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경로힝야족은 지난 40여 년간 미얀마가 저지른 제노사이드 범죄로 인해 고통받아왔다. 위는 인도 델리 외곽에 있는 로힝야 난민 캠프.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 제노사이드 범죄가 국제법정에 서게 됐다. 11월11일(현지 시각),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인구 200만명의 감비아는 이슬람 국가기구(OIC) 57개국을 대표해 미얀마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다. AP 보도에 따르면 감비아의 아부바카르 마리 탐바두 법무장관은 “미얀마와 국제사회에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 끔찍한 잔혹상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건 이 세대의 크나큰 수치다”라고 말했다. 탐바두 장관은 과거 르완다 제노사이드를 다룬 국제형사재판소에서 검사 특별보좌관을 지냈다. 감비아가 미얀마를 제소한 ICJ는 1945년 창설된 ‘유엔 최고법정’이다. 제소한 근거는 유엔이 1948년 채택한 ‘제노사이드 범죄에 대한 처벌과 방지 협약(제노사이드 협약)’이다. 제노사이드는 ‘종족·인종·종교·종파 등 특정 그룹의 일부 혹은 전체를 말살할 의도를 가진 범죄’를 뜻한다. 이번 ICJ 제소에서 감비아 측 변호를 맡은 로펌 ‘폴리호그(Foley Hoag)’의 폴 라이클러 변호사는 자유아시아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제노사이드 증거는 차고 넘친다”라고 자신했다.

2017년 8월 당시 미얀마 북서부 아라칸주(라카인이라고도 함)에는 로힝야족 100만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었다. 라카인족을 비롯해 미얀마인 다수가 불교를 믿는데, 로힝야족은 이슬람교를 믿는다. 미얀마 정부군은 로힝야 반군이 군경 초소 30여 곳을 공격했다며 ‘청소 작전(Clearance Operation)’을 펼쳤다. 이 작전에는 라카인족도 가담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 총격과 파괴, 성폭력과 방화가 자행되었다. 그해 11월 국경없는의사회의 긴급 설문조사를 근거로 사망자를 따져보면 2017년 8월25일~9월24일 로힝야족 최소 9400명이 목숨을 잃었다. 5세 미만 아동도 최소 730명이 살해당했다. 이 인종청소 작전으로 로힝야족 70만명 이상이 방글라데시로 피했다(〈시사IN〉 제613호 ‘타인의 고통이 우리의 고통인 까닭’ 기사 참조). 1978년 4월 네윈 군사정부의 ‘킹드래곤 작전’ 때도 로힝야족 약 25만명이 방글라데시로 쫓겨났다.

또 다른 국제법정인 국제형사재판소(ICC) 수석 검사 파투 벤수다는 7월4일 미얀마의 로힝야 범죄 조사를 요구했다. 11월14일 ICC가 이를 승인했다. ICC 조사는 방글라데시를 중심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미얀마는 ICC 협약국이 아니다. 로힝야족이 미얀마 정부군을 피해 국경을 넘은 방글라데시는 ICC 협약국이다. 방글라데시는 ICC 조사에 적극 응할 방침이다.

ICJ가 국가 상대 제소라면, ICC는 개별 인물을 제소한다. 다만 ICJ가 유엔의 제노사이드 방지 협약에 근거해 제노사이드 범죄 자체를 법정에서 심판한다면, ICC는 방글라데시의 로힝야족을 조사할 때 강제추방과 고문 등 범죄만 다룬다. ICC에서 미얀마의 제노사이드 혐의를 재판할 방법이 없지는 않다.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미얀마를 ICC에 제소하면 가능하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이를 반대하고 있다.

ⓒ이유경8월23일 서울에서 열린 로힝야 국제 콘퍼런스에서 질문하는 로힝야 활동가 야스민 울라 씨.

아웅산 수치 자문역의 지지층 ‘결집’

11월13일 아르헨티나 법정에 미얀마의 로힝야 범죄에 대한 또 하나의 고발장이 접수됐다. 로힝야 망명 단체 ‘버마로힝야영국(BROUK)’ 마웅 툰 킨 대표와 유엔 미얀마인권특보(2008~2014)를 지낸 아르헨티나 출신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인권변호사가 ‘보편적 재판관할권(universal jurisdiction)’에 따라 수치 자문역과 미얀마 장성들을 제노사이드 혐의로 고발한 것이다. 보편적 재판관할권은 반인도주의 범죄에 대해 속인주의나 속지주의 등 제약 없이 어느 나라에서도 재판관할권이 인정된다는 의미다. 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독일·프랑스·스페인 등 다수 서방국가와 브라질·아르헨티나 등이 허용하고 있다.

잇단 국제법원 제소에 미얀마 정부는 반발했다. 특히 미얀마는 ICJ 제소에 적극 대처하고 있다. 11월20일 미얀마 대통령실 조테이 대변인은 “12월10일부터 사흘간 진행되는 ICJ 심리에 아웅산 수치 자문역이 국제변호사들과 함께 헤이그에 가서 국가 이익을 수호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아웅산 수치 자문역의 지지층도 결집했다. 11월24일 미얀마 북서 지역 모니와에서 개최된 집회에는 수치 자문역의 전신상이 등장했고 ‘국가자문역과 함께 미얀마의 국익을 수호하자’는 문구가 새겨진 대형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반면 미얀마 내부 소수민족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샨주 남부군은 미얀마 정부와 보조를 맞춰 국가 이익 변호에 함께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탕 민족해방군은 “우리 지역의 정부군 인권침해도 조사해달라”며 ICJ 조사단을 초청하는 성명을 냈다.

11월11일 로힝야 활동가 야스민 울라 씨(27)는 ICJ 본부가 있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야스민 씨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동안 허공에 대고 빈주먹 날리는 기분이었다. 제노사이드 범죄를 밝힐 수 있어 보인다. 이제야 ‘인간’이 된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인간’을 언급한 사연이 있다. 세 살 때 부모 품에 안겨 타이(태국)로 탈출해 2011년 캐나다로 건너가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그는 16년간 타이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그는 “타이에서도 로힝야라고 말할 수 없었다. 로힝야라는 이름은 늘 체포나 추방으로 이어졌다. 내 자신이 로힝야라는 사실이 매우 싫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렇게 위축됐던 로힝야 난민 소녀는 이제 로힝야 제노사이드 범죄를 밝히는 활동가가 됐다. 야스민 씨는 “미얀마 내 소수민족은 우리 활동의 핵심 지지 세력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로힝야 국제법정이 로힝야족뿐 아니라 다른 소수민족에 반향을 일으키는 사례가 되길 희망했다.

기자명 이유경 (프리랜서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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