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미얀마의 로힝야 대학살 당시, 약 80만명의 로힝야 난민들이 나프강을 건너 방글라데시로 향했다. ⓒEPA
2017년 미얀마의 로힝야 대학살 당시, 약 80만명의 로힝야 난민들이 나프강을 건너 방글라데시로 향했다. ⓒEPA

지난 4월2일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로힝야 난민 송환 이슈에 관한 정부 회의가 열렸다. 이웃 국가 방글라데시에 100만명 이상 체류 중인 로힝야 난민을 미얀마로 데려오는 계획 때문이다.

미얀마 서부에 위치한 라카인주는 로힝야들의 본향이다. 방글라데시와는 국경을 가르는 나프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2017년 미얀마의 로힝야 대학살 당시, 나프강을 건너는 약 80만명의 필사적 탈출 행렬은 전 세계에 적잖은 충격을 던졌다. 미얀마의 로힝야 박해 규모를 가늠케 하는 장면이었다. ‘로힝야 제노사이드’가 엄연한 현실이라는 점에 쐐기를 박은 사건이었다(제노사이드는 전쟁범죄나 반인도주의 범죄와는 또 달리 ‘종족 말살 의도’를 갖고 체계적·제도적으로 장기간 벌어지는 범죄행위를 가리킨다. ‘의도’를 규명하는 게 제노사이드 판단의 난제이며 미얀마의 로힝야 박해를 두고 한때 이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다). 피란 행렬은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일대로 모여들었다. 이곳에는 1970년대부터 먼저 미얀마를 탈출한 기존 난민(미등록 난민 포함 30만~50만명 추정)도 머물고 있다. 기존 난민에 최근 피란 행렬까지 더해지면서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는 ‘지구상 최대 난민캠프’와 동의어가 됐다.

미얀마 군부는 자신들이 폭력적으로 축출했던 이 지역 로힝야 피란민을 다시 데려오겠다며 부산한 모습이다. 미얀마와 송환에 관해 논의 중인 방글라데시 ‘난민 구호 및 송환 위원회’ 위원장 모하메드 미자누르 라만에 따르면, 영유아 150명을 포함해 1140명이 우선 시범 송환 대상에 올라 있다. 이 중 711명에 대한 검토를 마쳤고, 나머지 429명도 마저 검토하겠다며 미얀마 대표단이 3월15일 콕스바자르 캠프를 찾았다. 방문단에는 ‘호스트 국가’ 방글라데시와 인도, 중국 그리고 아세안 8개국 대표단도 동행했다. 모두 로힝야 난민 송환으로 미얀마가 ‘정상화되고 있다’는 허상의 이미지를 부여하는 것을 불편해하지 않을 나라들이다. 그 대표적 국가로 중국이 ‘로힝야 송환 프로젝트’에 발 빠른 중재자로 나섰다는 점은 곱씹어볼 만하다.

중국은 2017년 11월23일, 그러니까 8월25일 시작된 대학살의 흔적이 채 마르기도 전에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두 나라의 난민 송환 합의를 끌어냈다. 지난해 12월28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 도착한 신임 중국대사 야오원은 전임 대사들과 마찬가지로 로힝야 난민 송환 문제에 대해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예컨대 1월23일 방글라데시 외교장관 압둘 모멘을 만난 자리에서 그가 처음 꺼낸 말도 “로힝야 송환을 조속히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였다. 4월4일 다카에서 열린 ‘중국과 함께하는 봄의 대화(다카 중국 대사관이 현지 언론과 협업해 진행하는 이슈 토론 프로그램)’에서는 “아직도 (로힝야 난민) 첫 송환이 이뤄지지 않은 건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말했다.

로힝야 난민 송환의 중재자, 중국

워싱턴의 싱크탱크 우드로윌슨 센터가 지난해 1월 발행한 보고서 〈잘 드러나지 않는 유사성:중국의 대로힝야 정책이 가져올 파장〉은 로힝야 이슈에 대한 중국의 태도를 잘 설명하고 있다. 중국에 로힝야 문제는 ‘인종청소’가 자행되는 인권침해라기보다 저개발국의 경제적 불충족에서 비롯된 커뮤니티 간 폭력 사태다. 따라서 라카인주에 대한 적극적 개발과 투자가 로힝야 위기를 푸는 답이 될 수 있으며, 난민 송환은 그 ‘정상화’ 과정에서 필요한 기제라는 것이다.

미얀마는 중국이 인도양으로 진출하는 유일한 육로에 놓여 있다. 라카인주 차우퓨 지역에서 경제특구 개발과 심해 항구 건설사업을 벌이고 있는 중국은 이 프로젝트에 대한 보호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중국이 군부뿐 아니라 군부와 내전 상태에 있는 라카인주 주류 종족인 라카인족 반군단체 아라칸 군(AA)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라카인주에서 세를 빠르게 확장해가는 반군을 지렛대 삼아 이 지역에 대한 전략적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게 중국의 계산법이다. AA가 2019년 7월 낸 성명에서 “(AA의 정치국인) 아라칸 연합동맹(ULA)은 정당하고 투명하며, 여러 정부와 기관에 상호 이익을 안겨주는 국내외 프로젝트, 예컨대 중국의 심해 항구 건설과 연계된 사업, 차우퓨의 특별경제구역 프로젝트 등을 건설적 사업으로 생각한다”라며 지지를 표명한 것도 이들의 관계를 잘 반영한다. 물론 신장 위구르족 탄압 문제로 비판을 받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로힝야 이슈가 소수민족 탄압에 대한 처벌 전례가 되는 것을 조금도 원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라도 로힝야는 송환되고 폭력은 중단돼야 하며 ‘원만한’ 해결을 봐야 한다. 중국이 로힝야 난민 송환 문제에 적극적인 까닭이다.

미얀마도 당장의 절박함이 눈에 띈다. 국영언론 〈미얀마 알린〉이 인용한 국경부 상임장관 우 테인 테 우에 따르면, 군부는 로힝야 난민 송환을 위해 50억 짯(약 31억원)을 투자했다. 미얀마가 로힝야 난민 송환 문제에 올해 초 다시 천착한 건 제노사이드 범죄로 제소된 국제사법재판소(ICJ) 재판 일정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9년 ‘로힝야 제노사이드 혐의’로 ICJ 재판에 출석한 아웅산 수치 당시 미얀마 국가고문(맨 왼쪽). ⓒEPA

미얀마는 2019년 11월 서아프리카 국가 감비아로부터 ‘로힝야 제노사이드 혐의’로 ICJ에 제소됐다. 이듬해인 2020년 1월 ICJ는 미얀마에 로힝야 제노사이드 방지를 위한 임시 조치들을 취하고 6개월마다 이를 보고하라고 명령했다. 지난해 7월 ICJ는 미얀마의 이의를 기각했다. 4월24일은 미얀마의 ‘반박 변론문’ 제출 마감일이다. 그러나 미얀마는 두 달 전인 2월에야 반박 변론 준비를 위한 ‘합동 워킹그룹’을 구성했다. 이제 시간은 군부 편이 아닌 듯하다. 군부는 3월14일, ICJ에 반박 변론 마감을 내년 2월로 연기해달라 요청했고, ICJ는 4월6일 판결에서 한달만 연장한 5월24일을 마감으로 재조정했다. 4월15일 공개된 ICJ의 판결문에는 로힝야 난민 송환 이슈가 언급돼 있다. 군부가 마감 연장을 요청하며 “방글라데시에 거주 중이거나 이제 곧 미얀마로 송환될 (로힝야 난민들 중) 목격자들로부터 증언을 (이제야)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적은 대목이 그렇다. ICJ에 마감 연장을 요청한 다음 날 군부는 방글라데시 캠프를 방문했다. 반박 변론 마감을 늦추기 위한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갈수록 고립되어가는 군부가 대외적 비판에 대한 방패막이로 로힝야 송환 이슈를 이용하고 있다고 봐도 틀리지 않다. 게다가 송환된 난민들을 어떻게 재정착시킬 것인지에 대한 군부의 구상은 난민 송환의 기본 원칙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미얀마 시민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군부는 우선 ‘시범 송환’될 난민들을 라카인 북부 마웅도 타운십에 지어놓은 임시 캠프 세 곳인 타웅 표 레트웨, 응아 쿠 야, 그리고 라 포 카웅에 2주 정도 체류하도록 한 후 ‘고향 땅’에 재정착시키겠다고 말했다. 군부 대변인 조 민 툰은 3월26일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로힝야들의) 안전을 위한 만발의 준비가 돼 있다”라고도 했다.

그러나 군부가 언급한 로힝야들의 ‘고향 땅’은 이미 불도저로 갈아엎은 지 오래다. 일부 지역엔 이미 새 건물이 들어섰고 또 다른 일부는 불교도 정착촌으로 개발되고 있다. 군부가 언급한 ‘라 포 카웅’ 캠프는 본래 라 포 카웅이라는 로힝야 마을이었다. 2017년 학살 후에도 12가구 정도가 텐트에 거주하며 마을을 끝까지 지킨 곳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18년 1~2월께 이 마을에서 모두 쫓겨났다. 건물 하나 남지 않고 갈려 나간 그 자리에 군부는 주택 787채를 짓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대부분 불교도와 힌두교도 주민 몫으로 배정했고, 22채만이 ‘벵갈리(로힝야를 비하해 부르는 호명)’를 위해 안배해놨다는 게 당시 군의 발표였다. 따지고 보면 후자가 임시 캠프로 발전된 셈이다. 미얀마 군부의 송환은, 로힝야들이 살던 마을의 흔적조차 남지 않은 땅에 군부가 지어놓은 캠프에서 이동의 자유 없이 살라는 것이다. 3월20일 전 세계 시민사회단체 201개는 “로힝야 제노사이드 생존자들을 킬링필드로 보내서는 안 된다”라며 성명을 발표했다.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그리고 주변국들 모두 정치적·경제적 득실 계산에 여념 없는 사이 정작 송환 당사자인 로힝야들이 바라는 자발적이고 안전한 송환은 점차 멀어지고 있다. 197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중반 제1·2차 대축출 이후 두 번의 송환 경험이 그러했듯 이번 로힝야 난민 송환 추진 방식도 ‘강제송환’ 성격이 짙다. 그러나 1951년 난민협약은 협약 비준 여부를 떠나 강제송환 금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명시해놓았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가 최근 군부 방문단과 만났던 15명의 로힝야 난민들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은 “속았다”라고 반발했다. 개중에는 ‘미얀마로의 송환’이 아닌 제3국(주로는 서방국가들) 재정착을 미끼로 인터뷰에 불려 나간 이들도 있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미얀마 군부는 로힝야에게 시민권 대신 ‘국민심사카드(NVC 카드)’를 수령하라고 압박한다. NVC 카드는 로힝야들을 ‘벵갈리’로 규정하는 차별적 신분증이다. ⓒEPA
미얀마 군부는 로힝야에게 시민권 대신 ‘국민심사카드(NVC 카드)’를 수령하라고 압박한다. NVC 카드는 로힝야들을 ‘벵갈리’로 규정하는 차별적 신분증이다. ⓒEPA

무엇보다도 미얀마 방문단이 ‘시민권’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던 건 현 송환 논의의 근본적 오류를 보여준다. 1982년 시민권법 개정으로 시민권을 박탈당한 로힝야들의 시민권 회복 문제는 그들의 존엄한 귀환에서 중요한 조건이다. 군부는 로힝야들에게 시민권 대신 ‘국민심사카드(National Verification Card, 이하 NVC 카드)’를 수령하라고 압박한다. NVC 카드란 로힝야들을 ‘벵갈리’로 규정하는 차별적 신분증이다. ICJ 법정에서 감비아 측 변호를 맡은 폴 라이클러는 이 카드를 “로힝야에 대한 계속되는 박해의 증거”라고 말했다. 국제인권단체들은 NVC 카드를 “제노사이드 카드”라고 비판한다. 로힝야들의 시민권 박탈을 제도적으로 재확인시켜주는 카드이기 때문이다. 군부는 라카인주에 거주 중인 약 60만명 로힝야들에게도 NVC 카드 수용을 압박하고 있다. 미얀마 언론 〈미지마 뉴스〉는 4월15일 군부가 라카인주 주도인 시트웨 외곽의 로힝야 게토에서 로힝야들에게 NVC를 다시 배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카드 하단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이 카드를 소지했다고 해서 소지자가 미얀마 시민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기자명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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