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렬 전 오사카 총영사는 “한·일 관계의 토대가 변했고 재조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주오사카 총영사는 ‘영사’이지만 외교가의 주요 보직으로 꼽힌다. 한반도 주변 주요 4국(미국·중국·일본·러시아)의 ‘4강 대사’만큼이나 주오사카 총영사로 누가 선임되는지 눈길이 쏠린다. 국가정보원의 외곽 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22년간 한반도와 주변국 문제를 다룬 조성렬 박사의 주오사카 총영사 발령은 그래서 한·일 양국에서 주목받았다. 〈연합뉴스〉는 “일본 지역 총영사에 전문가가 발탁되는 경우가 최근 늘어나는 분위기”라고 평했고, 일본 〈산케이신문〉은 주오사카 총영사 부임 초 그와 인터뷰를 하며 한·일 관계와 북·일 관계 해법 등을 물었다.

그는 2021년 6월 문재인 정부 후반부터 지난 9월 윤석열 정부 초반까지 주오사카 총영사를 지냈다. 11월 중순까지 외교부 소속 신분을 유지하다 이제 막 ‘자유로워’졌다. 연구자이자 외교 현장을 누비는 고위공직자였던 조성렬 전 주오사카 총영사를 12월5일 〈시사IN〉 편집국에서 만났다. 미·중 경쟁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한국의 전략과 한·일 관계에 대해 물었다.

2022년은 전 세계의 격랑기로 기록될 것 같다.

탈냉전 이후 한때 국가 간 전쟁은 더 이상 없다는 낙관론이 퍼졌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이라고까지 단언했다. 그러나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브레진스키가 2012년 펴낸 저서 〈전략적 비전〉에서 미국이 쇠퇴할 경우 지정학적 위기를 겪을 수 있는 나라 8곳(한국·타이완·조지아·벨라루스·우크라이나·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이스라엘)을 지목했다. 조지아와 아프가니스탄은 이미 전쟁을 치렀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크름반도(크림반도)를 빼앗겼고 올해 2월부터는 러시아 침공에 맞서 싸우는 중이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을 전후해서 타이완을 둘러싼 긴장도 올라갔다. 브레진스키에 따르면, 미국의 쇠퇴 시 한국의 대응 전략은 두 가지다. 중국의 지역 패권을 인정하고 안전을 보장받거나, 가치와 위협 인식을 공유한 일본과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윤석열 정부는 후자를 택했다.

그 선택을 어떻게 봐야 할까?

미·중 대립이 격화되면서 ‘안미경중(安美經中:한국의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시간이 끝나가는 건 맞다. 중국이 미국 GDP의 80%까지 따라갔다. 완전히 관계가 뒤집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이만큼의 관계 역전이 주는 ‘현상 변경’이 크다. 미국과 경쟁했던 과거 소련·일본과, 현재의 중국은 다르다. 기본적으로 변화된 국제 정세에서 판을 짜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한·일 관계의 토대가 변했고 재조정이 필요하기도 하다.

어떤 의미인가?

한국과 일본의 상황이 과거와 다르다. 한국과 일본의 군사비가 올해 말 정도면 역전된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군사력 평가기관 ‘글로벌파이어파워(GFP)’에 따르면, 군사력으로 한국이 6위, 일본이 5위다. 구매력평가지수(PPP) 기반의 GDP는 2018년에 이미 한국이 일본을 앞질렀다. 한국의 1인당 명목GDP가 올해 안에 일본을 추월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한·일 관계 재설정에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하지만 우리는 국제 교역·북한 비핵화 등의 측면에서 여전히 중국과 협력이 필요하다. 협력할 건 협력하면 된다. 장기적 리스크(중국 지역 패권화)에 대비하기 위해 단기·중기적 이익(국제 교역·북한 비핵화 협력)을 포기하는 건 단견이다. 기본적으로 미·중 간 경쟁 양상은 장기전이다. 직면한 현실과 실현되지 않은 장기적 리스크를 잘 구분해야 한다.

일본은 인도·태평양(인태) 전략을 내세우는데.

미국의 발을 잡은 거다. 미국이 쇠퇴해도 이 지역에서 쉽게 나갈 수 없게 하려는 의도다.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미·일 동맹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2007년 ‘안보 다이아몬드 구상’이 2013년 ‘인태 전략’으로 나왔고 2017년 미국이 받아들였다. 이후 미국·오스트레일리아·인도·일본이 참여하는 쿼드(Quad)를 통해 일본은 타이완을 포함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해상교통로 안전을 확보하고자 했다. 하지만 일본 경제계 및 정치권 일부에서도 너무 중국과 세게 대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일본은 한국에 버금가는 대중국 교역국이다(한국 교역량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5%, 일본 교역량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3.9%). 2016년까지 일본은 대중국 무역적자였는데 요즘은 흑자다. 또한 기시다 총리는 올해 1월 시정연설에서 ‘신시대 리얼리즘 외교’를 내세웠다. 아시아 협력을 주장한다. 한·일 외교와 중·일 외교에서 대화와 협력을 강조한다. 가치 외교를 말하면서도 실리를 추구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미국 엑손모빌과 영국 셸은 러시아 사할린 석유 및 천연가스 개발 철수를 발표했다. 대러시아 제재에 참여한 것이다. 일본은 아니었다. 에너지 안보상의 이유로 계속 남았다.

한·미·일 3국 군사훈련이 재개되었다.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중국의 부상에 따른 중장기적 리스크 관리 차원이나, 북한의 당면한 위협에 조심스럽게 대응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비례성의 원칙이 필요하다. 북한 도발 수위에 맞춘 대응 형태가 되어야 한다. 그걸 넘는 모양이 되면, 거꾸로 북한이 거기 또 대응하며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현재 한·일 간 가장 뜨거운 이슈는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이다.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너무 서두르는 것 같다. 법원의 일본 기업들에 대한 현금화 압수가 임박하기 전에 해결해야 하고, 내년 5월을 넘어가면 2024년 4월로 예정된 총선 스케줄 등으로 어렵다고 보는 것 같다. 일본 쪽 판단도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결론을 정하고 거기에 맞춰가다 보면, 국민적 동의를 제대로 얻지 못한다. 윤석열 정부에 조언하는 학자들도 그 부분을 굉장히 불안해하는 것 같다. 너무 공론화가 안 된 상태에서 진행하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

한국과 일본이 잘 지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정치외교적 의미다. 그 외 이제 문화·경제적 부분은 사실 우리가 특별히 일본에 매달릴 이유는 없다. 특히 군사적으로도 정부는 일본이 필요하다지만 사실 안보·군사적으로도 일본의 필요성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한동안 일본의 정보 자산이 한국보다 우위에 있다고 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군사 정찰·통신 위성 등을 계속 쏘아 올려서 충분히 확보했다. 오히려 대북 정보는 북한과 거리가 떨어져 있는 일본보다 우리가 더 많고 정확하다. 우리가 일본에 줄 도움이 더 많을 수 있다. 다만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전시 미군의 증원이나 후방 물자 공급이 중요하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일본의 지원이 필요하기에 협력 시스템을 갖출 필요성은 있다.

어떻게 한·일 관계를 개선해야 할까?

지금이 좋은 때다. 신장된 우리 국력을 바탕으로 일본과 대등한 협력이 필요하다. ‘중국의 부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한·일은 가치와 공동 위협 인식이라는 차원에서 협력의 필요성이 있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이 식민지 지배를 합법이라고 하거나, 한국이 원해서 합병한 것처럼 얘기하면 한·일 관계 개선은 어렵다. 과거사에 대한 훼손할 수 없는 원칙은 확고하게 하며, 중장기 전략을 짜야 한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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