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에서 공개된 〈방과 후 전쟁활동〉은 입시 공화국을 풍자하면서도 전쟁 재난물의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렸다.ⓒ티빙 제공
티빙에서 공개된 〈방과 후 전쟁활동〉은 입시 공화국을 풍자하면서도 전쟁 재난물의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렸다.ⓒ티빙 제공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2021)의 세계적 성공 이후 불어닥친 K드라마 열풍의 중심에 K학원물이 급부상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의 뒤를 이어 넷플릭스 글로벌 시청 순위 1위를 기록한 〈지금 우리 학교는〉을 선두로, 디즈니 플러스 〈3인칭 복수〉, 웨이브 오리지널 〈약한 영웅 Class 1〉 등이 차례로 주목을 받았다. 3월31일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방과 후 전쟁활동〉은 유서 깊은 국제 드라마 페스티벌 ‘시리즈 마니아’에서 큰 호평을 얻기도 했다.

최근의 K학원물은 KBS ‘〈학교〉 시리즈’로 대표되는 리얼리즘 기반의 정통 학원 드라마와는 성격이 사뭇 다르다. 액션, 호러, 스릴러, 법정, 판타지, SF, 아포칼립스 등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뒤섞고, 다루는 소재 또한 입시, 교우관계, 가정 문제 위주였던 전통 학원물의 화두를 훌쩍 뛰어넘는다. 영화 주간지 〈씨네21〉은 지난해의 시리즈물을 결산한 ‘2022 드라마 경향과 트렌드’ 기획기사에서 “전통적 장르들의 무대가 학원으로 이동하는” 흐름에 주목한 김혜리 기자의 멘트를 인용하며 “드라마 속 학교가 비정한 사회 풍경의 압축판으로 기능하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라고 분석한 바 있다.

이 같은 분석은 K학원물이 K드라마 열풍의 선두에 서게 된 배경에도 시사점을 준다. 〈오징어 게임〉이 글로벌 흥행을 기록할 당시, 수많은 매체는 그 성공 요인의 핵심으로 살풍경한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과 장르적 재미의 조화를 꼽았다. ‘데스 게임’이 벌어지는 외딴섬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축소판 자체였고, 경쟁자를 죽이고 홀로 살아남아야만 막대한 상금을 차지할 수 있는 게임의 규칙은 신자유주의의 승자독식 구조를 은유했다. 전 지구적 이슈이기도 한 사회 모순을 향한 비판적 메시지를 장르물에 유기적으로 녹여낸 이 성공 법칙은 비슷한 시기 세계 영화계를 평정한 영화 〈기생충〉과, 넷플릭스를 통해 K드라마의 존재감을 최초로 알린 〈킹덤〉(2016)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으로, K콘텐츠의 큰 강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K학원물은 이 성공 법칙을 한층 효과적으로 풀어낸다.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은 〈씨네21〉의 분석대로 현대사회의 다양한 병폐를 압축한 공간으로 활용하기에 쉽고, 장르물의 극적 요소를 극대화하기에도 용이하다. 일례로 ‘제2의 〈오징어 게임〉’이라 불린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 바이러스 확산에 따라 고립된 학교를 배경으로 무한경쟁 서바이벌 사회의 잔혹함을 은유하는 한편, 감염된 급우를 처치하고 살아남아야 하는 학생들의 공포와 슬픔의 정서를 강조해 색다른 좀비 재난물을 펼쳐 보였다.

그런가 하면 웨이브의 〈약한 영웅 Class 1〉은 학교폭력 문제를 범죄 액션 스릴러의 문법으로 풀어내며 장르적 쾌감을 이끌어냄과 동시에 재력, 권력 등을 기준으로 서열화된 한국 사회의 폭력 시스템을 비판했다. 비록 학원물은 아니나 넷플릭스 복수극 〈더 글로리〉가 계급사회 한국의 축소판으로서 고등학교를 조명하며 취약계층에 집중되는 혐오와 차별의 폭력을 그려낸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K학원물의 이러한 경향을 한층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사례는 티빙의 〈방과 후 전쟁활동〉이라 할 수 있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인류를 공격하는 괴생명체와의 전쟁에 뛰어든 고등학생들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들은 모두 수능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생으로, 입시 가산점을 위해 징집 명령에 순응한다. 학우들끼리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학교를 말 그대로 전쟁터로 뒤바꾼 이 드라마는 입시 공화국을 효과적으로 풍자한 사회극인 동시에 교복을 입은 앳된 전사들을 통해 전쟁 재난물의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린 오락물이기도 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은 글로벌 시청 순위 1위를 기록했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은 글로벌 시청 순위 1위를 기록했다. ⓒ넷플릭스 제공

학원물의 고어화에 대한 우려

K학원물이 K드라마 열풍에 신선한 에너지를 불어넣는 현상 이면에는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 갈수록 노골화되는 ‘19금화’ 현상이다. 현재 K학원물 전성시대를 이끌고 있는 작품들은 모두 OTT 플랫폼 방영작이다. 상대적으로 검열에서 자유로운 환경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한 사례들이다. 넷플릭스는 국내 최초의 19금 학원물이라는 기록을 세운 〈인간수업〉에 이어 〈지금 우리 학교는〉마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공개했다.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장르물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표현 수위 조절이 정말 불가능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다른 OTT를 통해 잇달아 방영된 〈3인칭 복수〉와 〈약한 영웅 Class 1〉 또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고, 원작 웹툰이 19금이었던 〈방과 후 전쟁활동〉 역시 같은 등급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최근의 K학원물은 청소년이 주인공임에도 청소년이 볼 수 없는 모순적인 장르가 되고 말았다. 청소년들의 성장과 고민이 담긴 무대가 되어야 할 학교가 기성 사회의 축소판으로 그려지는 것을 넘어서, 주 시청층마저 기성세대로 바뀐 것이다. 장르적으로 다양해지고 있지만, 그 속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호러화, 고어화 경향이 더 강해지는 점도 문제적이다. 현실의 지옥도를 반영한다는 미명 아래, 잔혹한 폭력에 휘말린 청소년들의 모습을 스펙터클로 재현하며 장르적 쾌감을 강화하는 데 더 주력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학원물 전성시대에 정작 청소년들이 소외되고 있는 모순을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기자명 김선영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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