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경제지에 ‘국가부도 내몰린 빚쟁이 나라들’이란 논설위원 칼럼이 실렸다. 스리랑카·몰디브 등이 국가채무를 갚지 못해서 국가부도에 내몰렸다는 내용이다. 중국에서 비싼 이잣돈을 빌려 항만·도로 등을 건설했지만, 빚을 갚지 못해 항구의 운영권을 중국에 넘기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말미에 이 칼럼의 교훈이 나온다. 한국도 국가채무가 1000조원을 넘어섰다며 “채무를 늘리는 것은 정치인이지만 빚을 갚는 건 결국 국민이다”라고 강조한다. 이 기사뿐만 아니라 국가부채는 모두 우리 후손이 갚아야 할 빚이라는 기사는 매우 흔하다.
그러나 스리랑카의 외채와 한국의 국가부채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스리랑카의 외채는 중국 등에서 높은 이자의 돈을 빌린 것으로 중국에 줘야 할 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는 대부분 외채가 아니다. 내부 채무다. 즉, 외국에서 빌려 외국에 줘야 할 돈이 아니라, 주로 대한민국 국민에게 빌려서 대한민국 국민에게 갚아야 할 채무다. 현재 대한민국 국채 채권자의 약 80% 이상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물론 20%가량은 외국인이다. 그러나 한국은 순채권국가다. 대한민국이 보유한 외국 채권이 외국인이 보유한 대한민국 채권보다 더 많다. 채무자는 대한민국 정부이지만, 채권자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얘기다. 대한민국 국민이 채권자인데, 대한민국 후손이 갚아야 한다? 내부 채무를 우리 후손이 갚아야 한다는 논리는 좀 어색해 보인다.
러너(A. Lerner)와 같은 전통적 견해의 재정학자에 따르면, 해외에서 빌려다 쓰는 채무가 아닌 내부 채무는 미래세대의 부담이 늘어나지 않는다. 그 나라 국민이 채권자라면, 상속이나 매매 등을 통해 국채 상환을 받는 사람도 미래의 국민이라는 것이다. 물론, 국채가 발행되는 시점의 세대에 따라 내부 채무도 미래세대에 부담이 전가된다고 생각하는 이론도 있다. 그러나 스리랑카의 외채 위기와 80% 이상이 대한민국 국민이 보유한 우리나라 국가채무를 똑같이 비교한 것은 합당하지 않다.
국가부채 40%는 달러 등 대응 자산이 있는 채무
그런 의미에서 언론에서 가끔 쓰이는 ‘1인당 국가채무’라는 개념도 성립할 수 없다. 많은 언론에서 1인당 국가채무가 2000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1인당 국가채무는 대한민국 정부의 국채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나눈 개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채를 채권자인 대한민국 국민 수로 나누어 1인당 국가채무를 산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개념이다.
특히, 국채가 100% 외채라 해도 우리나라 후손이 100% 갚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국채의 약 40%는 대응 자산이 있는 채무다. 즉, 국채를 통해 조달한 돈은 써서 없어지는 것만이 아니다. 달러 같은 자산을 매입하고자 발행한 국채가 약 40%는 된다. 대변에는 국채라는 부채가 생기지만, 차변에는 같은 금액의 달러 자산이 생긴다. 이러한 국채는 후손이 갚을 필요가 없다. 대응되는 자산 자체에 상환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환율이 오르면, 국채 이자비용보다 환율상승 이익이 커진다. 오히려 우리 후손의 자산을 늘리는 부채라는 의미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정부부채 규모를 감시하고 평가하는 것은 언론의 사명이다. 그러나 비평을 하더라도 정확히 비판하자. 단순한 공포 마케팅이 아니라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국가부채 논쟁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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