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가 들려주는 진짜 논리 이야기
송용진 지음, 다산초당 펴냄

“무한을 이해하려면 함수부터 알아야 한다.”

위상수학의 권위자인 송용진 인하대 교수가 수학자의 장점을 살려 쓴 대중적인 논리책이다. ‘논리적으로 사고하기’와 관련된 인문학적 내용과 더불어 논리의 생활화가 필요한 이유를 조곤조곤한 말투로 들려준다. 수학과 논리학의 역사를 소개하는 가운데 논리적 사고법의 기초부터 역사적으로 유명한 다섯 가지 패러독스에 이르기까지 쉬운 설명을 제공한다. 특히 인공지능에 대해 학습할 때 수시로 등장하지만 정작 이해하기는 힘든 수리논리학의 개괄적 이론과 배경을 설명하는 3부가 흥미롭다.

와일드후드
바버라 내터슨 호로위츠·캐스린 바워스 지음, 김은지 옮김, 쌤앤파커스 펴냄

“한번 알아차리고 나니 시선이 머무르는 모든 곳에서 동물의 청소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자는 한 해양생물학자가 들려준 이야기에 매료된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캘리포니아 해달이 일부러 백상아리 수백 마리가 서식하는 ‘죽음의 삼각지대’에서 스릴을 즐긴다는 것이었다. 그는 어린 캘리포니아 해달이 10대를 맞은 인간 청소년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제 발로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며 부모들은 이제 하지 않을 법한 무서운 일들을 서슴없이 일삼는 10대 말이다.” 청소년기에 공통적으로 겪는 경험을 일컫는 ‘와일드후드’는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4가지 기술을 익히면 끝나는데, 책에서는 그 조건인 안전과 사회적 지위, 성적 욕구 제어, 자립을 하나씩 살펴본다.

액세스가 거부되었습니다
조경숙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나는 독자분들께 ‘개발자’를 ‘개발진’으로 바꿔 부르자고 제안하고 싶다.”

IT 테크업계를 향한 선망의 눈빛이 쏠린다. ‘미래’ ‘혁신’ ‘진보’ 같은 수식어로 소개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프리랜서 개발자로 일하는 저자는 테크업계 속 ‘액세스가 거부된’ 장면들에 주목한다. 젠더 데이터 공백부터 무급 노동과 과로, 대량 해고까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을 미션으로 내걸고 있으면서, 동시에 보수적 경영방침과 구시대적 관행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새로운 걸 만드는 일이 정말로 더 가치 있는 걸까? 저자는 테크업계의 이면을 들추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간 평가절하되었던 노동과 관계들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해낸다. 어쩌면 세상을 잘 굴러가게 만드는 것은 기술이 아닐지도 모른다.

식물적 낙관
김금희 지음, 문학동네 펴냄

“뿌리가 있고 뿌리를 심는다. 지키고 싶은 여름이 있고 그 여름날들을 지킨다.”

작가가 식물에 빠져든 때는 마음이 힘들던 시기와 겹쳤다. 직장생활을 할 때, 스트레스가 쌓이면 화분을 돌봤다. 지금도 작가는 화분을 살핀다. ‘계속되는 낙관을 움켜쥐고 싶어서 하는 일이 가드닝인 것 같다’는 김금희 소설가. 무름병이 난 핑크 고스트를 보며 좌절하지만 뿌리가 남았기에 다시 심기로 한다. '식물적 낙관'이라는 제목이 비유적 표현이겠거니 짐작했는데 읽다 보니 ‘물리적 표현’이었다. 집에서, 밖에서 작가가 마주한 식물들이 어떻게 그의 삶과 작품에 스며들었는지 살펴보다 보면 저절로 이런 생각이 든다. 계절을 순환하는 이 느긋한 낙관의 에너지를 나도 한번 느껴보고 싶다고.

〈녹색평론〉 2023년 여름호
녹색평론사 펴냄

“타협하지 않고 인간성을 옹호하는 작업을 힘닿는 데까지 해나가려고 합니다.”

〈녹색평론〉이 돌아왔다. 2021년 30주년 기념호를 발간한 후 17개월 만의 복간이다. 두 달마다 나오던 것에서 계간으로 발행 호흡이 길어졌다. 182호 첫 장은 김정현 발행·편집인이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채워졌다. 1년 남짓 휴간 동안 안정적 기반을 갖추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미흡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한 발짝을 떼어놓기로 결정했다고 김 발행인은 고백한다. 가장 고전적인 형태의 매체가 화석연료 문명과 끝없는 이윤추구에 대항하는 가장 급진적인 사상을 실어 나른다. 예정된 위기를 직시하고, 주저 없이 생태주의를 주창하는 기세가 매섭다.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고명재 지음, 난다 펴냄

“인생은 ‘너무’와 ‘정말’ 사이에서 춤추는 일이니까요.”

플로리스트에게 ‘꽃 잡는 법’을 배운 사람에게 들었던 이야기. “20분 안에 다발을 만들라고 하더라고요.” “왜요?” “오래 쥐고 있으면 꽃이 녹는데요. 튤립 같은 건 그사이에도 손의 온기 때문에 핀다고요.” 이 책을 읽는 동안 그 대화가 떠올랐다. 한때 자신을 기른 비구니를 기억하며 무채색을 주제로 쓴 100편의 이야기가 웅숭깊다. 종이 위에 뭉근하게 펼쳐놓은 온기의 곁불을 쬐다 보면 마음 역시 활짝 핀 꽃처럼 요란해진다. “생존에는 하등 영향이 없는, 그러나 알게 되면 세상이 애틋해지는 이야기”를 그는 ‘시’라고 부른다. 읽는 동안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과 사랑하는 얼굴 역시, 시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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