 뉴스는 이제 선거에선 상수다. 유튜브는 돈과 연결되어 가짜 뉴스 양산지가 되었다. CIA 정보 분석가로 오래 일했고 백악관 첩보 브리핑 담당자를 지낸 저자가 고대부터 반복된 가짜 뉴스 패턴을 분석했다. 가짜 뉴스 판별 실전 문제까지 실었다. 긴급 속보 가운데 가짜 뉴스를 찾아내는 문제에서, 기자인 나도 6개 가운데 2개를 틀렸다. 가짜 뉴스 식별력을 키워주는 실전 안내서이다.

동물, 뉴스를 씁니다
고은경 지음, 산지니 펴냄

“우리의 선택이 동물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2003년 반려견을 입양하면서 삶이 바뀌었다.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은 농장 동물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채식을 지향하는 삶으로 이어졌다. 저자의 직업은 기자다. 사람의 목소리를 전하는 기자는 많으니 동물을 위해 일하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 동물실험이나 전시 동물이란 말 뒤에 제주 앞바다에 방류된 남방큰돌고래 ‘비봉이’, 해외 동물원으로 쫓겨날 뻔한 침팬지 ‘광복이’와 ‘관순이’처럼 이름을 가진 동물들이 있다. 그저 귀여움과 안타까움의 대상일 뿐일까. 우리 주변의 동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의료나 과학처럼 동물 뉴스를 전할 때도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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