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 ⓒ넷플릭스 화면 갈무리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넷플릭스 화면 갈무리

넷플릭스 오리지널 〈나는 신이다〉의 반향이 크다.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총재 정명석을 비롯해 자신을 신이라 칭한 사이비 종교 교주 4명의 범죄 행각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다. 3월15일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TV쇼(비영어) 부문에서 5위에 올랐다. 해당 순위에 국내 드라마는 많았어도 다큐 시리즈가 든 것은 처음이다. 사회적으로 엄청난 공분을 일으켰다. 온라인에는 방송을 보고 JMS를 탈퇴했다는 게시물부터 내부 고발이 빗발쳤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신도 상습 성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명석 총재 사건에 대해 “엄정한 형벌이 선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사회 고발성 다큐멘터리가 크고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례는 이전에도 많았다. 그런데 왜 새삼스러울까? 〈나는 신이다〉를 제작한 건 현직 MBC 시사교양 PD다. MBC에서 기획이 엎어지자 넷플릭스에 직접 제안했다. “(JMS 성폭력 피해자) 메이플을 인터뷰하기까지 40일이 걸렸다. 〈PD 수첩〉으로 만들었다면 아쉽지만 만나지 않겠다고 결정했을 것이다.” 조성현 PD가 3월10일 〈나는 신이다〉 기자간담회에서 밝혔다. 제작에만 2년이 걸렸다. 지상파에서 안 되던 게, 넷플릭스로 가니 ‘터졌다’. 이 사실이 방송가에 적지 않은 파장을 가져왔다.

현직 PD가 넷플릭스에서 거둔 성과에 방송가는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젊은 PD들 사이에선 ‘넷플릭스 진출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반응이 크다. MBC 소속 PD A씨의 말이다. “JMS 문제는 〈그것이 알고 싶다〉나 〈PD 수첩〉 같은 프로그램에서 굉장히 많이 다룬 주제다. 그런데도 지금과 같이 전 사회적인 반향이 있었던가. 방송을 한번 보내고 나면 묻히는 게 대부분이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식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는데, 단 하나의 변수(플랫폼)가 이런 변화를 만든 거라면 그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상파 시사교양 PD B씨는 ‘MBC PD도 넷플릭스로 가니 되더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시사교양 콘텐츠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 지상파 다큐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제작 역량이 없는 건가 의구심이 들었는데, 지상파 PD가 방송이 아닌 넷플릭스에서 성과를 보여줬다. 결국 제작 역량보다는 플랫폼의 문제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넷플릭스와의 협업이 논의되고 있진 않지만, 개별 PD들의 생각이 변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지상파 퍼스트-OTT 세컨드’가 방송계 관행이었다면, 이제는 홈그라운드를 떠나서 제작하려는 시도가 많아질 거라는 관측이다.

물론 현직 PD가 홈그라운드를 벗어난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티빙 오리지널 〈만찢남〉은 MBC PD가, 웨이브 오리지널 〈잠만 자는 사이〉는 SBS PD가 연출했다. 넷플릭스의 〈솔로 지옥〉은 JTBC가 제작했다. 지상파든 케이블이든 OTT든, 시청자만 확보되면 어느 채널에 실리는가는 중요하지 않은 시대다. A PD는 “최근 2~3년간 OTT의 영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OTT 활로를 개척하려는 방송가 시도는 다양했다. 다만 지금의 상황은 콘텐츠가 글로벌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JMS 성폭력 피해자 메이플 씨(오른쪽)가 2022년 3월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JMS 성폭력 피해자 메이플 씨(오른쪽)가 2022년 3월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지상파 PD의 돌파구 될까

〈나는 신이다〉 이전에 〈피지컬:100〉이 있었다. 참가자 100명 가운데 ‘최고의 몸’을 찾는 서바이벌 예능이다. 2월 중순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TV쇼(비영어) 부문 1위에 오른 이 프로그램도 MBC 시사교양국 장호기 PD가 제작했다. 장 PD는 〈PD 수첩〉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같은 탐사 보도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그는 2월7일 기자간담회에서 “잘 만든 프로그램을 갖고 시청자들에게 ‘이리 와서 보세요’라고 하는 것보다 시청자들이 이미 많이 계신 곳에 가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지상파 위기론과 궤를 같이한다.

OTT가 열어젖힌 무한경쟁 구도 안에서 MBC의 성과가 두드러진다. 경영진 차원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성제 전 MBC 사장은 2월24일 〈피지컬:100〉의 성과를 짚으며 “MBC는 지상파 채널을 소유한 글로벌 미디어 그룹이다”라고 말했다. 기존 지상파 중심 운영에서 글로벌 OTT로 타깃을 전환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오랫동안 방송사가 넷플릭스를 경쟁자로 인식했지만 이제 넷플릭스의 영향력을 슬프게도 받아들여야 하는 시점이다.” A PD의 말이다.

쉬운 결단은 아니다. 공영방송의 인력과 인프라를 빼서, MBC에 송출되지도 않을 콘텐츠에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발도 크다. MBC의 시사교양 PD C씨는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넷플릭스가 지식재산권(IP)을 다 가져가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거뒀더라도 손해 보는 게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레귤러하게 편성표를 채워야 하는 회사 입장에서 보면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다. 넷플릭스와의 협업을 적극 권장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두 작품의 흥행을 통해 MBC라는 브랜드 파워를 각인시킨 만큼 MBC가 잃은 것은 없다는 의견도 있다.

개별 PD로서는 넷플릭스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충분한 제작비는 물론이고 원하는 품질을 낼 수 있을 정도로 제작 기간이 넉넉하기 때문이다. 길어봤자 두 달 내로 제작해야 하는 방송 스케줄과 비교하면 차이는 뚜렷하다. A PD는 “방송을 만들 때 항상 ‘시간이 되는 데까지 한다’는 느낌이다. 넷플릭스에서는 방송국 예산의 거의 8~10배를 투자한다. PD 입장에선 호사스러운 경험일 수밖에 없다”라고 전했다. ‘N번방’ 범죄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N번방을 무너뜨려라〉의 경우 제작비로 14억원을 투자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넷플릭스 코리아 관계자는 〈시사IN〉에 “이야기가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들 경우 콘텐츠 제작을 위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을 제작 원칙으로 삼고 있다”라고 밝혔다.

넷플릭스가 지상파 PD의 새로운 돌파구가 된 걸까, 아니면 공영방송사가 OTT 외주 제작사로 전락한 걸까. 평론가들은 수많은 기획서 경쟁을 뚫고 왜 〈나는 신이다〉가 넷플릭스의 선택을 받게 되었는가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범죄 실화 다큐멘터리는 최근 미국에서 크게 흥행한 장르다. 2015년 넷플릭스 실화 다큐멘터리 〈살인자 만들기(Making a Murderer)〉가 하나의 사건으로 꼽힌다. 다큐 공개 이후 40만명 이상이 복역 중인 주인공의 사면을 청원하는 운동을 벌일 정도로 사회적 반향이 컸다. 주인공의 기소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혹이 다큐멘터리에서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넷플릭스도 CNN처럼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이후로 〈비크람:요가 구루의 두 얼굴〉 같은 범죄 고발 다큐가 쏟아졌다.” 넷플릭스 다큐 〈님아: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에 컨설팅 PD로 참여한 김선아 PD의 설명이다. 현재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강력한 여론을 만든다는 점에서 넷플릭스가 일종의 저널리즘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상민 문화평론가는 미국식 범죄 다큐가 “수위가 높고 자극적이기 때문에 화제성이 높으면서도, 실화를 다룬다는 명목하에 제작자나 플랫폼이 윤리적 책임을 면피해왔다”라고 지적한다.

넷플릭스의 한국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도 이 흥행 공식을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김선아 PD는 “컬트, 연쇄살인, 범죄, 케이팝 네 가지 분야다. 휴먼 다큐보다는 시장에서 팔릴 장르를 찾고 있던 와중에 〈나는 신이다〉가 나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넷플릭스의 한국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가운데 〈님아〉와 〈레인코트 킬러:유영철을 추격하다〉의 경우 넷플릭스 본사가, 〈사이버 지옥〉 〈나는 신이다〉는 넷플릭스 코리아가 제작 지원했다. 〈님아〉를 제외한 세 편 모두 실제 범죄를 다룬 다큐다.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컬트, 연쇄살인, 범죄, 케이팝

〈나는 신이다〉의 선정성 논란은 그 틈에서 나왔다. 성폭력 피해 장면이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또 반복적으로 재현됐다. 조성현 PD는 일부 선정적 장면과 묘사에 대해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답했다.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언론이 이 사건을 다뤘는데, 어떻게 이 종교단체는 존재해왔을까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메이플이 지금 한국 방송에 나온 게 처음이 아니다. JTBC 〈뉴스룸〉에 나온 적도 있는데 기억하는 분 있나?” 메이플 씨는 지난해 7월11일 JTBC에서 익명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추가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는 피해 사실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방식이 불가피했다는 이야기다.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피해자의 증언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포르노적’이라는 평가를 듣는다면 그건 피해자의 증언이 포르노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작품이 증언을 그렇게 매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나는 신이다〉에는 노골적으로 극화된 연출이 존재한다. 누구를 영웅과 악당으로 그릴지, 사람들을 어떻게 작품 안으로 끌어들일지 제작자가 의도적으로 플롯을 짰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선정적 재현이 오로지 범죄의 극악함과 분노를 촉발할 뿐, 그 이상의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고 손 평론가는 비판했다.

‘지상파에서는 안 되던 게 넷플릭스라 가능했다’는 성공담은 그래서 질문을 남긴다. 지상파 PD에게 요구돼온 제작 윤리가 표현의 자유와 상반되는 것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OTT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규제를 받지 않는다. 지상파보다 표현의 수위가 자유롭다는 점이 많은 PD들이 꼽는 장점이기도 하다. 손 평론가는 “공중파에서 ‘이 이상은 가면 안 된다’는 기준은 보수적인 결정이지만 한편으론 사회적 합의가 만든 결과이기도 하다. MBC와 넷플릭스가 함께 만든 작품들은 이 선을 쉽게 넘어버렸다”라고 비판했다. 지상파 심의 제도는 방송의 저널리즘적 영향력을 꺾어왔나? 자극적 묘사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프로그램은 ‘좋은 다큐멘터리’인가? 넷플릭스가 지상파의 돌파구가 될 수 있는지 묻기 전에 마주해야 할 질문이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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