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끈을 놓기 전에
로리 오코너 지음, 정지호 옮김, 심심 펴냄

“생존의 전투에서 패배한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자살은 전 세계적으로 사망 원인 상위 20위에 속한다. 15~29세의 사망 원인으로는 2위다. 자살 사고의 4분의 3 이상이 중·하위 소득 국가에서 일어나고 전체 자살의 60%가 아시아에서 발생한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여성보다 남성이 자살로 더 많이 사망하는데, 최근 몇 년 동안 청년 여성의 자살률이 증가 추세다. 각종 통계에서 불평등이 읽힌다. 25년 넘게 자살을 연구해온 심리학자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지, 자살에 대한 흔한 속설과 오해에 대해 설명한다. 특히 자살 위기에 놓인 누군가를 지키는 법은 꽤 구체적이다. 자살에 이르게 하는 복합적 원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데 전 생애를 바친 저자의 좌절과 극복의 경험이 가독성을 높인다.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
앤 헬렌 피터슨·찰리 워절 지음, 이승연 옮김, 반비 펴냄

“재택근무는 만병통치약이 아니고,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에 자리한 위기를 바로잡겠다는 약속이 될 수도 없다.”

팬데믹을 지나면서 몇몇 대기업은 원격근무를 가까운 미래의 선택지로 정했다. 사무실에 얽매인 노동이 해방될 거란 장밋빛 전망도 나왔다. 과연 그런가. 저자는 유연근무제 후기를 이렇게 평한다. “출퇴근이 없다는 것은 아침저녁으로 자유 시간이 생긴다는 뜻이 아니었다. 침대에서 빠져나오자마자 폰을 움켜쥐고 출근 도장을 찍게 된다는 뜻이었다.” 유연성이란 사실 ‘내내 일할 수 있음’을 의미했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번득이게 할 자연스러운 대화는 사라졌다. 그렇다고 사무실 노동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말하는 책은 아니다. 전작 〈요즘 애들〉로 ‘밀레니얼 번아웃’에 천착했던 저자가 이번에는 번아웃과 잦은 이직 없는 일터를 만드는 방법에 주목했다. 지속 가능한 일터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권한다.

자폐 스펙트럼과 하이퍼월드
이케가미 에이코 지음, 김경화 옮김, 눌민 펴냄

“내가 가상공간에서 조우한 자폐 스펙트럼 당사자들이 들려주는 내면세계는, 일반적 이미지와는 오히려 정반대였다.”

어른이 된 자폐 스펙트럼 당사자는 세계를 어떻게 바라볼까? 그동안 자폐증 관련 사회적 담론은 부모와 교사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어른이 된 당사자들의 고충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진다거나 사회성 장애라는 오해가 컸다. 역사사회학자인 저자는 가상공간에서 아바타가 되어 소통하는 이들의 세계를 파고들었다. 참여관찰 연구로 수행된 이 연구는 2019년 일본 NHK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화제를 불러일으켰는데, 기존 편견을 깨부수는 발견이 있었다. 가상공간에서 이들은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뿐 아니라 공감과 지지를 주고받는다. 신경 다양성에 대한 인지가 높아지면 자폐 스펙트럼도 질병이 아닌 개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현대사상 입문
지바 마사야 지음, 김상운 옮김, 아르테 펴냄

“일단 철저하게 기성 질서를 의심해야 ‘함께’의 가능성을 다시 생각할 수 있다.”

데리다와 들뢰즈, 푸코에 이르는 프랑스 철학(이 책에선 ‘현대사상’으로 통칭)을 간략하게 소개한 책이다. 저자는 ‘현대사상’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 “복잡한 것을 단순화하지 않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사실은 복잡하기 그지없는 사회와 인생에서 온갖 노이즈를 억지로 배제해 단일한 질서 및 윤리로 동화시키려는 우리 생각의 경로가 과연 옳은 것인지, 근본적으로 되묻는다. 저자는 데리다-들뢰즈-푸코 사상의 진수를 ‘차이’, 즉 “질서를 강화하는 움직임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거리를 두는 것”에서 찾으며, 이런 사고방식이 현실을 “높은 해상도”로 파악하고 인생의 다양성을 지키는 데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비록 저자가 ‘단순화’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책은 신기할 정도로 쉽고 명확하다. 저 까다롭기로 유명한 프랑스 철학자들에게 도전했다가 나가떨어진 경험을 가진 독자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한국전쟁의 기원
브루스 커밍스 지음, 김범 옮김, 글항아리 펴냄

“한국인의 전쟁이 아니었다.”

미국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의 그 유명한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이 드디어 한국어로 완역 출간되었다. 미국에서 1981년에 출간된 1권은 해방에서부터 남북한이 각자 단독정부 수립으로 나아가는 1945~1947년(‘해방과 분단 체제의 출현’), 1990년에 출간된 2권은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중국이 참전하는 시기(~1950년, ‘폭포의 굉음’)를 다뤘다. 1권은 한국에서 1980년대 중반에 출간되었으나 당시 전두환 군사정권으로부터 금서로 지정됐다. 이 책을 둘러싼 여러 종류의 정치적 논란과 별도로 〈한국전쟁의 기원〉은 기밀문서를 포함한 광범위한 자료를 바탕으로 당시 한반도 내부는 물론 국제정치의 동학을 폭넓고 냉정하게 고려한 학술적 연구의 결과다. 한국전쟁에 관한 한 국내외를 통틀어 가장 탁월한 역사서로 불리는 이 책은, 미국 역사학회에서 19세기 이후 시대에 대한 최고의 저서에 수여하는 존 킹 페어뱅크 상을 받았다.

우울증은 어떻게 병이 되었나?
기타나카 준코 지음, 제소희·이주현·문우종 옮김, 사월의책 펴냄

“우울증 증가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일본 정신의학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일본에서 손꼽히는 의료인류학자인 저자는 우울증이라는 명칭이 있기 전부터 존재했던 ‘울증’부터, 2000년 일본의 가장 큰 광고회사인 덴쓰가 과로로 인한 우울증으로 사망한 직원 오시마 이치로의 가족에게 1억6860만 엔을 배상하도록 한 대법원의 판결을 거쳐 우울증의 젠더화까지 살펴본다. 책의 부제가 ‘일본에서 우울증의 탄생’이지만, 한국에서도 유의미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 “대인공포증이나 은둔형 외톨이처럼 문화연계증후군이라고 불리던 병들이 처음 보고된 것은 일본과 한국에서였고, 그 후 이 병들은 다른 나라에서도 이슈가 되었습니다”라고 적는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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