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2일 전북녹색연합 ‘새를 구하는 사이’ 동아리 회원들이 전주 시내 한 아파트 단지 투명 방음벽에 충돌해 죽은 조류를 찾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발견이요!” 5월22일 전북 전주시 한 아파트 단지 화단에서 김지은 전북녹색연합 사무처장이 갑자기 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각자 흩어져 있던 ‘새를 구하는 사이’ 동아리 회원들이 달려왔다. “어디요, 어디?” 김지은 사무처장이 정강이까지 자라 있는 풀을 걷어내자 파리 떼가 솟구쳤다. 탄식이 흘렀다. “크지도 못하고 죽어버렸네.” 몸이 채 자라지 않은, 참새보다 조금 큰 까치 새끼 한 마리가 반쯤 썩은 채로 풀밭에 떨어져 있었다.

사체를 뒤집자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이제 날씨가 더워져서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금방 썩어버려요.” 김지은 사무처장이 말했다. 한 명이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는 사이 다른 한 명이 사체를 묻어주기 위해 흙을 팠다. 새는 꽃삽에 폭 안길 만큼 작았다. 새를 묻어주던 사람들이 다시 한번 탄식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아파트 1층 베란다에서 스무 발자국 떨어진 곳에 어린 까치의 무덤이 생겼다.

새가 죽는다. 상위 포식자의 먹이가 되어서도, 인간의 사냥에 의해서도, 환경오염 때문에도 아니다. 그저 하늘을 날아가다가 죽는다. 날아가는 곳이 하늘인 줄 알고 날갯짓하다가 죽는다. ‘꽝’ 하고 부딪히는 곳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투명한 인공물이다. 버스 정류장, 지하철 출구 지붕, 건물 연결 통로, 공중전화 박스, 투명 방음벽…. 투명한 외벽이 들어가지 않은 구조물은 거의 없다. 유리의 투명성과 반사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새들에게 그곳들은 무덤이 된다. 그렇게 ‘아무 의미 없이’ 죽는 새가 우리나라에서 한 해 785만여 마리에 달한다(새 충돌 줄이려면 ‘5×10 규칙’ 기억하라 기사 참조).

5월22일 전북녹색연합 ‘새를 구하는 사이’ 동아리 회원들이 전주 시내 한 아파트 단지 투명 방음벽에 충돌해 죽은 조류를 찾고 있다. ‘고위험군’ 방음벽에는 충돌 방지 스티커를 붙일 계획이다. ⓒ시사IN 이명익
5월22일 전북녹색연합 ‘새를 구하는 사이’ 동아리 회원들이 전주 시내 한 아파트 단지 투명 방음벽에 충돌해 죽은 조류를 찾고 있다. ‘고위험군’ 방음벽에는 충돌 방지 스티커를 붙일 계획이다. ⓒ시사IN 이명익

5월22일 〈시사IN〉이 동행한 전북녹색연합의 ‘새를 구하는 사이’ 동아리 현장 활동은 지난달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매달 한 번씩 투명 방음벽이 설치된 아파트 단지를 찾아 조사하고, 환경부의 지원을 받아 새가 자주 충돌하는 ‘고위험군’ 방음벽에 충돌 방지 스티커를 붙인다. ‘새를 구하는 사이’는 원래 올해 새를 관찰하는 탐조(探鳥) 활동을 하려고 했지만, 한 회원이 “새를 지키는 게 먼저다. 새가 살아 있어야 탐조도 할 수 있지 않느냐”라고 의견을 내 계획을 바꿨다.

투명 방음벽을 따라가며 조사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방음벽 아래에서 새 사체를 발견하면, 그 옆에 ‘구하자’라는 자(ruler)를 놓고 사진을 찍는다. ‘새를 구하자’라는 뜻에서 이름을 지은 구하자에는 다양한 색이 프린트돼 있다. 새 사체나 방음벽에 찍힌 충돌흔(새가 충돌한 흔적) 옆에 구하자를 두고 찍으면 색감과 크기를 비교할 수 있는 기준 자료가 된다. 사진을 찍은 뒤 새 사체는 땅에 묻고, 충돌흔 아래에는 스티커를 붙인다. 다음번 조사 때 중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현장 조사가 끝나면 ‘네이처링(www.naturing.net)’이라는 생물다양성 데이터 공유 플랫폼에 자료를 올려 시민들과 그 내용을 공유한다.

자연 활동 공유 플랫폼 ‘네이처링’에 죽은 새의 종류와 사망 지점을 공유하고 있는 모습. ⓒ시사IN 이명익

이날 오전 400m도 채 되지 않는 구간에서 새 사체 8마리를 발견했다. 100m마다 2마리씩 떨어져 죽은 셈이다. 김지은 사무처장은 사실 이보다 더 많은 새가 죽었을 거라고 추측했다. 풀숲이 자란 방음벽 너머는 조사하지 못한 데다 사체가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길고양이가 물어가거나, 다른 새들이 쪼아 먹었거나, 개미 등 곤충이 처리한 경우다. 모든 새가 충돌흔을 남기는 것도 아니다. 참새처럼 가볍고 작은 새는 충돌흔조차 남기지 못한다. 사체도 없고 충돌흔도 남기지 못한 새는 갑자기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물, 먹이, 쉴 곳을 찾다 방음벽에 부딪힌다

같은 시각 맞은편 아파트 단지의 투명 방음벽을 조사한 다른 팀은 조류 사체 16마리를 발견했다. 그중 한 마리는 몸이 모두 썩고 뼈만 남아 있었는데, 머리뼈 오른쪽에 동그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투명 방음벽에 부딪힌 부위였다. 한승우 전북녹색연합 정책위원장이 말했다. “정말 작은 새도 날아가다 방음벽에 부딪히면 ‘딱’ 하고 돌멩이 쪼개지는 소리가 들려요. 아무것도 없는 줄 알고 전속력으로 날아가다 들이받는 거잖아요. 머리만 부서지는 게 아니라 부리, 가슴, 날개까지 모두 부서져요.” 사람이 교통사고에서 다발성 골절을 입는 것처럼 새들도 방음벽에 부딪히면 온몸이 부서진다. 즉사하지 않고 목숨을 건지더라도 날지 못하고 비틀비틀 걸어다니다 결국 죽는 경우도 많다.

투명 방음벽에 부딪혀 죽은 청딱따구리. ⓒ시사IN 이명익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승합차에 오르던 김지은 사무처장이 자동차 천장에 머리를 찧었다. 챙이 넓은 모자 때문에 미처 보지 못한 탓이었다. ‘꿍’ 하는 소리에 사람들이 “아프겠다”라며 걱정해주자 멋쩍게 웃던 김 사무처장은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머리를 살짝만 찧어도 이렇게 아픈데 힘을 다해 날아가다 부딪힌 새들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두 번째 조사 장소는 전주천을 내려다보는 아파트 단지였다. 하천과 나무, 풀숲이 있어 새들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을 갖춘 곳이지만, 그 옆으로 난 도로를 따라 약 200m 길이의 방음벽이 세워져 있었다. 물과 먹이, 쉴 곳을 찾아 이곳으로 날아오는 많은 새들이 방음벽에 부딪혀 목숨을 잃는다. 조사를 시작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발견이요!”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하천 쪽으로 날아가다 방음벽을 들이받고 화단으로 떨어진 멧비둘기였다. 회원들은 사체를 묻어주며 새가 미처 접지 못한 날개를 가지런히 접어주었다.

‘새를 구하는 사이’ 회원이 충돌 사고로 죽은 새의 사체를 묻고 있다.ⓒ시사IN 이명익

이 광경을 본 한 아파트 주민이 “무슨 일이냐”라고 물었다. “죽은 새를 묻어주고 있다”라는 대답에 주민은 놀라지 않고 말했다. “여긴 새가 잘 죽데. 희한해. 지난번에는 까치 새끼 한 마리가 떨어졌거든. 다른 두 마리가 와서는 이틀 동안 빙글빙글 돌면서 울더라고. 깍깍 우는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사람 우는 건 비교도 안 돼.”

바닥 조사를 끝낸 회원들은 방음벽에 남아 있는 충돌흔을 살폈다. 새의 몸 형태가 고스란히 찍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양옆으로 액체가 튀듯 흩뿌려진 형태가 대부분이다. 모이주머니나 장기가 터지면서 남은 흔적이다. 순간적으로 세게 부딪히면서 납작하게 눌린 깃털이 붙어 있는 경우도 많다. 방음벽을 살펴보는 사람들의 발길이 자주 멈췄다. 충돌흔 사진을 찍은 뒤 스티커를 꺼냈다. 죽음의 자리마다 촘촘히 스티커가 붙여졌다.

5월22일 하루 동안 아파트 단지 3곳에서 발견한 새의 사체는 총 30마리였다. 까치, 멧비둘기, 어치, 참새,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 물총새 등 종류는 다양했다. 충돌흔 27개까지 합치면 57마리다. 활동에 참여한 모효진씨는 “사실 우리는 주위에 방음벽이 있는 줄도 모르지 않나. 사람은 신경도 안 쓰는 벽을 넘나들기 위해 새들은 삶과 죽음을 오간다는 게 너무 끔찍하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전주/글 나경희 기자·사진 이명익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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