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즈음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불현듯 음악에 대해 글 쓰는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뮤지션을 꿈꾼 적은 없었다. 기타를 꽤 오래 쳤고 드럼도 취미로 배웠지만, 어디까지나 음악 듣기에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사람들은 음악평론가를 실패한 뮤지션 정도로 단정하는 경향이 있다. 경험에 따르면, 틀린 상상이다. 주변을 살펴봐도 나처럼 음악을 듣고 공부하는 행위에서 기쁨을 느낀다는 이유로 평론가가 된 동료가 압도적으로 많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음악평론가 대부분은 알고 있으니까 믿어주기 바란다. 잡설이 길었다. 이번 주는 나를 키운 8할, 바로 음악 서적을 추천한다. 내가 번역한 〈모던 팝 스토리〉는 양심상 제외했음을 밝힌다. 아, 이미 말해버린 건가.
〈얼트 문화와 록 음악〉, 신현준 외 지음
1990년대에 이보다 더 큰 충격을 준 음악 서적은 단언컨대 없다. ‘록=저항’이라는 낡은 도식을 다양한 비평적 관점을 통해 깨부수고 확장했다는 성취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잊히지 않고 되새김질될 것이다. 이전까지 국내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미국과 (특히) 영국 인디의 흐름을 아카데믹한 깊이로 다뤘다는 점 역시 빼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단점이 없지는 않다. 가끔씩 걸리는 번역투가 그렇다. 그럼에도 비단 나만이 아니라 당시 음악 비평에 관심 있던 모두가 이 책을 읽었다.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었다. 절판되었지만 중고로라도 사서 봐야 할 책이다.
〈대중 음악 사전〉, 로이 셔커 지음
기초 다지기에 최적화된 책이다. 대중음악 관련한 장르 이름, 기술적·문화적 용어 등의 개념 정리를 깔끔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초판은 절판되었고 개정판을 구할 수 있는데 보강된 내용이 많아 더욱 만족스럽다. 책을 통해 한국에서 잘못 이해되고 있는 용어를 바로잡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하드코어가 국내에서 매우 좁은 의미로만 통용되었다는 점, 레이브(rave)가 음악 장르 아닌 문화적 현상이었다는 점 등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강조했듯이 공부하면 더 재미있게 들을 수 있다는 진리를 기억하자. 비단 음악만은 아니다. 대중문화 자체가 그렇다.
〈백 투 더 하우스(Back To The House)〉 이대화 지음
만약 당신이 전자음악과 그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은 교양을 넘어 전공필수다. 엄청난 연구를 바탕으로 전자음악의 30년 역사를 정리한 뒤 논리정연한 문장력으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을 썼다. 이렇게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앞으로 이 책을 능가하는 국내 전자음악 서적은 오직 이 책의 저자인 음악평론가 이대화씨를 통해서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그를 향해 기꺼이 고개 숙여 존경을 표하고픈 마음이다.
〈레트로 마니아〉, 사이먼 레이놀즈 지음
만약 당신이 이 책까지 포함해 네 권 중 딱 한 권만 구입할 계획이라면, 선택은 이 책이다. 모두가 레트로를 숭배하던 2022년 음악계를 이보다 더 정확히 조감하게 해줄 책은 (한글로 번역된 경우에 한해서)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이먼 레이놀즈는 대중음악의 미래에 대해 정말이지 냉정한 진단을 내린다. 뭐랄까. 이런 책에서 내가 감탄하는 부분은 다름 아닌 저자의 ‘용기’다. 스스로 논쟁거리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여기에 더해 입이 쩍 벌어지는 필력 앞에서 나는 그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 책을 워낙 아껴 원서도 구입해 읽어봤는데 번역도 매우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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