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0일 경기도의료원 포천병원의 외래접수 창구가 한산하다. ⓒ시사IN 이명익

코로나19 대응의 첫머리부터 공공병원이 있었다. 2020년 1월20일 국내 코로나19 첫 번째 확진자는 인천의료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 무렵 중국 우한에서 한국으로 이송된 교민들을 검사하고, 의심 환자들을 선별하는 일에는 국립중앙의료원 의료진이 투입되었다. 2020년 3월부터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의료기관 중 절대다수가 지방의료원이었다(〈그림 1〉 참조).

한국은 전체 의료기관 대비 공공병원 수가 5%에 그칠 정도로 공공병원 비중이 적은 나라다. 그러나 팬데믹 기간 공공병원의 역할은 규모를 훌쩍 뛰어넘었다. 코로나19 환자 대다수가 이곳을 거쳐갔고, 많은 국민의 머릿속에 공공병원이라는 존재가 각인되었다. 올해 초 시작된 오미크론 유행으로 코로나19 입원 환자가 줄어들며 5월을 기점으로 대부분의 공공병원이 전담병원에서 해제되었다. 그로부터 5개월, 코로나19 환자를 봤던 공공병원이 도산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지난 10월20일에 찾은 경기도의료원 포천병원은 정상 운영을 알리는 문구와 코로나19 전담병원 당시의 흔적이 혼재돼 있었다. 병원 건물 옆 장례식장에 붙어 있는 ‘10월5일 운영 재개’라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포천병원은 2020년 2월 가장 먼저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되었던 공공병원 가운데 한 곳이다. 2년 넘는 기간에 장례식장 같은 부대시설은 물론이고 여타의 진료 기능을 거의 중단한 채, 코로나19 의료 대응에 매진했다. 142병상 규모의 병원에서 코로나19 환자가 가장 많을 때는 109명까지 입원했다. 코로나19 환자를 보기 위해서는 음압기 같은 설비를 추가하고 평소와 달리 동선 분리를 해야 했기에 원래 있던 직원 공간까지 허물며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했다.

올해 5월 전담병원에서 해제된 이후 포천병원 상황을 묻는 기자에게 백남순 원장은 긴 말 대신 진료수익 내역을 보여주었다.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기 직전인 2019년 12월 포천병원의 한 달 수익은 21억5500여만 원, 2020년 1월 수익은 21억4300여만 원이었다. 반면 2022년 9월 진료수익 총액란에 찍힌 숫자는 6억2900여만 원이었다.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수익이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저희가 지방의료원으로 분만, 응급센터 등 필수 의료를 제공하며 생기는 만성적인 적자가 있어서 2019년 한 해 동안 경기도에서 지원받은 액수가 30억원이었다. 지금은 매달 15억원씩 적자가 난다. 오늘이 월급날인데 원래대로면 이번 달부터 임금 체불이 될 뻔했다. 9월30일에 정부가 약속한 6개월 회복기 손실보상금이 처음으로 나왔다. 8억9000만원을 받았다. 급여는 겨우 충당했지만 현재 적자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액수다. 약제비·관리비·전기료 등은 월말에 펑크가 날 예정이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2월 기준 포천병원의 하루 외래환자 수는 600~800명이었다. 입원 실적을 가리키는 지표인 병상 가동률은 꾸준히 90%를 웃돌았다. 주중에 수술을 받는 환자들은 보통 월요일에 입원하기 때문에 월요일이면 20명씩 입원 대기가 걸려 있었다. 경기 북부는 의료 취약지역으로 분류된다. 경기도의료원 포천병원은 오랫동안 포천시에 있는 유일한 종합병원이었다. 지금도 20~30분 거리에 민간병원이 하나 더 있을 뿐이다. 긴 시간 이 지역 주민들이 애정을 가지고 이용해온 병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2년간 코로나19 이외의 진료가 멈춰 섰던 포천병원에 환자들의 발길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고 있다. 5월 전담병원 지정 해제 당시 0명이던 외래환자 수는 하루 300명 수준까지는 빠르게 회복되었지만 이후 정체 상태다. 백남순 원장은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 관계가 깨진 탓”이라고 말했다. “환자와 의사 사이에서도 관계가 중요하다. 포천병원이 문을 닫은 2년 반 사이 많은 환자들이 다른 병원을 다녔을 것이다. 병원을 옮기면 신뢰 관계를 다시 쌓아야 하고 그동안 해온 치료와 증상을 처음부터 다 설명해야 한다. ‘우리 다시 문 열었습니다’ 한다고 곧바로 돌아오지 않는다.” 여전히 포천병원에서는 코로나19 환자만 받는 줄 아는 지역 주민도 적지 않다. 포천에 있는 14개 면사무소마다 현수막도 걸고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과거로 돌아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병상 가동률 원상복구까지 4.3년

이는 포천병원만이 처한 상황이 아니다. 국립중앙의료원 집계에 따르면 지방의료원의 병상 가동률은 8월 40.6%에 그쳤다(〈그림 2〉 참조).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공공병원들의 수술 건수는 2019년과 비교해 평균 약 44% 감소했다. 지방의료원이 2019년 병상 가동률까지 복구되는 데에는 4.3년(52개월)이 걸릴 것으로 국립중앙의료원은 추산한다.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보건복지부)는 전담병원으로 지정돼 코로나19 병상을 제공하는 병원에 손실보상금을 지급했다. 유행 초기 주로 공공병원을 동원할 때에는 그 금액이 크지 않았다. 2020년 3차 유행을 겪으며 공공병원만으로는 한계에 다다르자 민간병원까지 급하게 병상을 확대하며 손실보상금의 액수가 대폭 올랐다. 코로나19 환자를 받은 병상은 평균 소요 비용의 2배를 받았고, 환자를 받기 위해 비워둔 병상도 보상금이 지급됐다. 이 기간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공공병원들은 흑자를 기록했다. 그때 적립해둔 돈으로 전담병원 해제 이후 적자를 메우는 곳들도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주영수 원장은 “일종의 마약 같은 효과”였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 공공병원에 수익을 안겨줬지만 그동안 병원으로서의 기능이 크게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정부 지시에 따른 것이지만, 감염병 전담병원으로서 오로지 코로나19 진료만 남겨두니 다른 진료 과목의 의사들이 하나둘 공공병원을 떠났다. 특히 수술을 하는 외과계 전문의들의 유출이 두드러진다.

주영수 원장은 의사 한 명이 빠지면 그 타격이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낮에 진료하고 밤에 긴급한 수술을 하면서 외과를 유지하려면 못해도 의사가 3명은 있어야 한다. 공공병원은 가뜩이나 적은 인원으로 겨우 틀을 유지하고 있는데 한 명이 나가면 그 진료과 자체가 무너져버린다. 조사를 해보면 필수 진료과 개설 비율이 코로나 이전에 비해 5%가량 낮아졌다.” 빈자리에 새 사람을 뽑는 것도 쉽지 않다. 의사 인건비가 지속적으로 올라 지방의료원에서는 연봉 3억원을 제시해도 오려는 의사를 찾기 힘들다.

10월25일 서울 국립중앙의료원 코로나19 중환자 병실의 모습. ⓒ김흥구

공공병원 간호사들에게도 어떤 의미에서는 잃어버린 2년이었다. 감염 환자와 직접 접촉하며 최전선에서 코로나19에 대응했지만 간호 업무 자체로 보자면 비슷한 처치를 2년 넘게 반복해온 셈이다. 여러 검사나 시술, 수술 보조, 드레싱 등 다양한 간호 업무를 접하고 익힐 기회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병동에서 수간호사로 근무했던 국립중앙의료원 송민정 외래특수간호팀장은 “일반병동으로 전환 후 현장을 떠나야 할 것 같다고 상담하는 신규 간호사들이 계속 나온다. 연차 낮은 간호사들은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고, 선배 간호사들은 후배들의 서툰 부분을 채워야 하니 업무 부담이 커졌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환자 수가 개선되지 않는데 병원의 진료 기능이나 조직문화는 손상을 입었다. 그사이 의사 몸값은 껑충 뛰어 기존 의사들을 붙잡아두려고만 해도 인건비 총액은 더 불어난다.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인천의료원 조승연 원장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코로나19 유행을 거치면서 공공병원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고 그는 말했다. “영웅이네 어쩌네, 추켜세워주다가 막상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정부와 지자체에서) 돈 벌어라 하는 일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고 있다. 2015년 메르스 때도 그랬다.”

‘병실 렌트 사업’ 뛰어든 민간병원

중수본은 코로나19 이후 올해 6월까지 코로나19 병상을 내놓은 의료기관에 7조140억원을 지급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여러 공공의료 전문가들은 손실보상금의 절반 이상이 민간병원에 돌아갔을 것으로 봤다. 보건복지부는 민간 의료기관과 공공병원에 각각 지급된 손실보상금 규모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 과정에서 몇몇 민간병원은 꽤 큰 이윤을 챙겼다. “거점 전담병원으로 뛰어든 민간병원 중에는 사실상 ‘병실 렌트 사업’을 한 곳들이 있다. 코로나19 병상에 환자만 눕혀두면 돈을 받지 않나. 비워둬도 보상을 받는다. 그러면서 의료 인력은 정부나 학회에서 파견해줬다. 손대지 않고 코를 푼 격이다. 그 돈이 공공병원으로 왔으면 시민들에게 돌아가는 투자가 되는 건데 그런 민간병원으로 흘러가면 병원장 주머니로 다 들어간다.”

중수본은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되었던 공공병원에 ‘회복기 손실보상금’을 약속했다. 전담병원에서 해제된 이후 정상화까지 시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해 코로나19 유행 이전 매출과 비교해 차액을 보전해주는 형태이다. 조건에 따라 최대 6개월 동안 회복기 손실보상금이 지급된다. 올해 9월 일부 공공병원에 회복기 손실보상금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포천병원 사례에서 보듯 보상금이 실제 피해액과 괴리가 큰 데다, 팬데믹 기간 피해가 집중된 공공병원들에서는 적자를 해소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액수이다.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임승관 원장은 코로나19 환자를 봤던 공공병원이라도 사정이 모두 동일하지 않다고 말했다. “병원마다 회복탄력성이 다르다. 2020년 유행이 시작된 직후에 전담병원으로 지정돼 올해 5월까지 코로나19 환자만 봤던 병원들은 정상화가 더 까다롭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코로나19 환자가 많았던 수도권 지역의 공공병원들이 주로 이런 문제를 겪고 있다.” 전담병원으로 동원된 기간이 짧고, 코로나19 이외의 진료 기능들도 유지했던 공공병원들은 비교적 회복탄력성이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5월 포천병원은 1년6개월 만에 산부인과 분만실을 열었다. 여러 나라의 언어로 쓰여 있다. ⓒ시사IN 이명익

이대로라면 경기도의료원 소속 6개 병원 가운데 5곳은 올해부터 내년까지 순차적으로 임금 체불 위기에 처하게 된다. 서울 소재 공공병원 중에서 코로나19 유행 초기부터 병원 전체를 비웠던 전담병원들도 비슷한 상황으로 전해진다. 임승관 원장은 “정치적인 타결이 필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경기도의료원 소속 병원들은 현재 적자가 매출의 50% 수준이다. 6개월 동안 나오는 손실보상금은 피해 규모에 비하면 ‘언 발에 오줌 누기’ 정도이다. 지금의 위기는 병원이 자초한 것이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에 책임이 있으니 우선 예전 수준으로 돌아갈 때까지는 공공병원을 지원해줘야 한다. 그렇게 기초체력을 회복한 뒤에는 공공병원도 경영개선 등 쇄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난 5월 전담병원에서 해제되고 포천병원은 1년6개월 만에 산부인과 분만실을 열었다.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되었어도 분만실 기능만은 유지해보려 했지만 2020년 말 3차 유행으로 코로나19 환자가 크게 늘어나며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민간병원에서 아기를 출산하려면 200만원에 가까운 병원비가 든다. 수도권 지역 공공병원에서 분만을 하는 곳이 드물어 안산에 사는 임산부가 포천까지 오기도 한다. 코로나19 이전 포천병원의 한 해 적자 30억원 가운데 9억원이 분만실에서 발생했다. 수익을 남기고 돈벌이를 하자면 분만실은 폐쇄하는 게 맞다.

백남순 원장은 최근 포천병원 검진센터를 찾은 한 할머니 얘기를 했다. 할머니는 2년 동안 의정부의 큰 병원에서 검진받으러 오라고 문자를 계속 보냈는데도 그곳에 가지 않고 포천병원이 다시 문 열기를 기다렸다고 했다. 백남순 원장은 포천병원과 지역 주민들 사이에는 일종의 의리가 형성돼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병원은 코로나19 이전에 많은 환자들이 찾았고, 지역에 꼭 필요한 병원이다. 2년 반을 동원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회복 기간을 줘야 하지 않나. 시간만 주어진다면 예전으로 되돌릴 자신이 있다. 이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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