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어디에나 있지만 인식하기는 어렵다. 한번 인식하고 난 다음에는, 삶이 바뀐다. 새가 그렇다. 새소리는 인간의 청각을 채우지만 막상 눈으로 새를 좇을 엄두를 내진 못한다. 귀를 채우던 친숙한 존재인 새를 직접 관찰하는 문화가 최근 주목받고 있다. 바로 ‘탐조(探鳥) 문화’다.
언뜻 진입 장벽이 있어 보인다. 비싼 카메라가 필요할 것 같고, 전국 방방곡곡 습지를 찾아다녀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경기도 수원시 경기상상캠퍼스에서 ‘탐조책방(@_bird_books)’을 운영하는 박임자 대표(51)는 탐조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내 일상 주변에 새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처음 인식했을 때, 마치 삶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8년 전 탐조 문화를 처음 접했던 시절을 박 대표는 이렇게 회상한다.
탐조책방은 국내 최초 탐조 전문 서점이다. 2021년 문을 연 이곳에는 새 도감과 그림책, 여행기, 생태 관련 서적이 한가득이다. 전문화된 소규모 서점인 동시에 탐조 입문자들을 위한 허브가 되고 있다.
박임자 대표는 일상 주변에서 새와 만나는 경험을 중시한다. 탐조책방을 열기 전부터 ‘아파트 탐조단’이라는 생태 체험 기획을 벌였다. 회원들이 자신의 아파트에서 새를 관찰하고 얼마나 많은 새가 주변에 있는지 인식하며 기록하는 활동이다. 이런 관찰 기록을 자연 활동 공유 플랫폼 ‘네이처링(naturing.net)’에 올리고, 전국적으로 ‘아파트 새 지도’를 만들고 있다. 2020년 9월부터 지금까지 전국에서 333명이 이 활동에 참여했다.
왜 하필 아파트일까. 박 대표는 “의외로 아파트는 새들이 인간과 어울려 살기 좋은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야생과 달리 아파트는 새의 천적이 접근하는 것을 막아주고, 새는 병충해를 잡아준다. 우리는 흔히 비둘기나 까치처럼 비교적 덩치가 큰 새만 인식한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당장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이보다 훨씬 작은 새들이 수십 종 발견된다. 눈에 보이지 않던, 하지만 늘 귀를 채워주던 존재를 인식하기에 아파트만큼 좋은 곳도 드물다.
탐조 문화는 최근 젊은 세대에서 조용히 확산되는 중이다. 구독자 43만 유튜버 ‘새덕후(@KoreanBirder)’의 인기도 한몫했다. 탐조를 처음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박임자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책 한 권, 그리고 가벼운 쌍안경 하나면 충분하다. 새라는 존재가 삶에 들어오는 것은 행운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새소리를 들어보시길 권한다. 그것만으로도 공간이 다르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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