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여학생이 서울 강남에서 투신한 것을 계기로 디시인사이드 우울증갤러리에서 청소년 그루밍 성범죄가 다수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시사IN 조남진
10대 여학생이 서울 강남에서 투신한 것을 계기로 디시인사이드 우울증갤러리에서 청소년 그루밍 성범죄가 다수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시사IN 조남진

한 10대 여학생의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은 옥상에서 시작됐다. 서울 강남역에서 도보로 2분 거리. 번화한 테헤란로 한복판에 있는 19층 오피스텔 옥상이었다. ㄱ양이 건물 옥상에 올랐던 4월16일은 비가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했다. ㄱ양이 라이브 방송을 시작한 오후 2시께에는 날이 갰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 하늘…. 하늘이 참 맑네요.”

5분 정도 이어진 라이브 방송에서 ㄱ양은 “상당히 춥네요” “무서워요” “갈게요”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하며 죽음을 암시했다. 방송을 보던 누군가가 경찰에 신고했다. 채팅창에는 ‘가지 마’ ‘모두 걱정하고 진심으로 네가 무사하길 바라잖아’ ‘다들 네가 살길 바라고 있어’ 같은 말들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는 라이브 방송을 켜둔 채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경찰 관계자가 휴대전화를 압수할 때까지 이 모든 과정은 생중계됐다. 누군가에 의해 녹화된 투신 영상은 유튜브로, SNS로, 커뮤니티 게시판으로 공유되며 퍼져 나갔다.

ㄱ양이 방송에서 남긴 말은 죽음에 대한 단서가 됐다. 그는 자신이 이용했던 디시인사이드의 한 게시판을 지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울갤(우울증갤러리) 접으시고. 울갤 접으시고. 잘 사셔야 돼요. 저는 이만 가겠습니다.” 투신 전 그는 동반 자살을 계획했던, 같은 우울증갤러리 이용자인 20대 남성을 강남역에서 만났다. 하지만 남성은 ㄱ양과 시간을 보내다 그를 남겨두고 혼자 떠났고 이 과정을 우울증갤러리에 글을 써서 올렸다. “(ㄱ양이) 그냥 바로 뛰자고 함. 준비도 안 된 상태라 무서워서 추노뜀(도망감).” 이 남성은 자살방조 및 자살예방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ㄱ양은 디시인사이드의 우울증갤러리 이용자였다. 디시인사이드는 하루 평균 290만명이 방문하는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다. 스포츠·드라마·연예인·게임 등 다양한 주제의 갤러리(게시판) 2400여 개를 운영한다. 그중 하나인 우울증갤러리는 하루에 6000여 개 글이 업로드되는 인기 갤러리다. 평균 14초마다 새로운 글이 하나씩 올라오는 셈이다.

ㄱ양은 우울증갤러리 내에서 고정된 닉네임으로 활동해왔다. 디시인사이드는 회원가입 절차 없이 익명으로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사이트이지만, ㄱ양처럼 고정 닉네임을 쓸 경우 갤러리 이용자들과 지속적으로 친분을 쌓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 친해진 사람들끼리 SNS 계정을 공유하고 합동 라이브 방송을 하며 위로를 얻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과정에서 신상이 노출돼 사이버불링(인터넷상의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시사IN〉 제768호 ‘디시인사이드 우울증갤러리 수사는 왜 중단됐나’ 기사 참조)도 있다.

ㄱ양은 자신의 성정체성과 연인 관계,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들에 대한 글을 자주 갤러리에 올리고는 했다. 하지만 투신 두 달 전인 2월에는 ‘울붕(우울증갤러리 남성 이용자)이는 실제로 만나면 큰일 나는구나’라며 오프라인 만남에서 성폭행을 당했음을 암시하는 글을 올렸다. 이후 개인 SNS에 사후피임약 사진 등을 올리며 다른 갤러리 남성 이용자를 만나 겪은 일에 대해 쓰거나 자해하는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우울증갤러리는 동물의 왕국이다”

우울증갤러리 이용자들에게 오프라인 만남은 상당히 흔한 일이다. 대개는 나름의 ‘신원 확인’을 거쳐 오프라인 모임에 나간다. 게시판에서 자주 본 닉네임인지, 댓글 혹은 라이브 방송을 봤을 때 ‘쎄한 느낌’은 없는지 등이 기준이다. 가장 흔한 방법은 고정 닉네임을 쓰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른바 ‘네임드 유저(네임드)’의 합석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이용자인 ‘네임드’는 갤러리 이용자와 연애를 하기도 하고, ‘팸(패밀리)’을 꾸리며 갤러리 분위기를 좌우하기도 한다.

우울증갤러리에서 검색어로 '여갤러'를 입략했을 때 뜨는 글 목록.

우울증갤러리 이용자 ㄴ씨는 〈시사IN〉에 ‘네임드’가 되는 방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하루 종일 갤러리에 상주하며 시시콜콜하게 글을 쓰거나, 자신이 얼마나 불행하고 최악의 상황인지 계속 알리면 된다. 집에 불이 났다거나 경찰서에 갔다 왔다고 올리는 식이다. 자극적일수록 ‘개념글(이용자들의 추천을 많이 받은 인기글)’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갤러리 사람들과 오프라인으로 자주 만나는 것도 영향력을 키우는 데 효과적이다. 다들 알개미처럼 친밀하고 집단적으로 움직인다.”

그는 여성 이용자의 경우 외모와 노출도 유명해지는 기준이 된다고 말했다. “얼굴이 예쁘거나 몸매가 좋다 싶으면 남성 이용자들이 한번 자달라고 연락을 엄청나게 한다. 갤러리에도 ‘여갤러(여성 갤러리 이용자) 외모 순위’ ‘ 여갤러 몸매 원탑’ ‘섹스 가능 여갤러 리스트’ 같은 글들이 주기적으로 올라온다. 우울증갤러리는 한마디로 ‘동물의 왕국’이다.”

ㄴ씨 역시 오프라인 모임에 친구와 함께 나간 적이 있다. 이름이 알려진 ‘네임드’가 온다는 말에 믿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갤러리 내에는 서울 신대방동과 신림동 등에 아지트를 마련해놓고 우울증갤러리 이용자들을 초대하는 모임들이 있었다. 그날 ㄴ씨는 ‘신림팸’이라고 불리는 모임에 처음으로 합석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네 명이었던 멤버가 시간이 지나자 예닐곱 명으로 늘어났고 금방 미성년자들에게도 술이나 담배를 권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다들 약을 구하기 쉬운 사람들이니까 서로 가지고 있는 향정신성 약을 바꿔 먹거나 섞어 먹기도 하고 가루로 빻아서 코로 흡입하기도 했다. 여러 가루를 혼합해서 주사로 놓는다는 말도 하더라.”

그는 평소 여갤러 중에 미성년자 비율이 높다고 생각해왔는데 오프라인 모임에 나가며 추측이 확신이 됐다고 말했다. “만나보면 여자들은 대부분 미성년자다. 중학생도 있다. 남자들은 20대 중후반이 가장 많고 30대 초반도 꽤 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연애를 하는 경우가 흔하다. 연애라고 하지만 성 착취, 온라인 그루밍과 다르지 않다.” 성인 남성 한 명이 여러 미성년자 여갤러와 연애를 하면서 자신들의 연애담을 갤러리에 계속 중계하는가 하면, 여자친구를 때린 다음에 상처를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칭찬하고 협박하면서 어리고 취약한 여자아이들을 길들이고, 그걸 공공연히 전시하는 거다.” ㄴ씨는 지난 1년간 갤러리에서 활동하다 숨진 미성년 여학생이 4명 정도 된다고 기억했다. 그는 이들이 모두 ‘갤연애(갤러리 유저 간 연애)’를 한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5년 동안 우울증갤러리에서 활동했던 ㄷ씨는 ‘차단과 메모’를 강조하며 집단적인 그루밍(길들이기)에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우울증갤러리에 들어오는 여갤러들은 가족·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충족되지 못한 관심이나 사랑에 대한 욕구도 크다. 그러다 보니 갤러리 내에서 남성들이 여성들을 길들이는 모습을 보고, 그들이 좋아하는 여성의 모습을 따라 하려고 학습하게 된다. 성관계를 목적으로 다가오는 건데도, 그걸 예쁨받는 거라고 착각한다.” 그는 위험한 이용자들의 닉네임을 반드시 차단해두거나 메모라도 해놔야 그들이 ‘착한 척’ 접근했을 때도 속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차단보다 쉬운 방법은 이탈이다. 온라인 공간은 학교처럼 의무적으로 출석해야 하는 곳도 아니고 본명이 아닌 닉네임, 혹은 익명으로 활동하는 공간인 만큼 관계에 대한 책임도 적다. 하지만 ‘온라인 공간은 자유롭다’는 일반의 인식과 달리 우울증갤러리에서 피해를 당했다는 사람들은 쉽게 이곳의 착취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왜 그럴까?

“청소년들에게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두려운 일이 뭐냐고 물었더니 ‘소문’이라고 답하더라. 성 착취나 성폭력, 명의 도용 같은 걸 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답이 나왔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기관 ‘열림터’의 수수 활동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인 열림터에서는 2020~2021년 온라인 성착취 및 그루밍 피해를 겪은 청소년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10대들은 현실과 온라인 공간을 동일하게 느꼈다. 온라인 관계를 ‘로그아웃’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인식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기성세대들은 온라인 공간을 텍스트 기반으로 이해하지만 청소년들은 음성과 영상을 통해 온라인 세계를 받아들인다. 온라인에서 맺는 관계를 성인보다 청소년들이 더 입체적으로 실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청소년들이 ‘소문’에 민감하다는 의미를 다시 물었다. “온라인에서 관계를 맺어도 그곳에서 만난 다른 이용자들과 자신이 실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고 느꼈다. 그들을 자신의 관계망 속에서 중요한 멤버로 인식하는 거다. 그래서 그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처럼 비춰지느냐, 자신에 대해 어떤 소문이 나느냐에 따라 힘을 얻기도 하고 위협을 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열림터의 수수 활동가에 따르면, 여기에서 ‘힘을 받는다’는 것은 온라인상의 친구나 선배, 오빠들이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함께 저격(댓글 등을 통해 상대를 비난하거나 인신공격하는 행위)하는 등 자신의 사회적 지지 자원이 되어주는 것을 뜻한다.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 힘을 곧 나를 지켜줄 수 있는 힘,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능력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현실에서 정서적·관계적·금전적 자원이 취약할수록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졌다.

“투신 영상 팝니다” 공공연한 2차 가해

김보화 젠더폭력연구소 소장은 일대일 채팅앱이 아닌 일대다수로 이루어진 커뮤니티 게시판에서의 온라인 그루밍은 피해와 가해의 책임이 뒤섞이는 착시효과를 일으킨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커뮤니티 그루밍 범죄’가 유독 더 사소하게 인식되는 이유다. “이용자 수가 많고, 모두에게 개방된 공개적인 곳에서 일어나는 고도화된 폭력들은 재미나 놀이의 영역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이를 규제하거나 비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기 힘들다.” 그렇기에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더 쉽게 이루어진다. “‘넌 그 게시판에 왜 들어갔어? 네가 스스로 사진도 올리고 사람들하고 어울렸잖아’ 하는 식으로 피해자의 책임을 묻는 말들이 가해를 비난하는 말보다 더 쉽게 확산된다. 그러다 보면 그 공간 안에 실재하는 권력관계는 지워지고, 마치 피해자가 위험을 통제할 수 있었던 것처럼 폭력이 은폐된다.”

ㄱ양이 목숨을 끊은 후 우울증갤러리에는 그가 그간 올렸던 말과 사진들이 캡처 이미지로 박제돼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고, 그가 ‘애도받을 만한’ 사람인지 ‘재평가’를 빙자한 2차 가해가 이루어졌다. 고인에 대한 2차 가해는 ‘투신 영상 판매’라는 새로운 형태로도 나타났다. 여러 플랫폼에 무작위로 노출됐던 투신 영상이 삭제되고 나자 특정 SNS에서는 “20분짜리 직접 녹화 딴 거 5000원에 드립니다. 디엠 주세요” “투신 영상 원본 사요. 가격 선제 시 ㄱㄱ” 같은 글들이 올라왔다. 현재도 영상은 아무런 규제 없이 공공연히 거래되고 있다.

디시인사이드는 경찰의 우울증갤러리 폐쇄 요청에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시사IN 박미소
디시인사이드는 경찰의 우울증갤러리 폐쇄 요청을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거부했다. ⓒ시사IN 박미소

사건 이후 경찰은 투신 영상 유포와 고인에 대한 2차 가해 확산의 주범인 플랫폼에 책임을 물었다. 4월19일 경찰은 디시인사이드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우울증갤러리 임시 폐쇄를 요청했다. 디시인사이드는 ‘표현의 자유’와 ‘이용자의 저작권 보호’를 강조하며 갤러리 폐쇄 요청을 거부했다. 박주돈 디시인사이드 부사장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우울증갤러리에 대한 성인인증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현재도 누드·DDR(자위)·유흥 같은 미성년자들이 접근하면 안 되는 주제의 갤러리에 적용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박 부사장에 따르면 앞서의 갤러리들과 달리 우울증갤러리에서는 글을 쓸 때만 성인인증이 필요할 뿐 글을 읽는 데는 제약이 없는 방식으로 인증절차가 검토되고 있었다.

현재 디시인사이드는 회원가입을 거치지 않고 익명으로 운영되는 거의 유일한 사이트다. 범죄 피해 같은 문제가 터질 때마다 디시인사이드는 ‘자체 모니터링 강화’만을 내세우고 있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변호인단으로 활동했던 안지희 변호사는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에 N번방 피해자의 인적사항이 계속 올라와 신고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디시인사이드는 우리가 신고하는 게시글에 대해서만 대응할 뿐 자체적인 필터링 노력은 거의 없어 보였다. 정보가 너무 많기 때문에 불법 정보를 지정해주지 않으면 삭제할 수 없다는 것이 디시인사이드의 주장이었지만, ‘할 수 없다’는 말 뒤에 너무 넓은 회색지대가 있었다.”

방심위는 4월27일 열린 제31차 통신심의소위원회에서 우울증갤러리 폐쇄에 대한 안건을 다루었다. 하지만 “종합적인 법률 근거, 유관기관 협조 등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라는 황성욱 통신심의소위원장의 발언에 참석한 방심위원들이 모두 찬성하며 ‘의견 보류’ 결정이 내려졌다. 현재 이 안건을 다룰 추후 회의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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