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오른쪽 앞)이 10월11일 국회에서 열린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10월11일 윤석열 정부의 첫 감사원 국정감사가 시작부터 파행됐다. ‘감사위원 출석’을 두고 여야 간 이견이 발생했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의 전횡으로 감사위원회의 역할이 유명무실화됐는지 질의응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감사위원 전원 출석은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맞섰다.

이날 감사원 국정감사의 중심에 선 것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감사다. 감사원은 지난 6월17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감사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최초 보고 과정과 절차, 업무처리의 적법성과 적정성 등에 대해 정밀 점검할 예정이다(6월17일 감사원 보도자료).” 해경이 실종된 공무원의 월북 사실에 대한 입장을 번복한 다음 날, 유병호 사무총장이 취임한 지 이틀 뒤였다. 유병호 사무총장은 문재인 전 정부 관련 감사 업무를 총괄하는 ‘실세’ 사무총장으로 알려져 있다(〈시사IN〉 제775호 “문재인 정부 겨눈 전방위 사정, 윤석열 지지율에 출렁?” 기사 참조).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감사가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향했다. 감사원이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서면조사를 통보했지만, 문 전 대통령이 질문지 수령을 거부한 사실이 10월2일 알려졌다. 감사원은 이튿날 보도자료를 내고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감사와 관련해 “사실관계 확인 등이 필요해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질문서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한 전직 감사원 고위 관계자는 검찰이 수사하는 사안을 감사원이 감사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통상 수사 중인 사안은 감사하지 않는다. 한쪽에서 검증하고 있는데 다른 쪽에서 자료나 증거 등을 달라고 할 수 없다. 동일한 내용으로 양쪽에서 수사·감사를 동시에 하면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감사의 실효성을 두고 의문을 제기했다. 감사원은 감사를 마친 뒤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인정될 때 수사기관에 고발하거나 수사를 요청한다. 검찰은 현재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수사 중이다. “검찰이 수사 중이어서 감사원이 뭘 밝혀낸다고 하더라도 조치의 실익이 하나도 없다. 외교 참사로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정략적 조치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는다(10월5일 KBS 라디오).”

민주당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감사의 배후로 윤석열 대통령을 지목했다. 10월4일 윤석열 대통령은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에서 감사원의 문재인 전 대통령 서면조사 통보에 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감사원은 대통령실과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기관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대통령이 언급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라고 원론적 답변을 내놓았다.

다음 날인 10월5일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에게 보낸 문자 내용이 포착됐다. “오늘 또 제대로 해명자료가 나갈 겁니다. 무식한 소리 말라는 취지입니다.” 곧바로 ‘하명 감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당은 “감사원의 직무상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행위가 드러났다”라고 비판했다.

“감사위원회 심의·의결 별도로 거쳤어야”

문재인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현역 의원들이 10월6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권칠승·황희·도종환·이인영·전해철·진선미 의원. ⓒ연합뉴스

감사원 관계자는 “〈한겨레〉 보도가 사실인지에 대한 질문이 (이관섭) 수석에게서 왔고 거기에 대한 답변”이라고 설명했다. 유병호 사무총장은 10월11일 감사원 국정감사에 출석해 “(이관섭 수석과 한) 소통은 정상적인 것이다. 전날 보도가 허위 사실이라는 내용이다. 그게 이틀간 연이어 돼서 ‘또’라는 표현을 썼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같은 날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에게 문자를 보낸 적이 또 있느냐”라는 이탄희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는 “따로 답변하지 않겠다”라며 답을 회피했다.

유 사무총장이 ‘허위 사실’이라고 지목한 〈한겨레〉 보도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감사가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감사원법은 “감사원의 감사 정책 및 주요 감사 계획에 관한 사항은 감사위원회의에서 결정한다(감사원법 제12조 제1항)”라고 규정한다.

감사원이 이탄희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6월17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감사 발표 전까지 감사위원회의가 총 6차례 열렸다. 6차례 회의에서 심의·의결한 안건 42건 중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 안건은 없다. 해당 감사에 대해 감사 절차 위반과 ‘감사위원회 패싱’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감사원은 법률에 명시된 ‘주요 감사 계획’은 “연간 감사 계획과 하반기 감사 계획 등 전반적인 감사 추진 계획”을 의미한다며 “공직 감찰 사항은 구체적인 감사 사항마다 감사위원회의 의결을 받아 감사를 실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전윤철 전 감사원장은 〈시사IN〉과의 전화통화에서 재직 당시 감사 사안별로 건건이 감사위원회의 의결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 사무처가 감사할 때는 감사 의결을 받지 않았고, 연간 감사 계획을 세울 때 협의 차원에서 감사원 의결을 거쳤다.” 앞선 감사원의 전직 고위 관계자는 “감사 계획은 사전에 받지만, 구체적으로 감사를 집행하는 과정에선 감사위원회 의결을 받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감사원에 사무처가 있고 감사위원회라는 의결 기구가 따로 있는 거다”라고 답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반기 감사 계획에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한 안건이 없었다는 점이 문제라고 〈시사IN〉에 설명했다. “5월에 정권이 바뀌고 6월 해경에서 번복하는 발표를 하니까 바로 감사를 개시했다. 상반기 감사위원회 심의·의결 사항에 포함되지 않았으면 별도로 다시 올려서 심의·의결을 거쳤어야 한다.” 

기자명 이은기 기자 다른기사 보기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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