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4일 경기도 용인시 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저온저장고에서 관계자가 보관 중인 쌀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4월4일 경기도 용인시 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저온저장고에서 관계자가 보관 중인 쌀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양곡관리법(양곡법) 개정안에 대해 쓰지 않으려 했다. 짧은 지면에 담기엔 할 말이 많았다. 그러다 4월5일,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마음을 바꿨다. 국민의힘 민생119특위원장인 조수진 최고위원이 한 말 때문이다. 고맙다고 해야 할지.

대통령이 양곡법 개정안을 거부했다. 농민들을 보호할 방안이 있는지 진행자가 묻자 조 최고위원은 “남아도는 쌀 문제가 굉장히 가슴 아픈 현실이기 때문에” ‘밥 한 공기 다 비우기’에 대해 논의 중이라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여성분들 경우에는 다이어트를 위해서도 밥을 잘 먹지 않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러나 다른 식품과 비교해서는 오히려 칼로리가 낮지 않습니까? 그런 것을 알려 나간다든가 어떤 국민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국민 말고 다른 게 전환되어야 할 것 같은 느낌. 식량 안보의 문제, 헌법에 국가의 의무로 규정한(제123조 4항 ‘가격 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농어민의 이익을 보호한다’) 농민 생존 문제를 밥 좀 더 먹으라는 캠페인으로 해결하겠다니? 여당에서 논의하는 대책의 수준이 곧 문제의식의 수준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개탄스럽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행정부의 고유 권한이다. 하지만 삼권분립을 위해 제한적으로 발휘되어야 하는 견제장치이기도 하다.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요건들을 고려한다면 이번 개정안을 ‘남는 쌀 전량 강제매수법’이라고 부르며 국회 본회의 통과 12일 만에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도, 대안 없이 ‘악법’이라고 외치는 여당도 비판받을 만하다.

해법이 옳은가를 차치하고 정부와 여당이 민주적 숙의를 방해하는 장본인처럼 행동한다는 점을 짚지 않을 수 없다. 개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전량 매수’라는 주장 자체가 틀렸다. 게다가 정부가 양곡법 개정안 반대 단체로 거론한 한국후계농업경영인연합회(한농연)의 전북도 연합회장과 축산농가들도 4월3일 열린 ‘양곡법 공포 촉구 결의대회’에서 정부와 다른 의견을 냈다. 오히려 이 자리에서 농민단체를 갈라놓는 정부의 행태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나만 더 짚자. 농림축산식품부는 양곡법 개정안이 농업인들을 계속 쌀 생산에 머무르게 할 것이라며 우려한다. 지난해 12월, 정부는 식량자급률을 55.5%까지 끌어올리겠다며 ‘중장기 식량안보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기후위기와 전쟁 같은 외부 충격에도 주요 곡물 수급을 안정화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정부의 입장이 뭔가. 쌀농사를 지으라는 건가 말라는 건가.

쌀은 우리의 주곡이다. 손 놓고 있으면 쌀농사는 자연히 절멸의 길을 걷게 된다. 농지 축소와 농가 고령화, 기후위기라는 현실 때문이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19.3%(2020년 기준)로 OECD 중 최하위다. 농촌 총생산 대비 농업보조금 비율도 OECD 평균(10.4%)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4.7%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제 그만 ‘쉬운 반대’가 아니라 ‘어려운 대안’을 내놓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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