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구

짝다리를 짚는다. 손을 주머니에 넣고 얼굴은 찌푸린다. 말은 길게 하지 않는다. 애써 웃지만 굳은 표정은 풀리지 않는다. 3대 미제사건으로 불렸던 이춘재 연쇄살인 중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옥살이를 했던 윤성여씨(55)는 늘 그렇게 카메라 앞에 섰다.

두 다리로 멀쩡히 서본 기억이 없다. 어린 시절 열병을 심하게 앓았고 그 뒤로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해졌다. 주머니에 넣은 손은 허벅지를 잡고 있다. 조금만 오래 서 있어도 다리가 풀려버린다. 주저앉지 않도록 꼭 붙들어야 한다. 그래서 바지 주머니는 금방 구멍이 난다. 구멍이 나야 허벅지를 붙잡기 편하니 그 바지를 계속 입는다. 힘들다는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다. 그 말을 했다가 일터에서 쫓겨났고 얻어맞았으며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다. 늘 보이지 않게 다리를 붙들고 살아왔다.

아침이면 회사에 출근하고 퇴근하면 혼자 밥을 지어 먹는다. 노트북으로 유튜브나 영화를 보다가 잠든다. 주말엔 성당에 다녀오고 하루 종일 쉰다. 2009년 출소해 다시 세상에 나온 이후 하루, 일주일, 한 달, 1년을 이렇게만 보내왔다. 되돌릴 수 없는 현실, 영원히 이름 앞에 새겨질 유죄의 흔적을 단조롭지만 욕심 없는 일상으로 덮었다. 변화는 반갑지 않았다. 한 걸음 내딛는 것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무사히 하루를 보내는 게 더 중요했다. 그는 출소 후 새로 얻은 삶이 망가질까 봐 그렇게 수많은 오늘을 꼭 붙들고 살아왔다.

3년 전, 스스로 발을 내디뎠다. 이춘재가 뒤늦게 자백했다. 진범이 나타났으니 다시 재판(재심)을 한다고 했다. 다리를 붙들고 한 번도 빠짐없이 재판에 나갔다. 자신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고 싶었다. 누가, 어떻게, 왜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는지 묻고 싶었다.

재심 재판 과정에서 하얗게 질렸던 윤성여씨의 얼굴을 기억한다. 1989년 스물한 살이 된 해 그를 경찰서로 끌고 갔던 경찰관들이 증인으로 나온 날이었다. 점심도 먹지 못한 그는 재판 직전 다리를 절며 화장실로 들어가 구토를 했다. 그래도 증인신문 내내 그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2019년 이춘재의 자백과 2020년 재심 재판, 2022년 11월16일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재판 선고까지 윤성여씨가 보낸 3년은 30년간 잔인하게 엉켜 있던 실타래를 푸는 시간이었다.

최근 수개월 사이 윤성여씨는 기자에게 자주 전화를 걸어왔다. 종종 안부를 묻고 지내왔지만 횟수가 늘었다. 그에게 또다시 큰 변화가 왔다. 누명을 벗었고 국가로부터 보상금을 받았다. 30년 전 왕래가 끊겼던 가족들과도 다시 만났다. 앞날은 알 수 없지만 그동안 붙들고 지켜온 삶이 달라질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무죄를 받아도 과거의 흔적은 그대로다. 보상금을 받아도 변화는 무겁게 윤성여씨를 짓누른다. 말하지 않고 내색하지 않지만 다시 한 발짝 내딛는 걸 두려워하고 있다. 말하지 않고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를 위해 기도했다.

기자명 문상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oon@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