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양동시장 여수왕대포 사장님은 “여그는 손님 푸념 들어주는 집이여”라고 말한다. ⓒ박찬일 제공

대폿집이 사라진다. 나는 대폿집을 찾아다니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다니던 대폿집이 이제 없다. 실비집도 없다. ‘왕대포’라고 빨간 페인트로 궁서체, 함석판에 써서 붙여놓은 간판도 없다. 사라지는 것이다. 손님도 바뀌고, 왕년의 대폿집, 실비집은 삼겹살집이 됐다. 겨우 몇 개 찾아내어 아껴 먹는다. 광주 양동시장의 여수왕대포도 그런 집이다. 보라. 당당하게 대폿집이라 써놓은 집.

“대폿집이라는 게 좋은 게 있고 나쁜 게 있어. 대폿집은 안주가 공짜여. 그건 손님이 좋아. 막깔리(막걸리) 한 병 시키믄 안주가 나옹게. 근데 주인은 안 좋아. 뭔 뜻인지 알제?”

대폿집이란 커다란 대포, 그러니까 바가지에 막걸리를 퍼 담아 마셨다고 해서 이름이 붙었다. 오래된 명칭일 것이다. 왕대포란 큰 대포일 수도 있고, 인심이 넘친다는 뜻도 된다. 여수왕대포는 이제 막걸리는 공식적으로 안 팔지만 소주나 맥주를 시키면 안주가 나온다. 흔한 게 갈치구이와 묵은 김치다. 두부에 더러는 낙지 삶은 것도 나온다. 그게 공짜다.

여수왕대포 사장님은 일흔이 넘었다. 원래 순천 사람이다. 여수에 시집와서 광주에서 살았다. 전라도를 다 돌았다. 여수왕대포는 광주에서 제일 알아주는 양동시장 한구석에 있다. 포털사이트에도 안 나와서, 물어물어 찾아가야 한다. 닭전골목 끝에 있고, 옆에 뻥튀기집도 있다. 맞은편에는 정육점도 하나 있다. 일고여덟 번을 갔는데, 갈 때마다 헤맨다. 전화를 해서 물어보면, 그예 길에 나와서 기다린다. 주인 아짐이 ‘보해소주’ 앞치마에 할머니 표준 파마머리를 하고서. 아짐. 나 배고파. 뭐든 줘봐요.

“암껏도 없어. 꼭 이럴 때 와. 서울 양반. 뭔 일이여.”

이 집은 늘 ‘암껏(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주섬주섬 내놓는다.

“얼른 띠갔다(뛰어갔다) 올까? 요새 대하 좋은디?”

재래시장의 대폿집은,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안줏거리를 늘 재놓고 있지 않는다. 냉장고에 몇 가지 있지만 “영감탱이들 다 늙어서 앓아누웠는지 오다가도 안 오는 게” 손님이라 그때그때 사서 장만한다. 손님이 안주 만들 재료를 사서 가져가도 된다. 양동시장은 멋진 재료가 널렸다. 언젠가는 토하(민물새우)가 있길래 사 갔더니 두부찌개를 끓여주셨다.

“사 갖고 오믄 나야 좋지만, (손님이) 싸게 살 수 없응게 좋지도 않제.”

광주지하철 1호선 양동시장역에서 나와, 시장 안을 들여다보면 ‘양동식육점’이라고 좋은 정육점이 하나 있다. 가게 앞에 유리문 달린 냉장고를 내놨는데 요리사인 내가 봐도 좋은 고기다. 색깔이 검붉고 진하다. 저건 육회 만들기 좋다. 광주 사람들은 전화로 물어보거나 예약해서 육회거리를 정육점에서 사간다고 한다. ‘앞박살’ 한 근을 산다. 암소 앞다리에 붙은 살인데 다리 한 짝에 딱 한 덩어리만 달려 있다. 혀에 척척, 진하게 찰떡처럼 붙어버리는 고기다. 그놈을 한 근 끊고, 여수왕대포 주인 아짐 국거리 하라고 양지도 조금 산다. 육전거리를 사도 된다. 서울에서도 육전 파는 집이 있는데, 그건 대개 엉터리다. 육전은 원래 식당 아짐이 옆에 앉아서 전기 프라이팬 켜놓고 부쳐줘야 제 맛이다. 무슨 풍류냐고 비웃겠지만, 이유가 있다. 아짐의 설명을 들어보자.

“괴기가 식으믄 육전은 못 묵어. 지름(기름)기가 식어불면 고소하덜 않어.”

육전은 얄팍한 살코기에 달걀물을 입혀 고소하게 즉석에서 부쳐 먹는 음식이다. 그걸 다 부쳐서 한가득 접시에 담아 내면 식어버리고 맛도 없다. 하여튼 그 양동식육점에서 고기를 끊고, 덜렁덜렁 시장 안으로 가다 보면 함평대포라고 작은 선술대폿집이 보인다. 그야말로 콧구멍만 한 가게에 립스틱 예쁘게 바른 할머니가 손님을 맞는다. 할아버지 손님들이 빼곡하게 서서 막걸리 잔술을 마신다. 옆에 엉거주춤 서서 한 잔 마시는데, 연배에 밀려 쉽지 않다. 이 집이 잔술 한 잔에 안주 몇 점을 공짜로 내주는 옛날식 가게다.

“조금만 받아야제, 재벌 돼서 뭐 하게”

그 가게를 지나서 해물전이 잔뜩 몰려 있는 골목을 지난다. 철마다 좋은 놈을 고르면 된다. 대하도, 낙지도 가득이다. 알다시피 남도에선 낙지도 다 격이 있다. 아주 작은 세발낙지는 그냥 ‘호로록’ 들이마시듯 통으로 먹는 것이고, 우리가 아는 산낙지회는 중간 크기의 낙지를 쓰는데 탕탕이라고 부른다. 탕탕, 칼로 내리쳐서 먹기 좋게 끊어낸 후 참기름과 통깨를 잔뜩 뿌려 낸다. 아주 굵은 놈은 연포로 탕을 내거나 볶아서 먹는다. 원하는 안주에 맞게 낙지를 산다. ‘여수왕대포’ 아짐에게 갖다주면 요리해준다. 요새는 꽃게도 좋다. 탕을 하거나 찜으로 해주신다. 사람 여럿이 몰려가야 이 요리를 고루 먹을 수 있지만, 멋 나는 건 혼자 가는 거다. 5000원짜리 달걀말이를 시켜서 옆자리 손님과 조금씩 나눈다. 꼴뚜기회가 좋을 때 반 근 사서 역시 옆에 혼자 온 손님과 나눠 먹은 기억이 있다. 어느 날은 퇴직한 교장선생님과, 어느 날은 작은 회사 노조위원장과 안주와 술을 나눴다. 대폿집이란 게 과거의 기억에 있는 술집이라 노장들이 많이 찾는데 이 집은 특이하게 젊은 사람도 많이 온다. 시중에 볼 수 없는 특이한 ‘업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안줏거리를 사서, 그야말로 실비만 내면 요리를 해주니까. 한 상 차려 먹고 얼마냐고 물어보면 기가 딱 찬다. 너무 싸다.

“이걸로 돈 벌기는 글렀응게 조금만 받아야제. 재벌 돼서 뭐 하게.”

대폿집은 손님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 그이는 “장사는 기다리는 직업이고, 삼한사온 같은 일”이라고 한다. 며칠 없어서 굶어죽을 거 같다가도 귀신같이 손님이 와서 먹고살게 되는 일이란 뜻이다.

“여그는 손님 푸념 들어주는 집이여. 그러다 보믄 별일이 다 있어. 공자가 그랬다잖어. 길 가상이(가장자리)에 똥 싸는 사람은 혼을 내도 길 가운데다 싸는 사람은 피하라고. 별놈이 다 오제. 지금 가게 이름이 왕대폰디 얼만 전부터 막걸리를 안 파는 게 이유가 있어. 막걸리 한 병 놓고 아주 심하게 주정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어. 혼내고 싸우고 어쩔 때는 피하고 그란당게. 술집이 그런 데여. 어쩌다 하루씩 쉬는데 몸이 아퍼. 나와 앉아 있는 게 낫제. 그래도 좋은 손님이 많어. 그 맛에 하제.”

그이가 이날 입은 조끼도 신발도 손님이 사다 준 것이다. 희한한 집이다. 다음에 나는 양말을 한 켤레 사 가리라 마음먹었다.

이 집은 안주가 떨어지면 꺼내놓는 비장의 물건이 있다. 묵은 김치다. 달큰하고 진하고 곰삭은 젓갈 내가 살살 밴 ‘죽이는’ 김치다. 한 접시 나오면 술을 열 병은 마실 수 있다. 텔레비전은 꺼버리고 아짐이랑 얘기를 나누는 재미가 있다. 인생사 숱한 곤란과 “나가 데꾸보꾸(일본말로 울퉁불퉁)가 많아서 별일 다 겪었어” 하는 푸념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신다. 여수 살며 오이 하우스 농사도 짓고 고생하다가 광주에 흘러와서 양동시장에 취직을 한 게 30년 전이다.

“홍애(홍어)집에서 내가 아주 날렸어. 남자 월급을 받았어. 홍애 일이 아주 힘들어. 그러다가 내 가게를 냈지.”

홍어를 자르고 껍질 벗기고 나르는 일이 보통 고된 게 아니란다. 오죽하면 남자들이 받는 월급을 받았겠느냐고 하신다.

술을 다 마셔가는데, 국이 한 그릇 턱 나온다. 미역국이다.

“속 풀고 가. 먼 길 가야는데.”

웬 미역국이냐고 물으니 오늘이 당신 생일이라고 수줍게 말한다.

광주 양동시장은 일찍 진다.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는 시장이라 그렇다.

기자명 박찬일 (셰프)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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