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영국 의회 앞에서 임금인상 문제 등으로 파업 중인 로열메일 소속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

2022년은 코로나19 팬데믹의 기세 약화로 세계경제의 회복이 기대되었던 해다. 각국의 방역 규제 해제로 급격히 늘어나는 수요를 공급이 따라잡지 못하면서 인플레이션이 우려되긴 했다. 이는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로 보였다. 그러나 같은 해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낙관주의는 서둘러 자취를 감췄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 유동성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기초 생필품인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며 물가의 가파른 오름세를 부추겼다. 하반기 접어들면서 영국 등 선진 자본주의국들의 인플레이션율(인플레율)은 10% 선으로 질주하는 것으로 보였다. 중앙은행들은 1980년대 초중반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리며 인플레와의 전쟁에 돌입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새해가 밝았다.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들과 경제학자 대부분은 일부 국가나 전 세계가 올해 경기침체(recession)를 겪을 것으로 본다. 이 같은 전망이 어느 정도 강도로 현실화될지는 ‘중앙은행’ ‘중국 경제’ ‘에너지 가격’ ‘지정학’ 등 주요 변수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달렸다.

변수 1. 중앙은행

미국과 유럽은 지난해 말부터 인플레율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물가가 잡혔다’는 것이 아니라 ‘덜 오르는 조짐이 보인다’ 정도의 의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등 중앙은행은 올해에도 금리를 계속 올리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2월 초, 유럽중앙은행(ECB)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도 “우리는 금리인상 기조를 바꾸지 않는다. 우리 입장은 굳건하다”라고 못을 박았다.

중앙은행들의 의지는 매우 확고해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기준 인플레율이 미국은 7.1%(2021년 12월 대비), 유로존은 9.2%다. 중앙은행들의 인플레 목표치는 2% 내외다. 갈 길이 멀다.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미국은 인플레율을 5.1%포인트, 유로존은 7.2%포인트 더 끌어내릴 때까지 금리를 올려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3년 미국과 유럽의 경제성장률이 역사적 평균 이하인 0.5% 정도에 머물 것으로 본 가장 큰 이유는, 금리인상이다.

그러나 올해 경기침체 국면에서 중앙은행들이 자신의 의지를 순조롭게 관철시킬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중앙은행의 금리 조절 기능 자체가 정치적 이슈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중앙은행들은 ‘정부와 민간의 단기적 이익’으로부터 독립된 기관을 지향해왔다. 국가경제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데이터(경제지표)에만 기반해서 금리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은행가들은 ‘주가와 고용률이 떨어지니 금리를 내려달라’ 따위의 외부 압박에 흔들리고 싶지 않다. 중앙은행들은 지난 20~30년 동안 지극한 행복을 누렸다. 인플레율이 대체로 낮았고 심지어 마이너스(물가하락)로까지 내려갔다. 중앙은행은 돈을 풀어(금리인하) 인플레율을 높여야 했다. 이에 따라 경기가 부양되면, 해당 시기 정부와 민간 경제주체들은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2023년의 중앙은행들은 정부와 민간에 맞서 금리를 올려야 하는 운명이다.

지난해 12월 독일에서 열린 통화정책회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 ⓒEPA

사실 정부 입장에서는 경기침체기엔 오히려 지출을 늘려야 한다. 전쟁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보조금을 지급할 필요가 있다. 국가경제의 장기적 발전을 위한 프로젝트에도 돈이 필요하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말, 산업구조 재편과 기후위기 대처 등 국가전략 차원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1조7000억 달러 규모의 예산안을 통과시켜 놓은 상태다. 문제는 정부지출이 민간의 수요를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중앙은행의 의도(민간 수요를 압박해 인플레 하락)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정부지출이 인플레를, 인플레가 다시 금리인상의 필요성을 더 강화하는 악순환이 현실화될 수 있다. 더욱이 중앙은행들은 민간 경제주체들에게 ‘실질소득 감소를 순순히 받아들이라’고 설득해야 한다. 시민들이 ‘너무 많이’ 고용되어 임금을 올리기 때문에 인플레가 나타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플레 저지가 지상 목표인 중앙은행들은 올해 정부지출 삭감, 세율 인상, 실업률 상승, 임금인상 중단 등이 실현되기 바란다. 모두 민감한 정치적 이슈다. 시민들에게는 하늘 저편의 구름 너머 어딘가 있는 것처럼 보였던 중앙은행이 이제 정치적 격돌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런던 시티대학의 스티브 시퍼스 교수는 온라인 매체 ‘더 컨버세이션’ 기고문(1월3일)에서 “정부와 중앙은행은 인플레를 길들이는 동시에 경제성장에도 타격을 가하지 않는 방법을 찾으려 시도하는 과정에서 ‘가보지 못한 길로’ 빠지게 될 것”이라며 이렇게 우려했다. “(인플레가 어디까지 갈지 매우 불확실한 상황에서 정책 혼선이 일어나면) 1970년대 스타일의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와 물가인상 동시 발생)이 현실화할 수 있다.”

1월3일 상하이 인구의 70%가 코로나19에 감염됐을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위는 상하이의 한 병원. ⓒAFP PHOTO

변수 2. 중국 경제

중국 시진핑 정부는 1월8일, 코로나19에 대한 ‘A급 감염병 예방 및 통제 조치’를 해제했다. 국경을 다시 연 것이다. 이미 지난해 12월 초에 중국 내 방역 규제를 크게 완화한 바 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늦은 편이지만 ‘제로 코로나’에서 ‘위드 코로나’로 넘어왔다.

‘제로 코로나’는 기괴하리만치 강력한 방역 규제였다. 상하이 같은 수천만 인구 규모의 대도시 전체를 식량 대책도 제대로 세워놓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봉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중국의 2022년 경제성장률은 2%를 약간 웃돈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대 중반부터 2019년까지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6~7%에 달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모두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을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규모 기준으로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의 경제활동 재개는 반가운 뉴스다. 어쩌면 중국은 2023년 글로벌 경제 성장의 거의 유일한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이코노미스트〉(1월5일)에 따르면, 중국은 글로벌 석유 수요의 5분의 1, 구리·니켈·아연의 절반 이상, 철광석의 5분의 3 이상을 점유해왔다. 브라질 같은 원자재 수출국은 큰 혜택을 입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 경제의 재개가 글로벌 경제에 의외의 큰 충격을 줄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이 ‘위드 코로나’를 버텨나갈 수 있는지가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백신접종률이 낮고 약품이나 설비 등 의료 인프라가 부족하다. 확진자에 대한 대응 노하우도 미숙하다는 평가다. 공산당 정부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 무료로 제공한다는 백신도 받지 않는다. 〈이코노미스트〉는 자체 모델링으로 산정한 결과에 따라, “중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억제되지 못할 경우, 앞으로 몇 달 동안 중국인 150만여 명이 사망할 수 있다”라고 보도했다. 이미 인구 1억명에 가까운 허난성의 주민 중 약 90%, 베이징(인구 2200만명), 상하이(인구 2500만명) 등의 70~80%가 감염되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와중에 새로운 코로나 변종이 출현할 수 있으므로, 다른 국가들은 중국인의 입국을 규제한다. 가뜩이나 취약한 글로벌 공급망이 다시 망가지고, 이는 새로운 인플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중국 경제는 최소한 2023년 1분기엔 성장은커녕 오히려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경제가 급속히 회복된다고 해도 행복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수요가 다시 늘어나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리며 글로벌 인플레를 가속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물가가 오르면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은 통화 긴축을 더 강도 높게 오랫동안 유지해야 할지도 모른다.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중국공산당 정부의 대내외적 신뢰 하락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정부가 가혹한 방식으로 제로 코로나 정책을 강행하다가 적절한 사전 준비 없이 폐기하는” 오락가락 행태를 보이면서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의 신뢰 하락은, 이 나라 경제시스템의 핵심축 가운데 하나가 공산당이란 점을 감안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험 요소다. 부동산 거품, 지방정부의 과도한 부채 등이 공산당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지탱되어온 측면도 있다. 만약 중국 내에서 이런 거품들이 터진다면 그것은 즉각 세계경제 차원의 위기로 전이될 것이다.

변수 3. 에너지 가격

에너지는 생활필수품으로 물가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면 물가지수들이 전반적으로 오른다. 다른 산업 생산품들에 대한 수요가 떨어지면서 경기침체를 유발하기도 한다. 더욱이 이 부문의 가격 변동성은 매우 높다.

지난해 초, 배럴(브렌트 원유)당 80달러로 시작한 원유 가격이 3월과 6월엔 120달러를 넘겼다. 1월9일 현재는 다시 80달러로 돌아왔다. 천연가스 가격은 더욱 변화무쌍하다. 지난해 1월 초에는 MMBtu(천연가스 부피 단위)당 3.9달러 수준이었는데 5월과 9월엔 9달러 내외까지 두 배 넘게 튀어 오르더니 1월9일 현재는 3.71달러까지 내려갔다(〈마켓인사이더〉 참조).

지난해 봄과 가을에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결정적 이유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다. 서방 선진국들의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와 러시아 측의 반격, 이런 정세를 틈탄 금융 투기 등으로 에너지 가격이 치솟았다. 특히 유럽은 난방, 전기 생산, 기업 운영 등에 필요한 천연가스 가운데 40~50%를 러시아에서 수입해왔기 때문에 우려가 컸다. 유럽이 이번 겨울(2022년 말~2023년 초)을 비교적 잘 넘기고 있는 이유는, ‘적극적 천연가스 비축’ ‘자발적인 가스 소비 감축 캠페인의 성공’ 그리고 평년보다 따뜻한 겨울 기온 덕분이다. 국제기구와 전문가들은 대체로 유럽이 비교적 충분한 천연가스 저장고 덕분에 올해 봄까지는 성공적으로 천연가스 가격, 나아가 인플레율까지 억제할 수 있으리라 본다.

그 이후가 문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는 만큼 에너지 공급 전망 역시 불투명해진다. 지난해 12월12일, OECD 차원의 정부 간 기구인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파티 비롤 대표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유럽의 2023년 에너지 수급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그들에 따르면, “유럽은 2023년에 270억㎥에 이르는 천연가스 부족에 직면할 수 있다”. 유럽 연간 천연가스 소비량의 거의 7%에 달하는 규모다. IEA는 올해 에너지 부족이 현실화할 수 있는 세 가지 위험을 보고서에 다음과 같이 적시했다.

첫 번째, 러시아가(2022년에는 EU에 600억㎥ 규모의 가스 공급) 전황에 따라 EU에 가스 공급을 완전히 중단할 수 있다. 두 번째, 올 연초와 연말에 추위가 닥쳐 가스 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 세 번째, 중국 경제의 재가동으로 천연가스 수요가 폭증하면서 가격이 크게 오를 수 있다.

만약 천연가스 부족이 현실화하면 유럽에서는 천연가스 배급제 시행이 불가피해지고, 이는 글로벌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가할 것이다. IEA는 에너지 효율 개선, 재생에너지 채택 촉진, 친환경 난방기구인 히트펌프 보급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여기에는 1000억 유로 정도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2월28일 러시아 군의 포격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우크라이나 바흐무트 일대. ⓒAP Photo

변수 4. 지정학

이 밖에도 올해 글로벌 경제에 영향을 미칠 여러 변수가 있다. 저명한 경제 전문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은, 홍콩에서 발행되는 〈아시아타임스〉(1월4일) 기고문에서 “이제 아시아는 달러 하락에 대비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지난해에는 달러 강세로 글로벌 자금이 일본 엔화 등 아시아 통화에서 미국 달러로 갈아타는 바람에 아시아 국가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올해 이런 흐름이 정반대로 뒤집히면서 다시 아시아를 덮칠 것이라는 이야기다. 페섹이 달러 약세를 예측하면서 그 이유를, ‘미국의 2023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뒤집힐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데다 정치권의 극단적 분열로 인해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국가적 역량마저 소진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달러가 강세에서 약세로 전환하면 아시아 국가들은 수출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달러 중심의 국제통화체제도 혼란에 빠질 것이다.

지정학적 긴장 역시 글로벌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소로 남아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타이완을 둘러싼 미·중 갈등,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고조된 한반도 긴장 등과 관련된 ‘돌발 사태’가 터진다면, 글로벌 경제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네덜란드의 초국적 금융기관인 ABN암로가 지난해 12월 낸 보고서에서 제시했듯이 “인플레율이 크게 낮아져 2023년 말까지 중앙은행들의 금리인하가 가능해지면서 2024년에 완만한 회복의 발판이 마련되는 것” 정도다. 올 한 해는 글로벌 경제 차원에서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어려운 시기가 될 듯하다.

기자명 이종태 선임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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