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나 홍수, 지진처럼 촌각을 다투는 재난 대피 상황을 떠올릴 때,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똑같은 고민이 앞설 것이다. 나도 자주 상상하고 염려하고 궁리한다. 어떻게 하면 고양이를 데리고 무사히 대피할 수 있을까?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도 힘겨운 재난 앞에서 누군가는 허튼 생각이라 단정할지 모른다. 동물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인간의 역사는 늘 생명에 순서를 매기며 생존해온 과정이었으니까.
줄리언 반스의 소설 〈10과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에 실린 ‘밀항자’ 챕터는 나무좀의 시각에서 다시 쓴 노아의 방주 이야기다. 초대받지 못한 승객이었던 한 마리의 좀은 방주에 몰래 올라타 대홍수 기간 동물들을 학대하고 착취한 노아 가족의 만행을 기록한 비망록을 썼다. 이 재치 있는 외전에서 작가가 그린 방주는 세계의 축소판이 되고, 노아 가족은 어떤 상황에서든 다른 생명 위에 군림하려 하는 인간 종의 대표가 된다. 그리고 그 배제와 차별의 역사에 대한 증언자로 좀이 나선 것이다.
‘방주의 탑승자를 어떤 기준으로 선별할까’ 하는 상상은, 기후위기 시대의 재난영화들에 이르면 보다 심각하고 현실적인 질문거리가 된다. 영화 속에서 인류는 이상기후 또는 행성 충돌 같은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한 현대식 방주로 거대한 우주선이나 잠수함을 설계한다. 그러나 방주가 아무리 커도 모든 인간을 태울 만큼 클 수는 없다. 탑승권은 결국 계급과 재력에 따라 분배된다(간혹 ‘모나리자’ 같은 예술품이 한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냉정한 상상력 덕분에 우리는 인간도 존재 자체로 ‘프리패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 사회가 얼마나 선긋기에 능한 곳인가를 깨닫게 된다. 구분과 차별의 잣대는 종을 나누는 데 그치지 않는다. 동물도 다 같은 동물이 아니듯 사람도 다 같은 사람으로 취급받지 않는다. 도시인의 일상은 노키즈존이나 홈리스가 눕지 못하도록 벤치에 설치한 칸막이 같은 무수한 선긋기 속에서 유지된다. 장애인도 대중교통을 탈 수 있게 해달라는 상식적 요구가 비난받을 때, 비장애인 시민들 앞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진다.
지구라는 배의 탑승객들
지난 4월14일은 기후정의파업의 날이었다. 일상을 멈춘 시민 4000여 명이 세종시에 모여 정부를 규탄하고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저마다 준비한 팻말을 들고 행진하는 광경을 보노라니, 구호의 주인공이 이토록 다양하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거기에는 어린이·노동자·장애인·홈리스·농부·수녀와 승려도 있고, 고양이와 강아지, 소와 닭, 새만금 갯벌의 멸종위기종인 저어새도 있었다. 농장에서 공개 구조된 돼지 ‘새벽이’와 제약회사에서 탈출한 돼지 ‘잔디’의 이름도 눈에 띄었다.
생각해보면, 방주에 누구까지 태울 것인가 하는 질문은 어리석다.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이미 모두가 한 배에 올라타 있다. 지구라는 한 척의 배 말이다. 기후위기라는 공동의 재난 앞에서, 우리 대부분은 선택권을 가진 노아가 아니라 불안에 떨고 있는 동물 쪽에 감정이입하는 편이 훨씬 자연스러울 것이다. 갈아탈 방주는 없다. 그러니 현명한 답을 찾기 위해 애쓰는 수밖에 없다. 이 배가 더 이상 가라앉지 않도록. 함께 무사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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