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상 기자가 이번 호에 쓴 기사(‘형제복지원 사망자 100여 명 더 있었다’)를 읽고서 진실화해위원회 홈페이지를 찾았다. 형제복지원 사망자가 657명이라니. 숫자에 놀랐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싶었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응급 후송 중 사망’한 사례가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사망진단서 대부분이 ‘병사’로 조작된 정황을 찾았다. 사망자 시신을 암매장한 사실도 일부 확인했다. 1975년부터 1986년까지 형제복지원에 입소했던 이는 총 3만8000여 명. ‘생존자들’은 그 끔찍한 기억을 가슴에 품고 살았으리라. 이제야 이들은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를 인정받았다.
사회복지시설에서 왜 이렇게까지? 진실화해위의 자료를 보니 의문이 풀렸다. 전두환 군사독재와 관련이 있다. 1981년 4월9일, 보안사가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신체장애자 구걸행각 실태’라는 보고를 했다. 전두환은 구걸행위자 일제단속과 보호대책 수립을 지시한다. 이에 내무부, 보사부 등 관계부처가 나선다. 그해 10월6일에는 전두환이 ‘1988년 올림픽 개최 이전 서울 거리에 걸인이 없도록 하라. 걸인 중 정상적인 사람이 40%가 된다는데 대공적 용의점이 있는지 검토해보라’고 국무총리에게 지시한다.
‘대공적 용의점’이라니? 황당하지 않나. 보안사는 ‘수사 공작’을 위해 형제복지원에 보안사 요원을 위장 잠입시키는데, 그 공작 관련한 보안사 문건을 보면 군사정권이 형제복지원을 어떤 곳으로 보았는지 알 수 있다. 보안사는 “부마사태 시 방화, 파괴 등 과격 행동은 넝마주이, 구두닦이, 중국음식점 종업원 등에 의해 자행”되었다면서 형제복지원에 대해 “부산 지역 부랑자 3000여 명을 강제 격리 수용하고 있는 시설로서 불순분자에 의한 조직적 집단행동 유발 시 위해성이 높은 집단”으로 판단했다. 형제복지원을 “교도소보다 더 강한 규율과 통제로 재소자 대부분이 동소에서 탈출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곳이라고 평가했다. 군사정권은 형제복지원의 실태를 알고도 방치한 것이다. 박인근 원장이 구속되고 한 달 후에 전두환이 보건사회부 업무보고에서 “부랑인 수용 보호 문제는 시설 운영자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책임자 처벌에 거리를 둔 데는 이유가 있었다. 1987년 3월, 안기부 2국장 주재하에 청와대 비서관, 대검, 치안본부, 내무부 등 정부 인사들이 모여 박인근의 형기 만료 후 복귀를 전제로 이사진 구성을 논의한 이유도 알 만하다. ‘대공’ 앞에 ‘인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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