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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20일 백악관 기자회견은 ‘닥터 파우치’를 언급할 때 자주 등장하는 일화이다.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코로나19에도 효과가 있다며 근거 없는 찬사를 퍼트리고 다녔다. 그날 브리핑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말라리아 약이)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 앤서니 파우치(82)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 소장은 대통령을 바로 옆에 두고 이렇게 발언했다. “제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말라리아 약은 (코로나19 치료제로) 제대로 된 임상시험을 하지 않았습니다.”

비과학적 선동을 일삼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맞서 할 말은 하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는 파우치 소장은 코로나19 대응의 얼굴로 떠올랐다. 파우치 칵테일, 파우치 머핀, 파우치 양말이 출시됐다. 달러에 새겨져 있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In God We Trust)’라는 문구를 패러디해 ‘우리는 파우치를 믿는다(In Fauci We Trust)’라고 쓰인 티셔츠도 등장했다. 반면 그는 트럼프 지지자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다.

1968년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에 들어간 파우치는 44세이던 1984년 소장으로 취임한다. 이후 38년간 에이즈, 사스, 지카, 신종플루, 에볼라 그리고 코로나19까지 작게는 미국을, 크게는 전 세계를 뒤흔든 감염병 위기마다 선두에 섰다. 그사이 공화당의 레이건부터 민주당의 바이든까지 대통령 7명을 보좌했다. 보건의료 정책을 취재하는 〈뉴욕타임스〉의 셰릴 게이 스톨버그 기자는 “워싱턴에서 과학과 정치의 연결고리를 탐색하는 마스터”라고 파우치 소장을 평가했다.

의사로서, 연구자로서, 공직자로서 파우치 소장에게 에이즈는 코로나19 못지않게 큰 이름일 것이다. 에이즈 유행이 고개를 쳐들던 1980년대, 그는 에이즈 전파와 관련해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감염자들에 대한 편견을 깨는 일에 앞장섰다. 당시 에이즈 인권단체는 미국 정부가 발 빠르게 치료제 개발에 나서지 않는다고 거센 항의를 퍼부었다. 비난의 화살은 파우치 소장에게 쏠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활동가들은 점차 그에게 신뢰를 보냈다. 한 활동가는 〈뉴욕타임스〉와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국립보건원 건물 앞에서 그의 피 묻은 머리 모형을 막대에 꽂고 행진을 했다. 그는 여전히 우리에게 문을 닫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괜찮은 인간을 만난 적이 없다.”

지난 8월 파우치 소장은 12월에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 소장직을 마치겠다고 밝혔다. “다음 챕터를 위해서”를 사임 이유로 들었다. 고액 연봉을 제시하는 제약사도 있겠지만 닥터 파우치의 ‘다음 챕터’는 여행, 글쓰기, 젊은이들의 공직 진출을 장려하는 활동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프랜시스 콜린스 전 국립보건원장은 “내가 아는 가장 헌신적인 공무원”이라고 파우치 소장을 일컬었다. 파우치 소장은 본인을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저명하고 겸손한 공직자가 곧 54년 공직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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