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구

열두 살부터 소설을 썼다. 동네마다 도서대여점이 있던 시절이다. 이융희 작가(36)의 어머니가 당시 유행하던 ‘해리 포터’ 시리즈 1권을 사왔다. 나머지를 보기 위해서는 대여점에 가야 했다. 이영도 작가의 〈드래곤 라자〉도 전민희 작가의 〈태양의 탑〉도 있었다. 거기서 판타지 소설을 찾아 읽다가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 캐릭터를 등장시켜 소설을 썼다. 친구들에게 보여주니 재미있다며 돌려 읽었다. 그때부터 쭉 장르문학을 썼고 스무 살이던 2006년 〈마왕성 앞 무기점〉을 출간했다.

2023년 현재, 그는 여전히 창작자이지만 그사이 다른 직함이 많이 생겼다. 처음 주고받은 이메일에서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웹소설 작가이자 웹소설 교육자, 그리고 장르 연구를 하고 있는 이융희입니다.” 지난해부터는 웹소설 에이전시에서 일하기도 한다. 일주일에 3일은 출근한다. 작가들의 작품을 받아서 웹소설 플랫폼에 유통시키고 작가 관리도 하고 있다. 나머지 이틀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거나 대중 강연을 하고 있다. 틈틈이 칼럼을 쓰고 본인의 작품도 연재한다. 그는 “부캐는 많은데 주캐가 없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열두 살 이후 늘 장르문학의 자장 안에 있던 그는 그간의 과정을 ‘인정 투쟁의 역사’라고 요약했다. 장르문학이 오랫동안 ‘비주류’로 인식되어온 역사와 맥락을 같이한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며 시, 소설, 비평 등을 두루 쓰다가 4학년 때 ‘서브컬처’를 다룬 수업을 처음 들었다. 어릴 때부터 가졌던 관심사와 지난 행보에 대해 설명할 언어가 생긴 느낌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해 판타지 소설을 연구했다. 웹소설 붐이 일며 판타지, 무협 등을 접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이 생겼다. 이융희 작가도 2017년부터 웹소설을 썼다. 2018년에는 창작자, 연구자들과 함께 장르 전문 비평팀 ‘텍스트릿’을 만들기도 했다. 창작자 개인의 경험이나 작법에 관한 얘기들은 나오고 있지만 엄밀한 방법론을 통해 지금 나오는 작품과 현상에 어떤 의미와 맥락이 있는지 짚어주는 작업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고 그는 말한다. “인정 투쟁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의미를 이 사회에 선언해야 하는데 동력이 부족해 아등바등하고 있다.” 웹소설 생태계 밖의 제3지대를 고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쁜 와중에도 장르문학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열고 작가들끼리 모일 수 있는 집담회, 웹소설 읽는 연구자 모임을 꾀한다. 이 작가는 직접 작품을 접해보라고 당부한다. 웹소설 혹은 장르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일하고, 쉬운 길이다. “바깥에서 보면 워낙 거대하고 거기서 거기인 것 같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 취향과 맞는 무언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무작정 읽다 보면 재미있는 결과물과 마주할 수도 있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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