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왼쪽)은 인플레가 완전히 진정되기 전에는 긴축을 풀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AFP PHOTO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노인은 “이러다가는 다 죽어”라고 외친다. 미국을 필두로 전 세계가 금리를 인상하고 있는 현재 세계경제를 보면서 이 장면이 떠올랐다. 높은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 미국에서 연준은 계속 금리를 인상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지난 6월 이후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을 세 번 연속 시행하여 기준금리를 3월 이후 3%포인트나 높였다. 

이는 40여 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인데 앞으로도 금리가 더 인상될 전망이다. 다른 국가들도 치솟는 인플레이션 앞에서 미국의 금리인상을 따르고 있다. 선진국 그룹인 일본과 주요 신흥개도국 가운데 중국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주요 국가들이 금리인상에 동참했다.

■ 금리인상이라는 충격요법

금리인상의 여파가 세계경제에 주는 충격은 매우 크다. 먼저 급속한 금리인상은 투자와 소비를 정체시켜 경기를 둔화시킬 것이다. 특히 한국과 같이 부채비율이 높은 국가에서 금리인상은 이자 부담을 무겁게 만들고 금융 불안을 낳아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다. 미국의 경기둔화와 함께 각국의 경기가 동시에 나빠진다면 수입이 줄어들고 무역이 둔화되어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 경제도 이러한 세계경제의 둔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한편 외환시장에서 미국의 달러 가치가 치솟아서 이른바 ‘킹달러’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빠르게 금리를 높이고 있는 미국과 다른 국가들 사이의 금리 격차와 함께 세계경제가 불안해짐에 따라 달러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6개국 선진국 통화에 비해 달러 가치는 올해 들어 약 18% 상승하여 20년 만에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달러 가치의 상승은 미국의 수입 가격을 하락시켜 인플레를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다른 국가들에는 반대다. 자국의 통화가치가 하락하면 달러로 거래되는 에너지와 식량 등의 수입 가격이 높아져 인플레이션을 더욱 높인다. 나아가 신흥개도국의 대외 부채가 대부분 달러로 표시된 현실에서 달러 가치 상승은 이들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달러가 강해질 때 신흥개도국의 금융 환경과 대차대조표가 악화되어 경기둔화가 나타난 바 있다. 

결국 미국의 급속한 금리인상은 전 세계에 인플레와 경기둔화를 수출하여 세계경제에 대한 충격요법이 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얼마 전 국제통화기금(IMF)은 2023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1%, 세계경제의 성장률은 2.7%로 낮아질 것이라 전망했다. 한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미국이 –0.5%, 유럽은 –0.7%까지 하락하는 심각한 경기침체가 발생할 것이라는 더욱 비관적 전망을 제시한다.

지난해 9월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채용박람회. 아직 미국의 실업률은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EPA

이와 관련하여 국제통화기금의 전 수석경제학자 모리스 옵스펠트 UC 버클리 교수는 각국의 금리인상 경쟁이 세계경제에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낳아 인플레이션과 경기둔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 우려한다. 그에 따르면 세계경제의 통합과 글로벌 가치사슬의 발전 등으로 팬데믹 이전의 낮은 인플레에도 해외 요인이 중요했다. 이렇게 외국 경제의 상황이 국내의 인플레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각국이 함께 금리를 인상하고 있는 현재는 금리인상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가 증폭될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세계적인 파급효과를 고려하면 금리인상의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 그는 통합된 세계경제에서는 인플레에 대응하여 각국의 중앙은행이 금리인상을 둘러싸고 공조 체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 연준은 브레이크를 너무 세게 밟았나

세계경제의 불안과 경기둔화 위험이 높아지자 이제 급속한 금리인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뉴욕 시립대학 교수는 현재 연준이 브레이크를 너무 과하게 밟고 있다고 주장한다. 연준은 1970년대와 같이 높은 기대인플레이션이 고착되는 것을 우려하지만 현실에서 기대인플레이션은 높지 않고 해운 운임이나 주택가격 등도 낮아지고 있다. 또한 금리인상이 경제에 큰 효과를 미치려면 긴 시간이 걸리며 이미 미국의 재정정책은 확장적이지 않다. 이를 고려하면 연준이 ‘샤워실의 바보’처럼, 지난해 인플레 상승에 너무 늦게 반응했다가 이번에는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좀처럼 크루그먼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보수적인 경제학자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 대학 교수도 이러한 우려에 동의한다. 그는 연준의 오버슈팅이 심각한 경기침체를 불러 인플레를 막으려다 필요 이상의 고통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개도국들의 목소리가 큰 유엔경제개발기구는 세계경제가 경기침체의 벼랑 끝에 서 있고 미국이 금리인상을 멈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얼마 전 이 기관이 발표한 2022년 세계무역투자보고서는 세계경제가 2023년 2.3% 성장에 그칠 정도로 정체되어 팬데믹 이전의 추세에 비해 한참 못 미칠 것이라고 전망한다. 

특히 이 연구는 미국의 급속한 금리인상으로 인해 세계경제가 매우 둔화될 것이고 개도국의 부채위기 가능성이 높다며 긴축정책을 비판했다. 저자들은 공급 측 요인과 관련이 큰 현재의 인플레에는 통화 긴축과 수요 측 대응의 효과가 작다며, 전략적인 가격통제나 기업의 초과이익 과세, 원자재 투기에 대한 엄격한 규제 등의 대안적인 정책방향을 촉구했다.

그러나 연준은 단호하다. 제롬 파월 의장은 이미 지난 8월 잭슨홀 연설에서 인플레가 완전히 진정되기 전까지는 긴축을 풀지 않겠다며 폴 볼커 전 의장(연 20%대까지 기준금리를 올린 바 있다)의 길을 따르겠다고 천명했다. 얼마 전 발표된 미국의 9월 실업률도 3.5%로 예상보다 낮게 나와서 11월에도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할 것이 유력하다. 금융시장도 이에 반응하여 국채수익률이 뛰고 주가는 급락했다. 최근 연준 인사들은 금융 불안 가능성이 있다 해도 금리인상을 지속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관건은 높은 인플레를 잡기 위해 어느 정도의 긴축과 경기침체가 필요한가이다. 이는 어려운 질문으로, 최고의 거시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열띤 논쟁이 진행 중이다. 먼저 최근 연구들은 베버리지 곡선에 주목한다. 보통 경기침체 시기에는 실업률이 높고 ‘빈 일자리(기업 측에선 사람을 구하는데 정작 지원하는 사람은 없는 일자리) 비율’이 낮은 반면 노동시장이 ‘타이트한(구인이 구직보다 많은)’ 경기확장기에는 그 반대 상황이 된다. 이처럼 실업률이 높으면(낮으면) ‘빈 일자리 비율’이 낮아지는(높아지는) 관계를 선으로 나타낸 것이 베버리지 곡선이다(위 그림 참조).

현재 실업률은 팬데믹 이전보다 크게 낮아지지 않았지만 근원인플레이션(가격 변동성이 큰 식료품이나 유류 등을 제외한 인플레이션)이 매우 높아서, 실업률이 노동시장 과열과 인플레이션을 설명하기에 한계가 크다. 그러나 빈 일자리 비율과 실업률의 관계를 보여주는 베버리지 곡선은 노동시장이 과열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노동시장 내에서 구인과 구직 사이 매칭(matching)의 효율성이 낮아지면 빈 일자리와 실업자가 동시에 늘어나 베버리지 곡선이 우상향으로 이동한다(그림 참조). 팬데믹 이후 미국이 바로 그런 상태다. 현재는 팬데믹 이전과 실업률은 비슷하지만 ‘빈 일자리 비율’은 훨씬 높아서 노동시장이 매우 타이트한 것이다.

최근 로런스 볼 존스홉킨스 대학 교수 등의 연구는 이렇게 측정되는 노동시장의 과열이 높은 근원인플레이션의 중요한 요인임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어 주목을 받았다. 한편 근원인플레이션보다 높은 ‘헤드라인 인플레이션(전체 제품의 물가인상 정도를 반영한 인플레이션)’ 충격이 임금 상승이나 재료비 상승을 통해 근원인플레이션에 이전되는 효과도 부분적인 역할을 했다. 

마지막 요인은 오랫동안 낮게 안착되었지만 올해 들어 높아진 장기적 기대인플레이션이다. 이들의 연구는 기대인플레이션이 현실의 높은 인플레에 크게 영향을 받아서 높이 유지되거나 ‘빈 일자리 비율’이 계속 높다면 실업률의 높은 상승 없이는 인플레 압력이 낮아지지 않을 것이라 강조한다. 

거시경제학의 대가 올리비에 블랑샤르나 래리 서머스도 역사적인 경험을 보면 ‘빈 일자리 비율’이 피크를 친 후 낮아질 때는 실업률이 크게 상승한다고 보고한다. 그렇다면 현재도 노동시장의 활황을 억누르기 위해 높은 금리인상과 경기침체를 통한 높은 실업률 상승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 소프트랜딩으로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이 불가능하며 상당한 고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 급속한 금리인상을 멈춰라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 달리 현재는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지 않으며 최근 하락하고 있어서 인플레이션의 안착이 깨지고 있다는 근거는 희박하다. 사람들의 인플레이션 기대가 단순히 현재의 인플레를 반영하는 적응적인 것이 아니라 통화정책 변화 등 여러 요인들이 영향을 미친다면 인플레를 낮추기 위해 높은 실업률 상승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지난 8월 미국 노동통계국의 데이터는 실업률의 상승 없이 빈 일자리 비율이 대폭 하락하여 노동시장이 식고 베버리지 곡선이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를 던져주었다. 사실 기대인플레이션이 실제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논란이 존재한다. 설사 높아진다 해도 현재는 노동자의 협상력이 약해져 1970년대와 같은 임금-물가 상승 악순환이 나타날 가능성은 낮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임금상승에 실업률이나 빈 일자리 비율이 중요하지 않고 노동시장에서 빠져나간 비경제활동인구와 실업자를 합친 산업예비군이 중요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렇다면 비고용인구가 많은 현재는 보기보다 노동시장이 타이트하지 않고 인플레 압력이 크지 않을 수 있다. 이는 급속한 금리인상과 경기침체, 그리고 실업률의 높은 상승 없이도 인플레 압력이 낮아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2017년 당시 연준 의장 재닛 옐런은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고 말한 바 있다. 매우 낮은 실업률에도 수수께끼처럼 물가상승률이 낮았기 때문이다. 팬데믹 이후 치솟은 인플레이션의 경우에도 통화정책과 노동시장을 둘러싸고 이 논쟁이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분명 경제침체라는 큰 고통을 가져다줄 급속한 금리인상과 과도한 긴축을 그만두라고 외치는 목소리도 필요하다. 특히 달러 가치의 급속한 상승과 세계경제의 불안정을 막기 위해 통화정책의 세계적인 공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자명 이강국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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