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야마 공원 전망대의 풍경. 봄이 오면 벚나무 약 800그루가 만개한다.ⓒ시사IN 주하은
오야마 공원 전망대의 풍경. 봄이 오면 벚나무 약 800그루가 만개한다.ⓒ시사IN 주하은

2023년 3월4일, 규슈올레의 새로운 코스가 개장했다. 규슈관광기구는 사단법인 제주올레와 함께 2012년부터 규슈 지역에 올레길을 만들어왔다. 온천의 명소인 다케오시 일대를 돌아보는 다케오 코스를 시작으로 2022년까지 24개 코스를 개장했다(현재는 17개만 운영 중). 올레길 여행은 관광지만이 아닌 동네 곳곳을 살펴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는 ‘걷기 여행’이 가지는 특징이기도 하다. 교통수단을 이용해 관광지를 방문하는 여행이 ‘점’들로 남는다면, 걷기 여행은 ‘선’과 ‘면’으로 남는다. 관광지와 관광지 사이 숨어 있는 일상의 모습이 보일 때 비로소 그 지역이 통째로 다가온다.

새로 개장한 마쓰우라·후쿠시마 코스는 규슈 북서쪽, 후쿠오카 공항에서 남서쪽으로 60㎞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나가사키현 마쓰우라시 후쿠시마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 코스다(동일본 대지진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현과 이름이 같다). 마쓰우라시는 관광 활성화를 위해 2019년부터 규슈관광기구와 함께 올레길을 유치하려 노력했다. 사단법인 제주올레 관계자들은 이들과 함께 코스를 개발하는 데 참여하며 ‘올레길 인증’을 해줬다.

3월4일 오전 9시, 마쓰우라 시청 후쿠시마 지소 앞 공터가 떠들썩해졌다. 인구가 2300여 명에 불과한 후쿠시마섬에서는 자주 보기 힘든 수준의 인파가 모였다. 올레길을 사랑하는 일본인과 한국인 수백 명이 함께했다. 간단한 코스 개장 행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차례차례 길을 떠났다. 후쿠시마섬에 거주하는 어린이들이 일렬로 서서 손을 흔들며 올레꾼들을 배웅했다.

마쓰우라·후쿠시마 코스의 시작을 알리는 간세(조랑말 모양의 상징물). ⓒ시사IN 주하은
마쓰우라·후쿠시마 코스의 시작을 알리는 간세(조랑말 모양의 상징물). ⓒ시사IN 주하은

여행자들을 먼저 반겨주는 것은 한적한 일본 시골 마을의 풍경이다. 한국 시골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풍경이 이어진다. 주로 2층짜리 일본식 목조 주택 사이 골목길을 지나다 보면 근처 밭에서 무, 배추 따위가 푸릇푸릇하게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이 차면 절경이 되는 도야 다랑이논

대나무와 편백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따라 1시간 정도 걷다 보면 오야마 공원 전망대가 나온다. 멀리 보이는 이로하섬을 필두로 주변에 바둑알처럼 섬들이 펼쳐져 있다. 공원은 꽃나무로 가득하다. 겨울에는 군데군데 심어놓은 동백꽃이 피고, 봄에는 벚꽃이 만발한다. 특히 공원에 있는 왕벚나무·산벚나무 800여 그루가 개화하는 봄이면 다도해의 풍경과 맞물려 절경을 이룬다. 3월에는 밤 벚꽃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야간 조명 행사도 하니 상춘객이라면 기억해둘 만하다.

현재는 폐교된 요겐 초등학교를 지나 전체 코스의 약 4분의 3 지점에 다다르면 나베쿠시 어항이 등장한다. 이곳에선 주민들이 지역 특산품인 마른 멸치를 팔고 있다. 그 옆에 위치한 해변은 마쓰우라·후쿠시마 코스에서 유일한 해안 산책로다. 사람 하나 없는 해안 산책로에 조용히 울려 퍼지는 파도 소리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좋다”라는 감탄이 나온다. 잠수함 모양을 닮아 ‘잠수함 바위’라고 이름 붙여진 바위 앞에서 잠시 쉬어가며 마지막 걸음을 준비하기를 권한다. 남은 1.5㎞ 코스의 난도가 꽤 높기 때문이다.

올레꾼들이 나베쿠시 어항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시사IN 주하은
올레꾼들이 나베쿠시 어항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시사IN 주하은

종점을 향해 가는 길, 밭 사이 좁은 농로와 산길을 걷다 보면 저절로 ‘여기가 길 맞나’라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혼자였으면 결코 걷지 못했을 그런 길, 주민들만이 아는 옛길들을 걸을 수 있는 게 올레길의 매력이기도 하다. 의심이 들수록 규슈올레 화살표 또는 리본을 주의 깊게 찾아야 한다.

그렇게 약 20분 더 걷다 보면 마쓰우라·후쿠시마 코스의 종점이자 하이라이트가 등장한다. 바로 도야 다랑이논이다. 전망대부터 해안가까지 약 400장의 논이 쭉 펼쳐진 다랑이논은 후쿠시마섬이 자랑하는 풍경이다. 4월 중순에서 5월 초순 모내기로 논에 물이 차기 시작하는 시기가 그 절정이다. 서쪽을 향해 계단식으로 펼쳐진 논에 석양이 비추면 다랑이논이 붉은빛으로 타오른다. 매년 9월이면 수확이 끝난 다랑이논 계단에 촛불 3000여 개를 장식한 ‘도야 다랑이논 불축제’가 열린다.

※ 이 취재는 규슈관광기구의 지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기자명 마쓰우라·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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