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앨범 으로 돌아온 밴드 허클베리핀. ⓒ샤레이블 제공

가끔 심사를 본다. 웬만하면 거절하려 하는데 말처럼 쉽지가 않다. 새로운 뮤지션과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사는 나에게도 이득이다. 돈 문제가 아니다. 거절해봤자 직업상 손해란 뜻이다.

다시 한번 깨달았다. 우리가 찾지 않을 뿐 갓 데뷔한 뮤지션·밴드의 좋은 음악은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렇다. 이것은 의견이 아닌 팩트의 영역이다. 음악이 탄생한 이래 좋은 음악이 없었던 시기는 없었다고 보는 게 뭐로 봐도 합리적이다. 2022년 10월에도 이 명제는 유효하다.

심사가 끝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앞선다. 누군가는 다음 단계로 진출하고 누군가는 여정을 멈출 수밖에 없다. 참고로 내가 이번에 심사를 맡은 경연은 ‘헬로 루키’였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만큼 실력자들이 대거 몰려 판단하기 어려웠다. 혹시 ‘헬로 루키’를 모르고 있을 당신을 위해 이 경연을 통해 이후 스타로 떠오른 뮤지션·밴드를 적는다. 장기하와 얼굴들, 국카스텐, 잠비나이, 실리카겔 등 셀 수 없이 많다.

결국 내가 선택한 언어는 이랬다. “이 얘기를 드리고 싶어요.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하더라도 심사위원들 중 최고점을 드린 분이 있다는 점을요. 관객들도 그렇습니다. 마음속으로 최고점을 드린 관객이 분명히 있습니다. 어쨌든 심사에도 취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거든요.” 그렇다. 음악을 평가하는 데 객관이란 있을 수 없다. 어쩌면 당신은 ‘차트라는 지표가 있지 않냐’고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다. 차트 역시 수많은 사람이 선택한 주관을 서열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각자 음악 듣기의 역사가 다른 만큼 취향과 기준은 다를 수밖에 없다. 심사위원을 여럿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양한 취향을 최대한 공정하게 반영하려는 것이다.

집으로 오는 길에 앨범 한 장을 쭉 감상했다. 이제는 ‘한국 인디의 전설’이라 할 허클베리핀의 신보 〈더 라이트 오브 레인(The Light of Rain)〉(2022)이다. 나는 허클베리핀의 오랜 팬이다. 그들의 앨범 전부를 ‘애정’한다. 무엇보다 허클베리핀이 놀라운 건 음악적 흐름에 적응하고 그것을 흡수하는 탁월한 능력에 있다. 그런지·얼터너티브로 시작해 댄스 록을 거쳐 일렉트로니카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시대의 촉수를 예민하게 가동하면서 단 한 번도 어설픈 경우가 없었다.

7집도 그렇다. 록, 일렉트로니카, 포크 등 역대 가장 다채로운 장르를 담아낸 동시에 자기만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이기용이 쓴 노랫말은 말할 것도 없다. 그는 시적인 가사로 깊은 울림을 길어낼 줄 아는 우리 시대의 작가들 중 한 명이다. 음반 전체를 추천하고 싶지만 딱 네 곡만 추려본다. 아주 쉽다. 1번부터 4번까지만 쭉 감상해보길 권한다.

또 호들갑 떠느냐고 타박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한다. 음악만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새롭게 시작한 누군가에게 필요한 건 냉엄한 비판이 아닌 애정에 바탕을 둔 과찬이라고 믿는다. 이것이 그의 가능성을 더 높은 단계로 인도해줄 것이다. 하나 더 있다. 오래 활동했고, 변함없이 근사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음에도 그에 합당한 찬사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질 때다. 허클베리핀이 바로 그렇다. 그들은 더 크게, 더 자주 칭찬받을 자격이 있다.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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