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9월7일 미얀마 정부의 탄압을 피해 보트를 타고 인도네시아 수마트라로 피신한 소수민족 로힝야 난민.

지난 8월31일 미얀마 선관위는 오는 11월8일 예정된 총선 출마자 후보 명단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상하 양원 각각 440석, 224석을 비롯해 주(state) 혹은 지역(region) 의회 등 모두 1100여 석을 채울 의원들을 선출 혹은 임명한다. 이렇게 구성된 새 의회는 내년 3월 출범할 예정이다. 2008년 군사정권이 기안한 헌법에 따라 상하원의 25%는 임명직 군인들로 채워진다. 주 혹은 지방 의회 같은 경우는 3분의 1이 임명직 군인이다.

그나마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이 선거 절차에서 집단적으로, 철저하게 배제된 이들이 있다. 바로 서부 라카인주에 거주하는 로힝야 커뮤니티다.

로힝야는 미얀마 서부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이다. 불교도가 대다수인 미얀마에서 무슬림인 로힝야족은 시민권을 부여받지 못한 무국적자로 살아왔다. 미얀마 정권은 로힝야를 대상으로 가혹한 박해는 물론 심지어 대량학살까지 자행해왔다. 2012년에는 유엔에서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소수민족’으로 규정할 정도였다.

9월2일 미얀마 선관위가 업데이트한 바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는 모두 7030명이 후보로 등록했다. 이 중 6969명이 후보 자격을 얻었다. 61명이 후보 자격을 박탈당한 셈이다. 여기에 로힝야 정치인 6명이 포함됐다. 무소속 후보로 등록했으나 거부당한 로힝야 정치인 아부 타헤이(56)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로힝야 후보가 거의 다 후보 자격을 잃었다”라며, ‘배제 정책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라카인주에서 로힝야 이외의 다른 후보가 자격을 박탈당한 경우가 있긴 하다. 그러나 해당 후보는 아들이 라카인족 반군인 ‘아라칸 군’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로힝야 배제와는 다른 맥락이다.

아부 타헤이의 피선거권 회복 노력은 눈물겹다. 그는 8월4일 선거법에 따라 우선 라카인주 마웅도 타운십의 선관위에 후보로 등록했다 열흘 만에 거부당했다. 선관위는 이유도 밝히지 않았다. 8월19일에는 라카인주 주도 시트웨의 주 선관위에 재심사를 요청했다. 이틀 만에 거부당했고 주 선관위가 그 이유를 밝히긴 했다. 아부 타헤이가 출생한 시점에 그의 부모가 미얀마 시민권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다시 8월25일에 수도 네피도에 있는 중앙선관위에 이의신청을 냈다. 그러나 선관위의 후보 확정 명단에 아부 타헤이의 이름은 없었다. 출마를 원한 로힝야 정치인들 대다수가 후보 명단에서 사라졌다.

ⓒHkun Lat오는 11월 예정된 미얀마 총선에서 후보 자격을 박탈당한 로힝야 정치인 아부 타헤이.

“아웅산 수치 정부도 군사정부와 다를 바 없다”

미얀마 선거법 제10(e)조는 후보 자격요건으로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후보자 출생 시 양 부모가 모두 미얀마 시민권자여야 한다.” 그런데 같은 선거법이 적용된 1990년과 2010년 두 번의 선거에서 아부 타헤이는 별 탈 없이 출마한 이력이 있다. 1990년 선거에선 라카인주 ‘부티동 타운십-선거구 2’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득표율 2위로 낙선했다. 그 선거구의 당선자는 또 다른 로힝야 정치인 우초민(76). 그는 현재 민주인권당(DHRP) 대표를 맡고 있는 저명한 인물이다. 그해 선거 직후 우초민은 아웅산 수치의 민족민주동맹(NLD) 의원 등 다른 당선자와 함께 인민의회(CRPP)라는 대안의회를 만들어 군부에 맞서기도 했다. 군부가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초민이 주도하는 DHRP의 전신인 ‘인권을 위한 민족민주당(NDPHR)’은 1990년 선거에 후보 8명을 냈는데 그중 4명이 당선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선 당 대표 우초민을 포함 4명의 DHRP 후보가 등록을 거부당했다. 모두 로힝야 출신이다.

“로힝야들은 1936년부터 2010년까지 선거가 있을 때마다 투표권을 행사해왔다. 그 권리를 처음으로 빼앗긴 것은 (친군부 정당인) 연방연대개발당(USDP) 집권 시기인 2015년이었다.” 로힝야 망명 활동가 조직인 ‘자유로힝야연합(Free Rohingya Coalition)’ 활동가 네이 산 르윈의 설명이다. 네이 산 르윈은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 답신에서 “이번 선거에선 국제사회의 압력도 있고 하니 투표권이 혹시 회복될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아웅산 수치 정부 역시 군사정부와 다를 바가 없다”라고 비판했다.

네이 산 르윈이 언급한 2010년 11월 총선은 1990년 총선 이후 20년 만에 시행된 선거였다. 폐쇄 정치를 영구화할 것 같던 미얀마 군부가 대외 개방정책으로 노선을 틀면서 선거가 열릴 수 있었다. 로힝야들은 군부정권이 임시 신분증으로 발급한 ‘화이트 카드’로 투표할 수 있었다. 아부 타헤이는 당시에도 라카인주 부티동 타운십에 출마했다. 두 개에서 하나로 줄어든 이 선거구에서 당선된 인물은 친군부 정당 USDP 소속 후보인 우 쉐 마웅(55). 우 쉐 마웅조차 2015년 선거에선 후보 등록을 거부당하고 만다. 이유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우 쉐 마웅이 출생할 당시 그의 부모가 미얀마 시민권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부 타헤이도, 우 쉐 마웅도 자신의 부모는 물론 조부모까지 모두 미얀마 시민권자였다고 강조한다. 아부 타헤이의 부모는 1957년 발행된 시민카드를, 우 쉐 마웅의 부모는 1952년 발행된 시민카드를 소지하고 있다. 이들이 소지한 카드는 1948년 시민권법에 근거한 ‘국민등록카드(National Registration Card·NRC)’다. 일명 ‘그린카드’로, 1982년에 개정한 시민권법이 실제 적용되기 시작한 1990년대 초까지도 미얀마 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일종의 신분증이다. 아부 타헤이, 우 쉐 마웅 두 사람의 출생연도가 각각 1964년, 1965년인만큼 이들의 부모는 당연히 시민권자였다.

미얀마 당국이 로힝야 후보 등록을 거부하며 문제 삼은 시민권 이슈는 ‘로힝야 제노사이드(집단학살)’의 요건인 ‘체계적·제도적 박해를 통한 무력화’를 구성한다. 먼저, 로힝야 시민권을 박탈한 것으로 알려진 1982년의 개정 시민권법이 현실에 적용되는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82년 개정 시민권법에 따라 ‘국민감시카드(National Scrutinizing Card· NSC)’라는 신분증이 나타났다. 일명 ‘핑크카드’로 이전의 그린카드를 대체하게 된다. 그 본격적 과정은 1988년 전국적 규모의 반독재 시민항쟁인 ‘88항쟁’ 이후부터 전개되었다. 군정은 인종과 종교를 초월한 전국적 항쟁에 위기감을 느끼며 시민들을 종교와 인종에 따라 가르는 분열정책에 박차를 가했다.

핑크카드에는 그린카드와 달리 카드 소지자의 인종과 종교가 표기돼 있다. 1991년 군정은 ‘미얀마의 공식 인종 135’라는 리스트를 발표하며 로힝야를 제외했다. 다만 오늘날에도 극히 일부 로힝야가 시민카드를 소지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핑크카드에 있는 인종 분류는 ‘벵갈리’로 기입되어 있다. 1982년 시민권법은 미얀마 시민을 세 등급으로 나눴다. 그중에서 3등급 시민카드라고 할 수 있다. 벵갈리는 로힝야를 낮춰 부르는 멸칭이다. 미얀마 정부는 벵갈리라는 인종주의적 멸칭을 공식화함으로써 로힝야라는 존재 자체를 지워버린 것이다. 미얀마에서 언론과 소셜 미디어는 ‘벵갈리’라는 공식적 멸칭을 확대 재생산해왔다.

ⓒRo Nay San Lwin Twitter 갈무리로힝야 활동가인 네이 산 르윈은 “페이스북 미얀마 팀이 인종주의적 용어를 허용한다”라고 주장한다.

국제단체와 해외 정부의 도움 필요  

이런 가운데 미국에 본사를 둔 페이스북은 8월31일, 미얀마 총선 관련 가짜뉴스 유포에 강력 대처하겠다고 발표했다. “선거 과정의 존엄을 훼손하거나 유권자를 억압하는 결과로 이어질 만한 오보는 페이스북에서 삭제하겠다.” 페이스북 측이 대표적 사례로 든 것이 바로 ‘벵갈리’다. 특정 후보를 가리켜 벵갈리라고 모욕하거나 ‘미얀마 시민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후보로 등록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게시물들을 타임라인에서 삭제하겠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로힝야 활동가인 네이 산 르윈은 “환영하지만 충분치 않다”라고 말했다. 그는 “2012년 폭력 사태(로힝야족과 불교도 간 유혈사태로 로힝야족 200여 명이 숨지고 14만명이 탈주) 이후 ‘로힝야 혐오’가 통제 불능 수준으로 빠져들었다”라며 페이스북에 더욱 개선된 조치를 주문했다.

“로힝야를 벵갈리로 지칭하는 것은 ‘인종주의적 경멸’에 해당된다. 페이스북은 그 용어를 사용하는 미얀마어 언론들에게 여전히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 로힝야를 로힝야라고 불러야 한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행위는 기본권 침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네이 산 르윈은 최근에도 라카인족 후보가 페이스북에 게시한 로힝야 혐오 게시물에 대해 두 번이나 신고했다. 해당 게시물은 로힝야를 벵갈리라 부르며 ‘분리정책(segregation)’을 부추기고 있었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네이 산 르윈에게 그 게시물이 페이스북 원칙 위반이 아니라고 답변했다. ‘페이스북 미얀마 팀이 그런 인종주의적 용어를 허용하는 게 분명하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로힝야 제노사이드 이슈에 목소리를 높여온 국제 인권단체 ‘포티파이 라이츠(Fortify Rights)’ 역시 로힝야 피선거권 박탈 관련 성명을 통해 국제사회에 당부했다. 미얀마 선거를 재정적·기술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국제단체들, 해외 정부들이 이 문제에 침묵하는 것은 “로힝야의 정치적 권리를 박탈하는 (미얀마 정부의) 노력에 암묵적으로 가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성명서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주권침해나 법치의 문제가 아니다. 제노사이드를 종식하고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인간 존엄의 문제다.”

기자명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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