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최안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은 6월22일부터 무기한 점거 농성 중이다. 옥포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유조선 바닥에 가로·세로·높이 1m 철판을 붙여 그 안에 들어갔다.ⓒ금속노조 제공

6월22일 오전 8시30분, 유최안씨는 평소처럼 대우조선해양 조선소로 출근했다. 1도크(선박을 만들어 바다로 내보내는 공간)에서 30만t급 원유 운반선을 만들고 있었다. 유씨는 원유를 저장하는 시설인 탱크톱 바닥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중간에 책상처럼 생긴 구조물이 있었다. 그는 몸을 숙여 그 안으로 들어갔다. 손에는 휘발성 물질인 시너가 든 통과 유언장이 들려 있었다.

유씨는 전날 준비해둔 철판 자재들로 입구를 막았다. 20여 년 동안 용접 기술 하나로 버텨온 하청노동자의 손놀림은 빠르고 꼼꼼했다. 사방이 다 막히자 그는 비로소 안도했다. 회사 측이 고용한 용역이 와도 자신을 끌어낼 수 없었다.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m밖에 되지 않는 좁디좁은 공간을 고른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용접하는 도중에 들키면 회사에서 전기를 내리고 저를 끄집어낼 거거든요.”

함께 파업 중이던 동료들도 이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우리한테라도 미리 말하지 그랬느냐”라는 서운함 뒤에는 “몸을 펼 수 있는 공간이라도 만들어줬을 텐데”라는 미안함이 묻어 있었다. 유최안씨의 키는 178㎝다. 동료들은 하나같이 안타까워했다. “그 친구가 몸이 커요, 하필이면.” 1제곱미터에 불과한 공간에 갇혀 있기에 더욱 크게 느껴지는 키였다.

동료 6명은 유씨가 있는 탱크톱 바닥으로부터 10m 위 난간에 올라가 고공 농성을 시작했다. 바닥에 자신을 가둔 유씨는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고 적은 종이를 밖으로 들어 보였다. 허공에 올라간 동료들은 “국민 여러분, 미안합니다. 지금처럼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고 적은 현수막을 내걸었다. 유씨가 고개를 꺾어서 위를 올려보면 고공 농성 중인 동료들이 그를 향해 소리치며 안부를 물었다. 무기한 점거 농성이 시작됐다. 지난 6월2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이하 하청노조)가 노조활동 보장과 임금 30%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간 지 21일 만이었다. 유최안씨는 하청노조 부지회장이기도 하다.

연일 폭염특보가 내려진 바닷가에선 덥고 습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건조 중인 선박에 깔린 철판도 열기에 달구어졌다. 유최안씨가 점거 중인 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1도크에서는 여전히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람이 죽어도 일을 하는 곳이 조선소인데요, 뭐.” 7월4일 오전 동료가 바꿔준 휴대전화 너머로 들리는 유최안씨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는 일부러 자신의 휴대전화를 놓고 들어왔다고 말했다. “가족들한테도 말하지 않았거든요. 알게 되면 전화해서 그러지 말라고 할 거니까.” 그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점을 감안해 하루에 두 끼만 먹고, 기저귀에 용변을 보고, 한 시간마다 자세를 바꿔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직후인 1999년부터 용접 기술을 배웠다. 고향인 통영에서 조선소에 납품할 블록(조립된 철판)을 만드는 하청업체에서 일했다. 조선소 밖에 있는 하청업체들이 작은 블록을 만들어 조선소에 보내면, 조선소에서 이 블록들을 쌓아 큰 배를 만드는 식이었다. 당시에는 주문 물량도 많고 급여 수준도 만족스러웠다. 체감경기가 나빠진 건 2012년부터다. “작은 업체들이 문을 닫더라고요. 그때마다 임금을 떼였어요. 제가 옮겨 다니는 걸 안 좋아해서 계속 (같은 회사에서) 일했는데 결국에는 통영에 있는 웬만한 하청업체들이 다 문을 닫았어요.”

“이 바닥서 폐업은 더 악질이 온단 뜻”

2016년 그는 거제로 왔다. 조선소 안에 있는 하청업체에 가면 적어도 임금은 안 떼인다는 말을 믿었지만 1년 뒤 또다시 업체가 문을 닫으면서 돈을 받지 못했다. ‘나만 가면 임금이 떼이나’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상여금도 550%에서 400%로 깎였다. “정규직이 먼저 임금 10%를 삭감하니까 하청도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면서 상여금 150%를 깎았어요. 1년 지나니 남은 400%도 삭감하더라고요. 진짜 억울한 게, 정규직들은 10% 삭감했던 걸 이자까지 쳐서 다시 받았어요.”

임금이 떼여도 묵묵히 일해온 그도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하청노조에 가입했다. “그때 대우조선 안에 하청업체가 140곳 정도 있었어요. 그중에 저희 회사만 유일하게 상여금 400%가 안 없어졌어요. 저희가 반발해서 취업규칙을 못 바꿨거든요.” 하지만 유씨는 여전히 상여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업체가 또 폐업하고 임금을 떼먹고선 도망가버렸어요. 이 바닥에서 폐업은 더 악질적인 사람이 사장으로 온다는 의미거든요. 원청인 대우에서 기성금(건조가 진행된 만큼 주는 돈)을 더 주지는 않으니까요. 그렇게 야금야금 깎여나간 임금이 원래 임금의 30%를 넘어요. 불법인 ‘무급 데마찌(무급 휴업)’까지 고려하면 최저임금조차 안 돼요. 지금 저희가 30% 인상해달라는 요구는 애초 임금수준으로 원상복귀라도 해달라는 말인 거예요.”

7월2일 경남 거제에서 열린 집회에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노동자들이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시사IN 조남진

유씨가 다니던 회사를 인수한 새 사장은 취업규칙을 바꿨다. 근로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회사를 그만두거나 그렇지 않으려면 상여금을 포기해야 했다. 그런 방식으로 지난 7년 동안 유씨가 소속된 업체는 여섯 번 바뀌었다. 하청업체와 이루어진 개별교섭은 언제든지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하청노조는 이번 파업에서 ①단체교섭권 인정 ②단체교섭을 통한 하청노동자들의 임금 30% 인상을 요구안으로 내세웠다.

“파업이 시작되고 보름 정도 지나니 생산 일정이 차츰 지연됐어요. 후공정이 멈추니까 선공정도 멈추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대우에서 일종의 구사대(사측에서 고용한 용역)를 투입하더라고요. 하청업체마다 대표, 소장, 직장, 반장 이렇게 댓 명씩 차출해오는 거예요. 자꾸 구사대가 들어와서 파업 의지를 꺾어놓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끌려 나가지 않는 공간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게 이 감옥이에요.” 유씨가 말했다.

원청인 대우조선해양 측은 하청노조의 불법행위로 매주 1250억원씩 손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청업체와 하청노동자 사이에 원청이 개입하는 것은 하도급법 등을 위반하는 불법이기 때문에 하청노조를 단체교섭 단체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17년 동안 도장공으로 일한 안준호 하청노조 부지회장은 “하청업체와 개별교섭을 하려고 해도 ‘원청에서 기성금을 올려주지 않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만 되풀이해요.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건 원청이고, 원청인 대우조선해양 특성상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움직이지 않으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가 없습니다”라고 반박했다.

7월1일 거제경찰서는 하청노조 김형수 지회장과 유최안씨 등 총 3명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로부터 보강수사를 지시받은 상태다. 7월4일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대표·직장·반장 등이 모여 조직한 ‘현장직반장책임자연합회’는 경남경찰청에 신속한 공권력을 투입해달라는 촉구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하청노조와 하청업체 대표단 사이에 협상 테이블이 세 차례 마련됐지만 입장 차이를 좁히지는 못했다.

유최안씨는 단체교섭을 할 수 없다는 회사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조선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불법이거든요. 노조가 인정될 바에야 문 닫는 게 낫다는 계산이 나올 법해요. 지금 1도크에 있는 배가 20일 가까이 진수(배를 처음으로 물에 띄우는 일)를 못하고 있는데, 회사가 얼마나 노조를 인정하기 싫으면 납기 기한이 20일 넘어가도 버티겠어요. 노조가 강성이라고 하는데, 회사가 강성이기 때문에 노조도 강성이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저희가 엄청난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산업안전보건법에 적혀 있는 근로기준을 지켜달라는 건데. 그걸 보장해주지 못하는 직장은 차라리 문 닫는 게 낫죠.”

그에게 왜 조선소를 떠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자신이 조선소에 남은 마지막 젊은 세대라는 답이 돌아왔다. “제가 용접을 배울 때 또래가 엄청 많았어요. 지금은 아무도 없죠. 저 이제 마흔두 살밖에 안 되거든요.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싸우겠다는 사람들을 두고 나갈 수는 없잖아요. 가족도 이제 그만하라 하지만 노조를 찾아간 것도 저고 사람을 모은 것도 저니까요.”

유씨는 ‘나갈 사람들은 이미 다 나간 상태’라고 말했다.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에 다른 업계, 다른 도시로 떠난 사람이 많다. 남아 있는 하청노동자 대부분은 나이가 많거나 거제를 떠날 수 없는 개인 사정 때문에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걸 아니까 회사가 더 가혹하게 나오는 거죠. 물러설 곳 없이 계속 물러선 사람들, 어차피 갈 곳 없는 사람들이라는 걸 아니까. 속 편한 사람들은 ‘정 그렇게 회사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데 가서 일하라’고 하는데 못 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곳곳에 파업을 찬성·반대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시사IN 조남진

대우조선해양은 하청노동자 수를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이하 정규직노조)는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하청노동자 수가 1만100명에 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조선업이 호황이던 때 2만명을 훌쩍 넘었던 것과 비교하면 반토막 수준이다. 하청노조는 전체(약 1만100명) 중 약 600명이 조합원이고, 현재 파업에 참여하는 조합원은 150명 정도라고 밝혔다.

가장 우려하는 것은 ‘선박의 품질’

조선업계의 심각한 인력난을 해결할 수 있는 대책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언급되지만 현실성은 떨어진다. 곽재근 정규직노조 대외협력부장은 “이제는 외국인 노동자도 조선업을 기피합니다. 건설업체, 육상 플랜트에 가면 조선소보다 훨씬 처우도 좋고 근무 환경도 좋은 걸 다 아니까요. 요새는 외국인 노동자들끼리 커뮤니티가 잘 구축돼 있기 때문에 ‘어디가 좋더라’는 정보가 금방 돕니다”라고 말했다.

유최안씨는 앞으로 조선업이 외국인 노동자를 국내 전역으로 내보내는 출입구가 될 거라고 예상한다. “조선소에서 잠깐 머무르다 근무조건이 더 좋은 곳을 찾아 내륙 각지로 뻗어나가는 거죠.” 한쪽에서는 하청노동자가 ‘일을 하겠으니 돈을 달라’며 파업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하청기업 대표가 ‘요새 외국인 노동자들은 원하는 대로 다 맞춰줘야 한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풍경이 동시에 펼쳐지는 이유다.

무엇보다 정규직·비정규직을 가리지 않고 조선업계 노동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선박의 품질’이다. “조선은 기술집약적인 산업이에요. 조선소에서 기술자 한 명을 키우려면 최소 3년이 걸려요. 최종 조립 단계인 ‘탑재’ 공정에서 일할 사람은 5년 동안 배워도 부족해요. 그런데 금방금방 빠져나가고 대체되는 외국인 노동자로 이 산업을 굴리겠다는 건 품질을 포기하겠다는 얘기죠. 실제로 선박 품질이 엄청 나빠졌거든요. 외국인 노동자만으로는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원청에서도 알고 있는데… 답도 없이 사태를 키우는 거 같아요.”

그는 회사가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호황기 시절을 생각하면 다시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 같지만, 거품이 꺼지니까 노동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사람들이 다 봤잖아요. 누가 굳이 기술을 배워서 오겠어요? 대책이 없죠.”

기자명 거제·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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