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측이 외통수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더 물러설 곳이 없고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더 미룰 명분이 없다. 공수처는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감사원의 표적 감사 의혹을 수사 중이다. 유병호 사무총장은 이 사건 핵심 피의자로 지목됐다. 공수처와 유병호 사무총장은 소환조사 일정을 두고 약 한 달째 신경전을 벌여왔다.

지난해 8월 감사원은 전현희 전 위원장과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에 대한 특별감사에 착수했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과 전현희 전 위원장은 감사원의 특별감사가 위원장 사퇴 압박을 위한 표적 감사라고 주장하며, 감사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유병호 사무총장을 공수처에 고발했다. 올해 6월 감사원은 10개월간 진행한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 대상 13건 중 한 건에 대해서만 ‘주의’ 조치가 있었다. 7건에서는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고 나머지 5건은 잘못을 묻지 않는 불문 결정을 내렸다(〈시사IN〉 제824호 ‘호랑이냐 사냥개냐, 논란의 감사원과 유병호’ 기사 참조). 공수처 특별수사본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올해 9월6일 감사원과 권익위를 압수수색하며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앞서 공수처는 고발인인 전현희 전 위원장을 여러 차례 불러 조사했다. 공수처는 압수수색을 위해 검사와 수사관 등 전체 수사 인력의 3분의 2인 약 40명을 투입하고 버스까지 대절했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공수처 소환조사 요구에 5차례 불응했다. ⓒ시사IN 이명익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공수처 소환조사 요구에 5차례 불응했다. ⓒ시사IN 이명익

유병호 사무총장은 감사원이 전현희 전 위원장을 표적 감사하는 데 깊숙이 관여한 혐의(직권남용 등)를 받는다. 공수처는 감사원의 전현희 전 위원장과 권익위에 대한 감사가 허위·과장 제보에 근거했다고도 의심한다. 공수처가 10월 감사원을 상대로 집행한 압수수색 영장에 따르면, 의혹 제기의 발원지로 지목된 권익위 고위 관계자와 함께 허위·과장된 제보라는 것을 알면서도 검찰에 수사 요청한 최재해 감사원장, 유병호 사무총장 등을 공동 무고 혐의로 수사 중이다.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제보 이동경로에는 용산 대통령실 관계자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공수처는 유 사무총장이 지휘하는 감사원 사무처가 감사위원을 건너뛰고 감사보고서를 위법하게 시행 및 공개한 혐의도 수사하고 있다. 공수처는 표적 감사 의혹 사건으로 감사원 사무처 실무자 등 약 15명도 피의자로 입건했다.

의혹들의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서는 감사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유병호 사무총장에 대한 직접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게 공수처 입장이다. 이를 위해 공수처는 총 5차례 소환조사를 통보했지만 유 사무총장은 모두 거부했다. 함께 입건된 감사원 실무자들도 모두 공수처 조사 요구에 불응했다. 국회 국정감사 참석 등이 이유였다. 감사원이 권익위를 감사할 때와 수사받을 때의 태도가 모순된다는 비판이 나왔다. 전현희 전 위원장은 11월6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지난해 감사원의 권익위 특별감사 당시) 제가 기관장으로서 국정감사와 공식 일정이 있어서 다른 날을 지정해주면 받겠다고 공문을 보냈다. 그랬더니 그것을 거부하고 국감 당일 ‘감사에 불응했다’며 감사방해죄 혐의로 대검에 수사 요청을 했다”라고 주장했다.

출석 미루는 피의자, 고민하는 수사기관

〈시사IN〉 취재를 종합하면, 공수처가 유병호 사무총장에게 처음 출석을 요구한 날은 10월13일이다. 유 사무총장은 감사원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 일정이 있고,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응했다. 감사원 국정감사는 10월13일이었다. 유 사무총장 측 변호인은 10월17일 공수처에 선임계를 제출했다. 유병호 사무총장은 2차(10월18일), 3차(10월24일), 4차(11월1일), 5차(11월6일) 출석 요구도 거부했다. 사건 파악과 변호인 조력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고,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및 매주 열리는 국무회의 참석 일정이 있다며 국회 일정이 일부 마무리되는 12월 중에 출석하겠다는 입장을 공수처에 밝혔다.

동시에 유 사무총장은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가 무리하게 소환조사를 통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과 협의하지 않은 채 출석하기 힘든 일정을 제시하고, 일방적으로 출석 요구를 하면서 불응하는 모습을 만든다는 것이다.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 등을 통해서는 “고발장 정보공개 청구를 했지만 공수처가 거부하고 있다. 방어권 행사 권리를 배제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공수처는 유 사무총장의 연이은 불출석을 의도적 지연 전략이라고 판단한다. 공수처의 한 관계자는 “소환 일정을 정하는 데 협의가 없었다는 건 피의자 쪽의 일방적 주장이다. 국회 일정이 매일 있는 것도 아니었고, 출석 의지가 있었다면 주말에라도 출석이 가능했을 것이다. 소환조사 기간을 한 달 이상 미뤄달라는 주장은 수사기관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공수처의 또 다른 관계자는 “첫 출석 요구 이후 한 달이 지났고 고발장 대신 압수수색 영장 사본을 교부했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그동안 충분히 보장받았을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말했다.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표적 감사’를 주장하며 유병호 사무총장 등을 공수처에 고발했다. ⓒ시사IN 박미소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표적 감사’를 주장하며 유병호 사무총장 등을 공수처에 고발했다. ⓒ시사IN 박미소

공수처는 체포영장 또는 구속영장 청구도 검토 중이다. 그동안 수사는 임의 수사가 원칙이고, 유병호 사무총장 신분이 명확한 만큼 직접 출석해 조사를 받는 방향으로 협의해왔으나 계속해서 미룬다면 공수처 입장에서도 선택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앞서 공수처는 출석 불응한 피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사례가 있다. 고발 사주 의혹으로 공수처 수사를 받은 손준성 검사였다(당시 법원은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라는 이유로 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전현희 표적 감사’ 의혹으로도 체포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되면 수사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 공수처가 출범 이후 체포영장 5건과 구속영장 4건을 청구했지만 전부 기각된 점도 부담스럽다.

앞서 공수처 관계자는 “부담이 크고 비판을 받더라도 필요하다면 원칙에 따라 해야 할 일(강제수사 등)을 할 것이다. 소환조사든 강제수사 전환(영장 청구)이든 11월은 넘기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전에 (함께 입건된) 감사원 실무자들의 출석 여부에 따라 유병호 사무총장 출석 일정이 조정될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문상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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